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28) 서귀포시 서귀동 생수궤물과 구룡토수
  
서귀동은 옛 서귀진이였다. ‘서귀’의 어원은 마상이나 한라산 불로초와 관계있는 ‘서불과지’와 관련있다고도 하며, 혹자는 서쪽으로 돌아가는 의미라고 한다. 서귀동의 많은 산물 가운데 동굴과 관련된 궤에서 솟는 대표 산물들이 있다.

천지연폭포를 중심으로 형성된 정방동에서 굴 속 숨겨진 산물인 생수궤물(생수개)이다. 산물 소재지는 서귀동이지만 행정관할은 정방동으로, 생수궤물은 천지연폭포로 내려가는 기정의 비탈에 있다. 이 기정은 태평로 산책공원 밑 절벽을 말하며 '생수개'로 허벅을 지고 물 길러 가는 길인 '샛길'이었기 때문에 '샛기정'이라 한다. ‘기정’은 단애, 절벽, 벼랑의 제주어로, 지도에는 샛기정을 ‘천지연기정길’로 표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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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수궤물 입구.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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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수궤.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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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수궤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절벽길인 샛기정을 따라 내려가면 산물이 나오는 궤(제주어로 자그마한 굴로 일종의 바위그늘집)가 있는데, 이 궤 안에서 산물이 솟고 있다. 이 산물은 수도가 없었던 시절, 인근 주민들의 주식수원이었다. 이 궤는 그리 길지 않은 동굴로 용출량은 많지는 않으나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물허벅 하나는 거뜬히 길러 목을 축일 수 있는 양은 된다. 

이 산물로 인해 ‘서귀포에 태운 사람’이란 말이 전해지고 있다. 처음 서귀포에 시집 온 사람은 이 산물을 떠 물허벅으로 지고오기 위해 샛기정 길을 이용해야 했다. 그런데 그 길이 너무나 험하여 갓 시집 온 새댁들이 물허벅을 지고 가다가 허벅을 많이 깨트렸다고 한다. 때문에 물허벅을 깨지 않고 샛기정 길을 오르면 “이 사람은 서귀포를 태운(적합한, 잘 맞는 뜻의 제주어) 사람”이라고 추겨 세웠다고 한다. 그만큼 물 길러 오는 일은 여인네들에게는 하루 중 가장 고단한 노동으로 못살겠다고 가 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말이다.

이 산물은 칠십리교에서 천지연휴게소로 연결된 옛 천지연폭포로 진입하는 길가에, 철책으로 출입을 통제한 절벽의 동굴 안에 있다. 이 동굴은 낙석 위험이 있어 통제된 상태다. 이 궤(바위그늘집)에서 구석기시대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서귀포시가 ‘천지연생수궤’라 명명하고 향토기념물 유산 제1호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발견된 유물은 기원전 2만5000년 전 제주도가 한반도와 연결되었던 연륙시기인 구석기시대의 유물이라는 점에서 이 산물은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산물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궤의 산물은 굴 안 삼각형태의 자그마한 통 안에서 솟고 있지만 궤 옆 벼랑 중간에 난 구멍에서도 흘러내리고 있다. 시집살이의 한이 서린 눈물의 길이라는 물을 뜨러 가는 샛기정길은 산물 우측 편에 예전 그대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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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샛기정길.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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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샛기정길 옆 벼랑에서 솟아나는 산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서귀동에서도 구룡토수란 산물도 궤에서 용출된다. 산물 소재지는 서귀동이지만 행정관할은 천지동이다. 이 산물은 용과 관련이 있는 산물로 천지연폭포 북동쪽 법장사란 절에 있다. 창건주인 대덕화 보살이 ‘노인이 나타나 꽃밭을 가리키며 꽃을 잘 가꾸라’고 하는 꿈을 꾸고 난 후 이곳을 둘러보다 조그만 물구멍을 발견해 샘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 산물은 절 경내 벼랑 끝자락, 입구 두 개가 있는 작은 굴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맑고 깨끗한 물을 사시사철 쉬지 않고 솟아낸다. 구룡토수란 명칭은 '아홉 개의 구멍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똬리를 틀고 물을 토하듯 뿜고 있다'고 해서 붙여졌다. 산물은 궤에서 넘치면 물통으로 흘러 들어가 생활용수로 활용하도록 하고 나머지는 연외천으로 흘러들어 천지연폭포와 하나가 된다.

아무리 힘들어도 시집살이만 한 것은 없다는 말이 있다. 그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물 길러오는 일은 식구들이 생명을 책임지는 막중한 일이면서 중노동이었다. 그래서 생수궤물은 ‘울었던가 말았던가. 베갯머리 소(沼) 이뤘네’라고 노래했던 시집살이의 서러운 눈물이 모여서 만든 산물인 것이다. 우리말로 용은 미르라 하는데 미르는 물이고 물은 용을 의미한다. 결국 물은 생명이기에 용이 주는 물은 생명수라 할 수 있다. 또한 용은 유교에서 봄을 상징한다. 

용이 꽃밭에서 노는 현몽의 꿈으로 절의 식수를 만들 수 있었기에 가파른 절벽 끝 여기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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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룡토수.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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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룡토수 식수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고병련(高柄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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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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