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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항쟁 70주년 전국문학인 제주대회'의 일환인 4.3 문학 세미나가 28일 열렸다. 사진은 주제발표를 맡은 강성현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조교수. ⓒ제주의소리

[4.3 70주년 전국문학인 대회] 강성현 “4.3진상규명위원회 최대치 아냐...더 나아가야” 

“제주4.3의 진실들이 다 드러나지 않았는데 화해와 상생 그리고 통합으로 정리해버리는 것은 현재화된 과거사에 대한 또 다른 폭력이다.”
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가 주최하고, (사)한국작가회의 제주도지회가 주관하는 ‘제주4.3항쟁 70주년 전국문학인 제주대회’가 27일~28일 한화리조트 제주,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렸다. 

28일 열린 4.3 문학 세미나 ‘역사의 상처, 문학의 치유’에서 주제 발표를 맡은 강성현 조교수(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는 4.3의 과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대량학살, 국가폭력 등을 주로 연구해온 강 교수는 제노사이드(genocide, 집단살해)를 구조적으로 분석하면서 4.3과 연계시켜 4.3의 전국화와 보편화가 어떤 의미를 지녀야 하는지 설명했다.

강 교수는 같은 분야를 연구해온 정치사회학자 마틴 쇼(martin shaw)의 논의를 참고해, 제노사이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제노사이드는 민간인 사회집단들을 파괴하려는 무장권력조직들과 이 파괴에 저항하는 그 사회 집단 및 여타의 행위자들 간의 폭력적인 사회갈등의 유형 혹은 전쟁이다.

제노사이드 행위는 무장권력조직들이 민간인 사회집단들을 적으로 다루거나, 무장권력조직들이 그 집단의 성원으로 간주한 개인들에 대해 살해와 포격, 강제력을 이용해 그 집단들이 실제 가지고 있거나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사회적 힘을 파괴하려는 행위다.
이런 제노사이드 과정은 ▲낙인과 타자화 ▲내부집단 조직화 ▲국지적 집단학살 ▲고립 ▲상징화 ▲감염자 치료(전향과 갱생) ▲살처분 ▲기억의 압살단계를 거쳐 비국민으로 처리, 파괴된다. 이는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사례로 한 김태우 교수(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학과)의 정리다. 

강 교수는 “결국 제노사이드는 사건 순간에 그치지 않고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생존자들에게까지 적용된다”며 “제노사이드 과정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 가운데 하나는 비인간화다. 해충화, 귀축화, 악마화가 진행되면서 죽여야 하는, 죽여도 되는 ‘절대적 적’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극우단체 시위에서 등장하는 ‘빨갱이는 죽여도 돼’ 같은 문구가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4.3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난다. 

강 교수는 “4.3 당시 빨갱이는 중산간 지역과 같은 특정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까지 대상화됐다. 이후 토벌대가 통제하는 해안 마을의 주민들에게까지 확장됐다. 붉은색의 선정성과 전염성의 침투라는 이미지를 섬 전체에 투영시킨 결과였다. ‘빨갱이 섬’(조병옥 경무부장), ‘작은 모스크바’(김재능 서청 제주지부장)에 거주하는 제주도민들은 새로운 반공국가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적대적 ‘종자’의 위치로 전락했다”며 “제주도민은 빨갱이 잡초로 국가라는 정원사에 의해 제거돼야 하는 대상이 됐다. 제주도민의 가족은 ‘빨갱이 종자’가 재생산되는 장소로 인식됐다”고 분석했다. 

이로 인해 빨갱이 내지 폭도를 재생산한다고 여겨지는 여성은 4.3 당시 폭력의 주요한 대상이 됐다. 

그는 제노사이드 개념을 바탕으로 ‘제주4.3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사건들의 축도(縮圖, 예시)’라고 규정했다. 

4.3사건, 여순 사건, 예비검속 사건, 형무소 사건, 국민보도연맹 사건, 부역혐의 사건, 군경토벌 관련 사건, 미군 사건, 적대세력 관련 사건 등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한국전쟁 전후에 전국에 걸쳐 발생했던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작전, 처형, 보복의 성격을 갖는 대량학살이다.

강 교수는 여순 사건에 대해 “4.3이 초토화 대량학살로 전개되는 중요한 계기 중 하나로 작용했다”며 “한국전쟁 동안 전국에서 발생했던 모든 유형의 민간인 학살 사건들은 제주도에서 예비돼 전국화됐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4.3은 축도”라고 피력했다.

강 교수는 4.3의 전국화는 제노사이드의 특성, 학살의 순간에 그치지 않고 대를 이어 고통받는 연속성까지 고려돼야 한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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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항쟁 70주년 전국문학인 제주대회'의 일환인 4.3 문학 세미나가 28일 열렸다. ⓒ제주의소리

그는 “내가 4.3을 전국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건 이 모든 학살 사건들을 연결해서 하나의 제노사이드로 이해해야 대량 폭력의 상승 과정이 전국적인 대량 절멸과 삶의 사회적 파괴로 귀결되는 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또한, 제노사이드가 대량 절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생존 피해자와 그 가족, 지역 주민들의 경험과 기억, 정신을 왜곡하고 파괴해 왔다는 것, 이 모든 학살 사건들에서 발생한 죽음들 간에는 위계가 없다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무엇보다 제주4.3을 섣불리 전국화, 세계화, 보편화된 하나의 모델로 규정짓는 것을 경계했다.

강 교수는 “화해와 상생으로 보이는 표층의 밑으로 깊이 들어가 여러 층위에서 얽혀있는 갈등적인 이야기들을 길어 올려야 한다. 제주4.3진상규명위원회가 구성한 4.3사건의 진실은 완전한 것도, 최종적인 것도 아니”라며 “진실들이 다 드러나지 않았는데 화해와 상생, 그리고 통합으로 정리해버리는 것은 현재화된 과거사에 대한 또 다른 폭력이다. 진실-화해 모델이든, 진실-정의 모델이든, 진실 규명만큼은 철저하게 진행돼야 한다”고 70년 이후의 4.3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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