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진상규명史, 우리나라 민주화 수준과 정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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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민 대표가 21일 '4.3시민아카데미'에서 4.3진상규명 운동사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김종민의 4.3 시민아카데미] (4) "87년 6월항쟁 이후 4.3 진상규명 운동 활발"

수십년간 입 밖에도 꺼내지 못했던 제주4.3. 1978년 4.3 30주기에 발표된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이 4.3 당시 잔혹함을 알렸다. 소설가 현기영은 갖은 고문에 시달렸고, 책은 판매 금지되기도 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전국적으로 민주화 열기가 뜨거워졌고, 제주4.3의 진상 규명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제주4.3의 진상규명 운동사(史)는 우리나라 민주화 수준과 정비례한다.

<제주의소리>가 4.3 70주년을 맞아 특별기획한 '4.3시민아카데미'가 21일 오전 10시 제주벤처마루 10층 세미나실에서 열렸다. 강사는 김종민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상임대표(전 4.3중앙위원회 전문위원).

지난달 31일 첫 강의가 ‘4.3의 개요’를 시작으로 두 번째 강의 '초토화작전', 세 번째 ‘이승만 정권의 불법 계엄령과 군법회의’에 이은 4번째 강연이다.

4번째 강연 주제는 제주4.3 진상규명운동사.

제주도민을 소위 ‘빨갱이’로 몰았던 이승만(초대~3대) 전 대통령이 4.19혁명으로 1960년 하야(下野)했다. 붕괴된 이승만 정부에 이어 윤보선(4대) 전 대통령이 집권했다.

이승만 정부가 붕괴하자 전국적으로 4.3을 포함한 이승만 정부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운동이 벌어졌지만, 1년만에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박정희(5~9대) 군사정부가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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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민 대표가 21일 '4.3시민아카데미'에서 4.3진상규명 운동사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제주 인구는 대한민국 1%, 간첩조작 피해자는 전체 약 10%를 차지

박정희 정부에서 제주 4.3 피해자들은 4.3을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했다.

1965년 12월3일자 조선일보에 북괴공작대 일당 8명을 검거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일본에서 침투해 공산 혁명을 노린다는 내용이다.

검거된 8명 모두 제주시 한림읍 명월리 사람이다. 당시 박정희 정부가 일본과 수교를 맺으려하자 국민적 반발을 사던 시기. 

1977년 3월25일자 조선일보에도 간첩을 검거했다는 기사가 있다. 간첩 중 1명은 제주교육대학교 초대~2대 김문규 학장이 포함됐다. 초등 교육자를 양성하는 제주 교육계 큰 어른이 졸지에 간첩이 됐다. 유신헌법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 시기다.

간첩을 검거했다는 뉴스가 나올 때 대부분은 박정희 정부에서 국내·외 정치 등 국민의 반발을 살 때다. 

김종민 대표는 "당시 군사정권이 4.3의 역사를 가진 제주도민을 소위 '빨갱이'로 엮기 쉬웠기 때문에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린 제주도민이 많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1978년에는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이 발간됐다. 소설가 현기영은 고문을 받아야했고, 순이삼촌은 판매 금지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9년 10월26일 당시 중앙정보부 김재규 부장에 의해 살해당한다.

당시 최규하 국무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그해 12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우리나라 10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그는 전두환 등 신군부에 압력으로 8개월만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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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 제주대학교에서 벌어진 민주화운동의 모습. 한 대학생이 경찰을 향해 화염병을 던지고 있다. <사진촬영 김기삼>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6월 민주항쟁에 따른 전국적인 민주화 열기...제주4.3 진상규명 운동 본격화

전두환(11~12대) 정부에서도 4.3은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아픈 상처였다. 

그러던 1987년 4월13일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대통령 직선제 골자 개헌논의 중지와 제5공화국 헌법에 따른 정부이양 ‘4.13 호헌조치’를 발표한다.

각계각층 지식인은 물론 국민들의 비판이 고조될 무렵 5월18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공식성명을 통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조작·은폐됐다고 밝힌다.

국민들은 분노했고,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를 중심으로 6월10일 ‘박종철군 고문살인 조작·은폐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가 전국적으로 열렸다. 20여일간 지속된 6월 민주항쟁은 전국 민주화 운동에 불을 지폈다.

결국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됐지만, 당시 민주화 운동의 큰 역할을 하던 김영삼·김대중 후보 단일화 실패로 노태우(13대) 전 대통령이 집권하게 된다. 군사정권이 연장된 것.

6월 항쟁에 힘입어 제주에서는 4.3취재반이 꾸려졌고, 1989년 4월3일 제주대학교에서는 4.3추모제가 열렸다. 그해 5월10일에는 제주4.3연구소가 개소했다.

또 전국 대학생들의 4.3의 진상규명을 위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민주화와 함께 제주4.3의 진상규명운동이 본격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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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1월 11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4.3유족대표와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을 초청한 가운데 청와대에서 4.3특별법에 직접 서명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민주정부(김대중-노무현) 10년과 보수정부(이명박-박근혜) 9년

1990년 1월 22일, 당시 집권 여당 민주정의당의 노태우 대통령과 제2야당 통일민주당 김영삼 대표, 제3야당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대표가 민주자유당으로 3당 합당을 발표했다.  

거대 여당이 탄생과 함께 1993년 김영삼(14대) 정부가 집권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제주 4.3 진상 규명 관련된 자료와 증언이 일정 부분 확보된 상태였다. 제주4.3을 얘기할 수 있었지만, 정부 차원의 움직임은 없었다.

1998년 김대중(15대) 정부가 들어서면서 4.3 진상규명운동이 힘을 받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제주4.3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공약했다.

김대중 정부에서도 4.3과 관련된 공약 이행을 촉구하는 시위와 기자회견 등은 계속됐다.

제주 언론, 노조, 교육, 문화, 시민사회 등 각계각층을 총망라한 ‘4.3특별법 쟁취를 위한 연대회의’가 1999년 10월28일 기자회견을 열어 김대중 대통령에게 4.3 관련 공약 이행을 촉구했다.

결국 1999년 12월 국회에서 4.3 특별법이 통과했다. 2000년 1월11일 김대중 대통령이 서명했고, 이튿날인 1월12일 제정·공포됐다.

특별법이 제정된 해 8월28일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가 생겼다.

2003년 고 노무현(16대) 대통령이 취임했다. 그해 4월3일에는 4.3평화공원 조성사업 기공식이 함께 진행됐다.

같은 해 10월15일 4.3진상조사보고서가 나왔고, 10월31일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 공권력에 의해 피해입은 제주도민과 4.3 유족에 고개를 숙였다. 노 대통령은 2006년 제58주년 4.3위령제에도 참석해 4.3 희생자에 대해 헌화·참배했다.

2008년 취임 이명박(17대) 정부와 2013년 취임한 박근혜(18대) 정부에서 4.3의 시계가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일부 세력은 4.3 특별법 폐기와 위원회 폐지 등을 골자로 헌법소원심판, 행정소송, 국가소송 등 총 6건의 소를 제기하기에 이른다.

4.3 피해자가 아니라 공산 폭도기 때문에 희생자 명단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들의 주장은 2012년까지 계속됐지만, 모든 소가 법원에서 기각됐다.

또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단 한번도 4.3 추념식에 참석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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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애 4.3 영령을 기리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촛불혁명에 의해 사상 초유 탄핵 사태를 맞았고, 뒤 이어 집권한 문재인(19대) 대통령은 올해 4.3 70주년 추념식에 참석해 4.3 영령에 고개를 숙였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4.3 추념식 참석은 노 전 대통령에 이은 두 번째다. 

김종민 대표는 “4.3의 진상규명 운동사는 우리나라 민주화 수준과 정비례한다. 군사정권 등을 거쳐 민주정부에 들어서야 본격적인 진상규명이 시작됐다. 4.3 진상규명에서 87년 6월항쟁은 큰 역할을 했다. 6월항쟁의 열기가 4.3 진상규명에 불을 지폈다”고 강조했다.

'4.3시민아카데미'는 <제주의소리>가 4.3 70주년 특별기획으로 마련한 자리다. 3월 31일부터 4월 28일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4.3의 전 과정과 향후 과제까지 자세히 들여다보는 흔치 않은 4.3 전문 강좌다.

강사는 제주신문, 제민일보 기자를 거쳐 국무총리 소속 4.3중앙위원회 전문위원, 제주4.3평화재단 이사 등을 역임한 김종민 대표다.

김 대표는 정부의 <제주4.3사건진상보고서>와 <제주4.3사건 자료집>, <4.3은 말한다> 등을 편찬·집필했고, 취재 과정에서 7000명에 달하는 4.3 희생자 유족을 만나면서 30년간 4.3 하나만을 파고든 현장·이론을 겸비한 전문가로 손꼽힌다.

시민 아카데미는 ▲제주4.3의 배경과 전개 과정(3.31) ▲초토화 작전과 군법회의(4.7) ▲4.3이후 70년-제주4.3진상규명운동사(4.14) ▲제주4.3의 현황과 과제(4.21) 순으로 진행됐다.

오는 28일에는 김 대표와 함께 4.3 유적지 현장답사가 예정됐다. 현장답사 신청이나 문의는 <제주의소리>로 전화(064-711-7021)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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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포도 2018-04-23 10:41:30
우리
산폭도들이 세월 지나니 애국자 되었네

그럼 우리가 죽창으로 찔러죽인 것은 죄가 안되네

다 많이 죽창으로 찔러 죽여도 될 것데 왜 그걸 몰랐을까 ?
116.***.***.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