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대도시가 아닌 이상, 한 지역에 밀집된 박물관이 100여개에 달하는 곳은 아마도 제주가 최고일 것이다. 또 하나의 기록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영리형, 관광형 성격을 지닌 사립관들이 상당수에 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고유기능을 수행하는 20여개의 공립관들은 거액의 투자예산과 대중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립관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열악한 현실에 직면해온지 오래이다.

대표적으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의 사례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1978년 문화공보부의 설계승인 후 1984년 개관되었으며 한국에서는 민속·자연사 분야에서 공립박물관 1호인 셈이다. 이 박물관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 역사성 때문만은 아니다.

바로 제주를 대표하는 ‘자연’과 ‘민속’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으며, 4만여 점에 달하는 방대한 소장품과 박물관의 고유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연간 수천 명의 지역민들에게 제공되는 사회교육프로그램, 전국 각지와 일본 등지의 이동전시를 통한 제주 홍보기능, 75건의 조사보고서 등은 바로 제주의 정체성을 확보해가는 핵심적인 동력이요, 기반시설로서 큰 가치가 있다.

주목하는 성과는 관람객 분포에서도 쉽게 증명된다. 사드여파와 공사기간이 있었던 2017년을 제외하고 2016년 관람객 약 87만 6000여 명 중 외국인은 53만 1000명에 달하여 60% 분포를 나타낸다. 국내 어느 공립박물관에서도 이러한 분포는 없으며, 누적관람객 3300만명을 목전에 두고 있다. 공립박물관은 그 지역의 문화, 역사, 정신, 자연 모든 것을 한 곳에 아우르는 심장과도 같다. 이제 국내외 관광객들의 안목과 트렌드 역시 유람관광에서 ‘가치관광’을 동시에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제주도를 대표하는 박물관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오래된 건축물에 최신 IT기법을 동원하여 정보검색시스템을 갖추고 홀로그램이나 스마트 기능을 구축한 박물관과는 판이하게 다른 수준의 노후한 시설에 머무르고 있다. 

박물관 기능에 대하여 한 측면만을 이해하는 분들이 많다. 고유기능에 강조되는 것은 지역문화의 발굴·보존·전시·연구 등을 통해 한 눈에 그 지역의 정체성을 읽게 해주는 마법과 같은 역할이 담겨져 있다. 이러한 기능이 인문학적 바탕으로 이어져서 지역민의 향토정신, 문화가치 함양, 지역관광의 핵심 시설로서 기여한다는 측면에서 갈수록 그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있다.

파리·런던·뉴욕·베이징·도쿄 어디를 가도 가장 필수적으로 관람하게 되는 곳이 바로 박물관, 미술관인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이유가 있다. 민속자연사박물관은 제주의 자연과 민속을 가장 압축된 형식으로 제공하는 핵심 시설로서 현재의 공간, 시설로는 이와 같은 기능을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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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병식 경희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제공=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 ⓒ제주의소리
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보다도 현재 30% 밖에 전시되지 못하고 있는 5만여 점을 유물을 개방형 수장고 형식으로 전시실을 겸할 수 있는 시설 확충이 시급한 실정이며, 사회교육관 증축이 요구된다. 이러한 시설은 도민들의 문화향유 기회와 권리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이며,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중앙정부차원의 지원이 필수적으로 병행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제주도가 ‘박물관 천국’이라는 단어로 양적인 팽창을 해왔지만 정작 도차원의 문화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핵심시설에 대하여 부족했던 점 은 하루속히 보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최병식 경희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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