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26) 하효동 쇠소깍 용출수

소를 모아 두었던 곳이라고 해서 하효동의 옛 이름은 ‘알쉐돈’, ‘알쉐둔’이라 부른다. 이것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 하우둔(下牛屯)·하효돈(下孝敦)이다. 이 마을에 남아 있는 지명인 ‘가름’은 제주어로 사람이 집단으로 많이 모여 사는 동네, 즉 마을을 말하는데, 지금은 과수원지대가 되어 있다. 이 지경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효돈천과 하례천의 소(沼)의 물이 큰 집단인 마을을 형성할 수 있는 생명의 원천이 되었을 것이다.

하효동 효돈순환로에 용꼬리, 용머리 형태라 해서 용지동산에 ‘용지여드레당’이 있다. 기우제를 드릴 때 이 용지당의 ‘용지부인석’을 업고 가서 제를 지낸다고 하는데, 관련한 산물이 쇠소깍물이다. 쇠소깍(우소·용소)은 효례천(효돈천) 하류로 바다와 경계하고 있으며, 하효와 하례마을의 경계선에 있다. 쇠소의 ‘쇠’는 소 우(牛)라서 쇠소깍을 ‘우소’라고 부르며 ‘깍’은 끄트머리인 맨 마지막 부분을 나타내는 제주어다. 산물이 솟는 소(沼) 자체가 바다와 맞대어 있어 예전에는 하효포구였는데, 지금은 숨겨진 비경으로 알려지면서 많은 탐방객이 찾는 명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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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물이 만든 쇠소깍.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쇠소깍도 제주시 용연처럼 용이 살고 있어 용소(龍沼)라 부른다. 여기에 사는 용은 숫용이다. 숫용은 암용(여자)을 만나면 용솟음치듯 비를 뿌리며 하늘로 올라간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쇠소깍에 업고 온 용지부인을 모시고 제를 거행하면, 쇠소(용소)에 살던 용이 승천하면서 비를 내린다고 하여 쇠소깍에 기우제 단을 만들고 제를 올렸다. 이 기우제단 옆에 하효마을 본향당인 큰당이 좌정해 있다. 이곳에서 쇠소깍에 돌을 던지거나 고성방가를 하면 용이 노하여 갑자기 바람이 불고 날씨가 나빠진다고 한다. 

먹는 물에 돌 데끼민 죽엉 가민 눈썹으로 건져사 헌다.
(먹는 물에 돌을 던지면 주거서 가면 눈썹으로 건져야 한다)
이런 제주속담과 같은 맥락이다.

쇠소깍을 가만히 보면 잔잔한 곳에 돌멩이를 던지면 파동이 일어나듯 소용돌이(맴돌이)를 만들며 물결이 일어나는 현상을 보이는 곳이 있다. 여기서 수중산물인 용출수가 솟아난다. 기우제단 밑 일대에도 용출수들이 솟고 있다. 

이처럼 쇠소깍의 맨 안쪽에서 부터 솟는 수중용출수들이 깊은 못(沼)을 만들고 있지만 해안 조간대와 맞물려 있다. 조석간만의 차로 인해 해수침입으로 못은 해수가 섞인 염분기 높은 기수역(汽水域, 민물+바닷물이 교차하는 지역)을 형성한다. 그래서 식수 등 생활용수로 사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기에 주로 목욕이 성행했다. 이런 이유로 해당 사람들은 식수는 효돈천과 하례천의 소(沼)의 물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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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쇠소깍 수중산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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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쇠소깍 수중산물 소용돌이(맴돌이).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쇠소깍 서측인 하효포구 서남쪽 700m 지점인 게우지코지(게우지는 ‘게웃’이라는 전복 내장, 코지는 ‘곶’이 제주어) 해안가에 성제돌물도 있다. 성제돌물의 ‘성제’는 제주어로 형제란 뜻인데, 암석 두 개가 형제처럼 맞대어 서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바다 철새들이 쉬는 곳이라 하여 ‘생이(새의 제주어)돌’ 혹은 어머니와 아들 형상이라 해서 ‘모자바위’라고도 한다. 이 산물은 성제돌의 암반 틈에서 용출되고 있는데 그 양은 그다지 많지 않다. 성제돌 앞쪽 200m 지점 바닷물 가운데에도 가만히 쳐다보면 물이 솟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전에 소금을 만들던 소금막이 있던 하효 갯가는 성제돌물 외에도 조간대 여러 지점에서 물이 솟고 있지만, 밀물 시에는 잠기는 곳이 많고 바닷물과 섞여 물맛이 짜고 용출량도 그다지 크지 않다. 그래서 마을에서는 바닷가에서 솟는 산물보다는 하천의 소(沼)에서 솟는 물을 주 식수원으로 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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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쇠소깍 기우제 단.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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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제돌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고병련(高柄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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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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