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함에 맞선 제주의 항쟁...참혹했지만 위대한 4.3의 여정
부당함에 맞선 제주의 항쟁...참혹했지만 위대한 4.3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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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민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상임대표가 28일 진행된 ‘4.3시민아카데미' 현장답사에서 4.3유적지 설명을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김종민의 4.3 시민아카데미] 현장답사로 마무리...4.3유적지 찾아 생생한 역사현장 설명   

4.3 바로 알기를 위해 3월31일부터 시작된 김종민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상임대표의 강연이 선조들의 아픔을 간직한 유적지 방문을 끝으로 4주만에 막을 내렸다.

<제주의소리>가 4.3 70주년을 맞아 특별기획한 ‘4.3시민아카데미’의 마지막 강연인 현장답사가 28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제주도내 4.3유적지에서 열렸다.

4.3시민아카데미에서는 지금껏 4.3의 개요와 초토화작전, 불법 계염령, 군법회의, 진상규명운동사 등 네 차례에 걸쳐 김 대표의 뜻깊은 강연이 이어졌다.

현장답사는 제주4.3평화기념관과 너븐숭이 유적지, 서우봉 일제동굴진지, 송악산 섯알오름 고사포진지, 백조일손 학살터, 알뜨르비행장 등 4.3의 아픔을 간직한 곳에서 이뤄졌다.

4.3 전문가인 김 대표는 이날 유족들의 증언과 고증을 통해 직접 확인한 아픔의 역사를 입체적이고 생생하게 전달해 참가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 기억해야 할 역사 품은 제주4.3평화기념관...드러누운 백비의 침묵 고개숙인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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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민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상임대표가 29일 제주4.3평화기념관에서 백비 조형물의 의미 등을 설명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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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민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상임대표가 4.3 당시 무고한 희생을 막기위해 노력한 의로운 사람들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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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의소리>가 4.3 70주년을 맞아 특별기획한 ‘4.3시민아카데미’의 마지막 강연인 현장답사가 28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제주도내 4.3유적지에서 열렸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28일 오전 9시 제주시 종합경기장에 모인 4.3아카데미 참가자 40여명은 첫 방문지로 올해 개관 10주년을 맞은 제주4.3평화기념관을 찾았다.

봉개봉 거친오름 기슭에 자리잡은 기념관은 4.3의 뼈아픈 역사를 통해 평화와 인권을 후손들에게 알리기 위해 2008년 3월 문을 열었다.

개관 당시 상설 전시물 배치에 직접 관여한 김 대표는 각 사료의 역사적 배경과 조형물의 의미 등을 설명하며 4.3 당시 국제정세와 도민들의 대응 등을 생동감 있게 풀어냈다.

기념관 내 역사의 동굴에 들어선 참가자들은 햇빛을 받으며 빛나는 커다란 돌 앞에서 멈춰섰다. 아무런 글자도 새겨지지 않은 이른바 ‘백비’다. 

2000년 제주4.3특별법 제정, 2003년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확정에 이어 2014년 국가추념일 지정까지 이어졌지만 4.3은 여전히 이름 짓지 못한 역사로 남아 있다.

1948년 11월17일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하고 제주 해안선에서 5km 이상을 불바다로 만든 이른바 초토화 작전에 대한 설명에서는 참가자들의 탄식이 이어졌다.

김 대표는 4.3의 잔인함 속에서도 희망은 있었다며 김익렬 장군과 문형순 경찰서장, 김성홍 몰라구장, 서청단원 고희준씨, 강계봉 순경 등 의로운 사람들의 대한 기억도 당부했다.

정다현(13.여)양은 “학교에서 4.3에 대한 수업이 있었지만 기념관을 직접 보니 당시 조상들의 아픔을 더 이해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는 이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 대학살의 현장 북촌리 ‘무남촌’의 쓰라린 역사...70년 애기무덤에 제 올린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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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민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상임대표가 29일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너븐숭이에 위치한 애기무덤에서 참혹한 당시 대학살을 설명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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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아카데미 현장답사에 참가한 시민들이 <제주의소리>에서 마련한 음식으로 애기무덤 앞에서 제를 지내며 희생자를 위로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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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너븐숭이 애기무덤에 놓인 과자와 인형들. 애기무덤에 대한 실체가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 희생자를 위로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1949년 1월17일 당시 2연대 군인들은 북촌리 주민들을 국민학교 운동장으로 끌고 갔다. 곧이어 마을 동쪽 당팟, 서쪽 너븐숭이 일대에서 총성이 울려 퍼졌다. 시체들은 쌓여갔다.

소설 ‘순이삼촌’의 배경이 되기도 한 북촌리는 4.3 당시 무장군인에 의해 무려 400명이 목숨을 잃었다. 남성들의 피해가 유독 컸다. 집집마다 대가 끊겨 ‘무남촌’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너븐숭이는 제주어로 넓은 돌밭을 뜻한다. 과거 북촌 주민들이 밭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다 잠시 쉬어가던 곳이었다. 지금은 4.3의 잔인한 학살터로 기억되고 있다.

어른들의 시신은 임시매장했다가 사태가 안정된 후 안장됐다. 하지만 당시 어린아이는 임시 매장한 상태로 지금껏 남아 있다. 너븐숭이 소공원에 위치한 일명 ‘애기무덤’이다.

시간이 흐르며 가시덤불에 뒤덮혔지만 2001년 옛 북제주군 소공원 조성사업 과정에서 애기무덤이 모습을 드러났다. 당시 참혹한 모습을 보여주듯 잔디도 없는 초라한 모습이다.

도내 학교에서 4.3역사교육이 꾸준히 이뤄지면서 학생들의 방문도 많아지고 있다. 아이들의 동심을 반영하듯 애기무덤 곳곳에는 인형과 과자, 장난감 등이 놓여져 있다.

이날 참가자들은 <제주의소리>에서 준비한 과일과 떡 등 제사음식을 올리고 어린나이에 영문도 모른채 짧은 생을 마감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며 혼령을 달랬다.

이영순(60.여)씨는 “제대로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희생된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며 “애기무덤을 통해 많은 분들이 당시 북촌리의 참상을 함께 기억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 서우봉 일제동굴진지-섯알오름 고사포진지...반복되지 말아야 할 제주의 군사기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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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에 위치한 서우봉 일제동굴 진지. 등록문화재 제309호인 서우봉 일제 동굴진지는 1945년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이 자살폭파 공격을 위해 구축한 군사시설이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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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문화재 제309호인 서우봉 일제 동굴진지는 1945년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이 자살폭파 공격을 위해 구축한 군사시설이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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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답사 참가자들이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섯알오름 고사포 진지를 찾았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수세에 몰리자 당시 전략적 군사시설인 알뜨르비행장 보호를 위해 섯알오름에 고사포 진지를 구축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함덕 서우봉해변은 제주관광공사 5월 제주관광에서 빠지지 말아야할 10선으로 꼽힌 곳이다. 빼어난 경관 이면에는 강제동원으로 만들어진 일제의 잔재가 남아있다.

서우봉 북동쪽 기슭 위치한 일제 동굴진지 이야기다. 등록문화재 제309호인 서우봉 일제 동굴진지는 1945년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이 자살폭파 공격을 위해 구축한 군사시설이다.

일본은 동굴식 갱도 18곳과 벙커 시설 2곳 등 군사시설을 치밀하게 조성하면서 도민들을 강제 동원했다. 육지부 청년까지 동원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의 현장이다.

4.3 당시 마을 주민들은 군·경의 무차별적인 학살을 피해 이 곳으로 바로 아래 천연동굴인 몬주기알에 숨었다. 이곳까지 처들어 온 토벌대는 마을 여성들은 잔인하게 죽였다.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에 위취한 섯알오름 고사포진지는 서우봉 일제 동굴진지와 비슷한 시기에 조성됐다. 원형의 콘크리트 구조물로 2기는 완공되고 3기는 여전히 미완공이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수세에 몰리자 당시 전략적 군사시설인 알뜨르비행장 보호를 위해 섯알오름에 고사포 진지를 구축했다. 이 역시 주민들을 강제동원해 만들어진 시설이다.

고사포 진지 남쪽 기슭에는 4.3 당시 100여명의 주민들이 희생된 학살터가 있다. 참가자들은 군사시설과 4.3유적지를 직접 둘러보고 현장 강의를 들으며 뜻 깊은 시간을 가졌다.

한 참가자는 “최근 또 다른 군사기자화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며 “근현대사의 아픔을 이해하는 살아있는 교육 장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뒤엉킨 유골 우리는 하나의 자손 ‘백조일손’...예비검속 또 다시 이어진 잔인한 집단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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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뜨르비행장 옆에 위치한 섯알오름 학살터. 일제 강점기 당시 이곳은 일본군의 탄약고로 사용됐다. 전쟁과정에서 폭탄이 떨어지면서 바닥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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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섯알오름 학살터 추모비를 찾은 참가자들이 당시 희생자를 기리며 위령재단 앞에서 묵념을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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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민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상임대표가 4.3당시 섯알오름 학살과 백조일손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섯알오름을 내려와 알뜨르 비행장 쪽으로 향하면 커다란 구멍 속 물 웅덩이를 마주하게 된다. 탐방로를 따라 내려온 참가자들이 줄줄이 가던 길을 멈춰서더니 웅덩이를 응시했다.

알뜨르비행장 옆에 위치한 이곳은 일제 강점기 탄약고였다. 전쟁과정에서 폭탄이 떨어지면서 탄약고는 산산조각이 났다. 바닥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4.3의 광풍 속에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정부는 좌익사상 전향자를 계몽하기 위해 만든 국민보도연맹 탄압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애꿎은 도민들은 또다시 희생자가 됐다.

당시 제주지구 계엄당국은 주민 수백여명을 검속했다. 계염당국은 대정과 한경, 한림 주민들 200여명을 구금하고 1950년 8월 옛 탄약고 물웅덩이 2곳에서 집단 학살을 자행했다.

6년이 지난 1956년 시신을 수습했지만 시체가 썩고 유골이 뒤엉키면서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다. 결구 후손들은 132구의 유골을 묘역에 안치하고 백조일손을 결성했다.

서로 다른 조상들이 한날 한시 한곳에서 죽어 뼈가 엉기어 하나가 됐으니 그 후손들은 이제 모두 하나의 자손이라는 의미로 백조일손(百祖一孫)이라고 정했다.

참가자들은 김 대표로부터 백조일손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경청하고 희생자 추모비가 위치한 위령제단에 올라 고개를 숙였다.

현장답사를 마무리하며 김 대표는 억울한 희생을 당한 4.3의 아픔을 기억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 과정에서 살아남아 묵묵히 지금의 제주를 일군 이들에 대한 평가도 주문했다

김 대표는 “70년 전 대학살을 경험한 젖먹이부터 10대까지, 지금은 우리 주변의 어르신들”이라며 “아픈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공동체를 복원한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4.3 그 자체는 너무나 참혹했지만 진상규명을 위한 우리의 역사는 위대했다. 부당함에 맞서고 한번도 굴복하지 않았던 제주 조상들이 있었다”면서 답사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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