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문화체험(3)] 중문 아프리카박물관

제주 중문관광단지 부근에는 아프리카가 있다. 아프리카박물관(관장 한종훈·65)이 그것이다. 이 박물관은 100여 년 전에 진흙으로 지은 서아프리카 말리공화국 젠네에 있는 '젠네회교대사원'(Djenne Grand Mosque)을 본뜬 독특한 외관으로 눈길을 끈다.

 
▲ 한라산을 배경으로 서있는 아프리카박물관의 독특한 외관. 외벽으로 튀어나온 막대기(토론.Toron)들은 일년에 한 번 정기적인 보수 때 밟고 올라가는 일종의 작업대.
ⓒ 아프리카박물관
 
관람객의 대부분은 '아프리카박물관이 왜 한국에 있느냐' 또는 '미개와 무지의 땅 아프리카'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들어온다. 그러나 박물관을 둘러보는 동안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선입견이었는지 스스로 깨닫는다. 이런 깨달음은 예술계통이 아닌 공대 출신의 한 관장이 아프리카 민속미술품의 미감각에 놀라던 1975년의 일과 무관치 않다.

 
▲ 구루족의 가면.55X18.
ⓒ 아프리카박물관
인테리어 사업자이던 그가 아이디어 수집차 영국에 들렀다가, 대영박물관에서 '구루족'(현 코트디부아르 영역권) 가면의 인간미 넘치는 문양을 보고 첫 눈에 반한 것. 박물관 기념품점에서 구루족 가면 몇 점을 사들고 온 것이 그가 말하는 "미친 짓"의 시작이었다. 현재 아프리카박물관은 구루족 가면 진품 약 2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구루족 가면으로 시작된 아프리카 콜렉션은 아프리카 문화에 대한 그의 몰상식을 점점 바꿨다. 그 후 사업차 나갈 때마다 수집한 것들이 650여 점이 되었다. 아프리카 현지에서 산 것이 40%, 유럽과 미국으로 흘러간 것을 사들인 것이 60% 정도라고.

이렇게 모은 미술품들로 아프리카 문화에 대한 일반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고자 1998년 서울 대학로에 '아프리카미술박물관'을 세웠다.

제주 아프리카박물관은 총 650여 점의 아프리카 민속유물과 미술품을 소장하고 그 중 45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현재 아프리카에는 54개국 2천여 부족이 있는데, 그중 30개국 70여 부족의 민속미술품들을 소장하고 있으니 개인박물관으로서는 만만치 않은 컬렉션이다. 주로 서아프리카 쪽의 유물이 많은 편이다.

이 박물관은 개관 초기 이름 '아프리카미술박물관'이 더 어울려 보인다. 아름다운 전시공간이 미술관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박물관이던 미술관이던 둘러본 관람객들이 '미개와 무지의 땅 아프리카'라는 선입견을 바꾸는 것을 보면 작은 보람을 느낀다고.

우리와 흡사한 점이 많은 아프리카 문화

 
▲ 말리공화국 도곤 부족의 가면에는 우리의 금관에 달린 출자(出字)무늬 장식이 달려있다.
ⓒ 아프리카박물관
이 박물관을 다 둘러보기 전에 깨닫는 것이 또 있다. 미술사 또는 문화사에 대한 전문 지식이 전혀 없어도 아프리카박물관 전시물에서 어렵지 않게 우리 문화의 흔적을 읽어내는 것이다. 전시물을 보면서 "어디서 많이 봤는데?"하는 혼잣말은 차츰 "아하!"로 바뀐다.

말리공화국 도곤 부족의 축제용 가면 장식에는 경주나 부여 박물관에서 보는 금관의 출자(出) 무늬와 같은 모양의 장식이 있다. 너무나 흡사하다.

또 응데벨레 부족의 움막 출입문은 우리네 농가에서 몰래 가져다 놓은 듯 비슷해 혼란스럽기까지하다. 양쪽 문을 여며 안에서 잠그는 시건 장치는 마치 우리의 대문 빗장을 보는 듯 세부 모양까지 똑같다.

더 흥미로운 것은 아프리카 민속 공연팀의 공연. 지하 공연장에서 세네갈에서 온 공연팀(젬베리듬)의 한시간 공연을 보고나면 관람객들은 완전히 아프리카 문화에 매료된다. 우리 전통음악과 아프리카 민속음악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가까이서 듣기는 처음인 아프리카 리듬에 초등학생부터 어른까지 능숙하게 손박자를 맞추고 어깨를 들썩인다. 전혀 거부감이 없는 편안하고 흥겨운 몸놀림들이다. 너나없이 마치 우리의 마당놀이 판에 끼어앉은 착각을 하는 듯하다.

서구인들이 어려워하는 "대~ 한 민 국!" 엇박자 응원을 우리 어린이들은 능숙하게 따라하듯, 아프리카 리듬에 들어있는 엇박자가 친근하게 다가오기 때문일까. 그렇다. 많은 관람객들이 아프리카박물관에서 아프리카 유물들을 보면서 엉뚱하게도 한국을 느낀다.

 
▲ 응데벨레 부족 움막의 출입문은 우리 농촌의 것과 구별이 힘들 정도.(사진 왼쪽) 아프리카 민속음악 공연은 이 박물관 최대 인기 품목. 우리 전통 리듬과 아주 흡사하다.(사진 오른쪽)
ⓒ 아프리카박물관
 
"내가 지은 것이지만 박물관은 사회의 것"

스스로를 박물관 관람 초보자라고 소개한 김원경(37·여·서울 구로동)씨는 "결국 사람 사는 건 우리나 아프리카나 다 같은가 보다" 라는 생각을 했다고. 제주에 관광 왔다가 뜻밖의 경험을 하고 간다면서, 서울에 가면 다른 박물관도 가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는 말도 한다.

박물관 관람 초보자가 아프리카박물관에 들렀다가 '인류 문화의 원천적 동질성'이라는 거창한 문화사 공부를 하고 가는 것이다.

박물관 한 시간 남짓 관람에 수준 높은 문화사 강의를 들은 셈이다. 박물관의 사회교육기능이란 것이 거창하고 부담스런 학습과정이 아님을 실감한다. 제주를 방문했다면 아프리카박물관을 둘러보고 아프리카에 대한 문화 인식을 바꾸고 간다면 어떨까.

박물관이 딱딱할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프리카박물관을 찾는다면 박물관이 가진 또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박물관 뿐 아니라 제주도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박물관은 틀에 갇힌 교실에서 벗어나 저렴한 비용으로 알찬 문화교육을 받을 수 있는 흥겨운 장소다.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마찬가지.

제주의 아프리카박물관에서는 오늘도 많은 관람객이 아프리카 유물에서 한국을 발견하며 색다른 문화적 체험을 한다. 그 색다른 체험은 고급 문화를 누리는 것이 결코 전문가들만이 전유물이 아님을 깨닫는 짜릿한 감동이다.

한종훈 관장은 "내가 지은 것이지만 박물관은 사회의 것이다"고 말한다. 아프리카 미술품에 매력을 느껴 전 재산을 투자해 아프리카박물관을 만든 한 관장 같은 이들이 있기에 사람들이 색다른 경험과 문화적 희열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 동아프리카 여러 부족들의 목침. 마치 우리나라 민속박물관의 조선시대 유물 몇 점을 옮겨놓은 듯하다.
ⓒ 곽교신


 
  "적자라도 계속 박물관 계속 열겠다"  
 
 
한종훈 관장이 2004년도에 아프리카박물관을 제주로 옮긴 것은 대단한 모험이었다. 공대 건축과 출신의 인테리어 사업가로 평생 모은 재산을 정리한 70억과 은행빚 30억을 몽땅 박물관 이전에 쏟아부었다. 그의 살림집은 박물관 3층에 마련했다.

거액을 투자하고도 적자를 내는 많은 사립박물관들을 볼 때마다 슬쩍 떠보는 말이지만, 평생 번 돈을 박물관에 쏟아부은 한 관장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콘텐츠도 괜찮은데 박물관 팔고 그 돈으로 편히 사시지요?"

그러나 대답은 간단명료하다. "그건 안되지" 왜냐고 되묻자 "미쳤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제대로 미친사람들도 좀 있어야 이 사회와 문화가 돌아가는 거 아니냐"고 되묻는다. 거액의 돈을 들여 자기 것이 아닌 사회 공유의 박물관을 짓는 한 관장같은 '미친 사람들' 때문에 우리 문화의 한 축이 그나마 돌아간다.

아프리카박물관은 대전의 계룡산자연사박물관(관장 조한희)과 함께 정부의 지원없이 개인의 자산과 열정만으로 버티는 우리나라 사립박물관의 상징적 문제를 모두 안고 있는 '사립박물관 문제의 교과서'다. 한종훈 관장은 올해 역시 1억 이상의 적자를 각오한다면서도 '이 나라 박물관의 미래는 밝다'며 웃는다. / 곽교신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와의 기사제휴 협약에 의해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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