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24) 화북1동 대명물 용출수 등

별도봉의 깎아지른 듯 하는 주상절리로 인해, 바닷가 벼랑이란 의미로 별도(벨도, 別刀)라 했던 화북동은 옛날 제주목사가 부임할 때 이곳으로 입도하면서 연륙교통이 발달된 제주의 관문이다. 고려 때 제주에 10현을 설치하면서 별도현이라 기록될 정도로 600여년 이전부터 설촌이 생긴 오래된 마을이다. 예부터 사람들이 모여 촌락을 이룰 수 있던 이유는 마을 포구 주변 많은 산물이 군락을 이루며 솟아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닷가 해안마을 화북에서 설촌의 근간이 되는 산물은 대명물이다. 이 물은 용출량이 가장 크고 물이 맑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대명물은 대명원 안쪽서 용출되는 담수로, 대명원은 엉물머리에 있는 갯담(원의 담, 원담) 공동어로시설로 동부락 소유다. 이 산물은 일자형 물통을 1·2구역으로 나눠 담을 싼 일자형 구조로 이용하였는데, 여자들이 몸을 씻는데 불편해 여자들을 위한 목욕탕을 추가로 만들어 사용했다. 빌레(너럭바위) 밑에서 용출되는 산물을 위시하여 3구역으로 구분하고(먹는 물, 채소나 음식 씻는 물, 빨래와 목욕) 보호시설을 해 놓았다가 다시 본래 2칸 구조로 돌려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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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명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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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명물 1구역 (식수).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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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명물 2구역 (채소나 음식 씻는 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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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명물 물팡.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대명물은 1일 500톤 이상의 물이 솟는다. 동부락의 물이지만 중동과 서동 사람들까지 사용했다. 대명물은 서쪽에 있는 큰이물보다 더 크고 어떤 마을의 물에 견주어 봐도 떨어지지 않기에 ‘큰 대(大)’자를 써서 화북뿐만 아니라 섬에서 으뜸가는 물이란 의미로 대명(大明)물이라 이름 붙였다. 특징이라면 이 물에서는 목욕을 할 수는 없었고, 물허벅을 부리던 물팡이 지형 상 단차 때문에 울타리 밖으로 나와 있다.

이전에는 목욕은 대명물 서북쪽 앞에 있는 대명원 밖에서 솟는 산물을 사용했다. 주로 남자들이 사용해서 돌담으로 둘러치지 않았는데, 포구가 확장되고 어장을 정비하면서 마을사람들이 이용하기 편하도록 돌담을 싸서 만들었다. 산물 이름(無名)은 없다.

큰이물은 대명물 서측 동부락마을회관 뒤 동선창 포구에 있는 물로 용출되는 양이 매우 크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동성창물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산물은 주로 중동과 서동 사람들이 애용했던 물로 마을 안 큰 길에 있어서 ‘큰질물’이라고도 했다. 물이 매우 차가워 얼음물이라고도 했다. 이 산물들은 얼음같이 차가워서 여름철에 목욕물로 애용했었다. 큰이물 입구에는 1958년~1959년 사이에 실시한 산물 정비를 기념한 비석들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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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명원 앞 산물 (무명).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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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이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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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이물 산물 치수비.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동성창 방파제 입구 대명물 길목에 고래물이 있다. 고래물은 ‘엉물머리’ 지경에서 솟는 산물로, 지금은 없지만 산물입구에 고래(맷돌, 연자매)가 있었던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중부락 사람들이 식수였던 중부락물(중카름물)은 화북진성으로 가는 금산5길에 있다. 썰물 시에는 물이 숨었다가 밀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솟는 물로 조수간만 차에 의해 나타나는 산물이다. 이 용출수의 특징은 물체의 무거움을 나타내는 밀도(비중) 차로 물이 솟아나는데, 무거운 바닷물(해수비중 1.025)이 가벼운 담수(담수비중 1.0)을 밀치면서 담수가 해수위에 떠 있는 것 같은 형태로 물이 솟아난다. 

그래서 이 산물은 밀물이 들어 와 바닷가의 물을 뜨지 못할 경우, 물박(박은 바가지의 제주어)으로 윗물만 조심스레 떠야 염분기가 없는 물을 얻을 수 있다. 이 산물은 주택가 길 모퉁이에 있었는데, 주변에 주택들이 들어서고 도로가 확장으로 물이 정체되어 녹조류 등이 끼고 관리가 소홀하면서 수질이 예전만 못해서였는지 매립해 버렸다. (2018년 4월초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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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래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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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립 전 중부락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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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립 후 중부락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화북동의 산물은 예전 돌담이 모두 사라지고 시멘트 블럭화 되었지만 중부락물은 그래도 유일하게 어느 정도의 원형이 남아 있고 그나마 옛 모습의 정취를 찾아 볼 수 있는 용출수였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산물은 사라지거나 콘크리트 포장으로 매립하여 주차장이 되어 버렸다. 매립한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마을과 그 안의 생명을 지켜준 물을 보전하는 것 보다 차를 세우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인지 무척 화가 난다.

큰이물과 서창물 사이인 중부락 포구인 동성창(묵은포구) 해신사 앞쪽에, 주로 소에게 물을 먹이던 쉐물이 있다. 쉐는 소의 제주어다. 이 물은 우마용 물로 식수통 등 칸을 가른 이용시설이 없다.

서쪽 포구(새선창)에는 물놀이를 할 수 있도록 풀장 형태로 만들어 놓은 서창물이 있다. 길가에 있는 물은 남자목욕통으로 사용했는데, 이 산물에서 서쪽 10m 떨어진 올레로 들어가면 여자물인 서창물 여자목욕통이 있다. 여자 목욕통에는 식수통을 만들지 않았다. 예전 이 산물들은 포구 뱃사람들이 주로 고깃배의 어로활동에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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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쉐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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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창물 (남자목욕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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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창물 여자 목욕통 올레(진입구).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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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창물 (여자목욕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화북동이 과거부터 주요 방어진으로 성을 쌓고 제주 섬에서 몇 안 되는 육지부와 연결하는 연륙교통의 요충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포구에 산물이 다량 솟아나 물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물은 점점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물이 정체되어 썩고 냄새나고 초라하고 보잘 것 없다고 해서, 보전하려는 노력 없이 사람 위주의 편리성만 내세워 개발과 발전이란 허울 속에 희생양을 삼아서는 안 된다. 

결국 마을 물이었던 산물의 파괴는 마을의 삶을 파괴하는 것이다. 제주 속담에 ‘물질광 물콘 안 막나(물길과 물꼬는 안 막는다)’고 했다. 필요에 의해 물을 사용하고 시간이 지나 물을 파괴하는 행위 모두 사람이 저지른 일이다. 이제 더 늦기 전에 보존과 개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두고 상생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 고병련(高柄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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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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