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68) 빈말은 식은 밥 덩어리만도 못하다

* 밥 벙뎅이 : 밥 덩어리의 제주방언

빈말은 한마디로 실속이 없는 말이다. 허풍선의 말잔치같이 허무맹랑한 것은 없다. 말로야 못할 게 무엇이랴. 꿈같은 얘기로 둘러대 상대방을 현혹시키기도 하는 게 빈말이다. 허드레 말에 불과한 것일 때, 빈말을 한 자나 듣는 사람이거나 간에 얼마나 허무한 노릇인가. 세상에 그런 헛헛한 일이 없다. 

빈말보다는 차라리 찬 밥 한 덩어리가 낫다는 빗댐이다.

허황한 말을 경계해 꼬집는다. 말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것 같이 참 실감 나는 비유다. 

언젠가 얘기했듯, 우리 선인들이 간직했던 언어는 거칠고 투박한 듯 섬세하고 감성 어린 것이라 수사적(修辭的) 표현에도 능했다. 그걸 여실히 보여 준다. 물질적 결핍 에도 제주의 아름다운 산천 풍치에서 오는 정서도 한몫 했으리라.

빈말은 곧 허언(虛言)이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꾸며대어 하는 말을 이른다. 그냥 무턱대고 하는 게 아니다. 다분히 어떤 목적을 가지고 거짓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보통 사람도 의식적으로 거짓을 하지만, 지나친 경우 성격편의(性格偏倚, 한편으로 기울어 나타나는 편향성)를 기반으로 때로는 공상적으로 거짓을 말할 수도 있다. 이쯤 되면 ‘허언증’ 수준이다.

가공(架空)해 꾸며 놓은 얘기를 마치 진실인 양 상세히, 그럴싸하게 말하는 것. 현실에 바탕을 두는 수도 없지 않으나, 대부분은 만들어 낸 것이고 내용은 ‘과대적(過大的)’이다. 말은 할수록 부풀리게 된다. ‘떡은 돌릴수록 족아지곡, 말은 돌릴수록 커진다’고 했다. 말의 속성상 그렇게 흐를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공상에 의해 만들어 낸 얘기를 하는 가운데 자신의 빈말, 허언을 진실한 것으로 단정해 버리거나, 허언이라는 인식과 진실이라는 신념의 이중의식으로 빠져들어 마침내 자신이나 남을 기만하게 된다. 이 경계에 이르면 그대로 ‘공상허언’이다.

단순히 허풍 떨거나 과장이 심한 경우와도 다르다. 허언증은 자신이 왜곡(歪曲)한 사실을 스스로 진실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거짓말에 대해서는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심하면 인격 장애로 갈 우려를 낳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증상이 있다. 

소설의 작중인물에서 유래한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 이는 자신이 현실을 부정하면서 자기가 만든 허구를 진실이라고 믿고 거짓말과 행동을 일삼은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뜻한다. 미국의 소설가 페트리샤 하이스니스의 <재능 있는 리플리 씨>에서 유래했다.

그냥 지나치려다 한마디만 하려 한다.

지난번 차고술금 67회 <또린 놈이나, 맞인 놈이나>에서다. 제자임을 자처한 한 분의 댓글을 보며 씁쓸했다. 

행여, 한때 필자와 사제의 연(緣)을 맺었던 사이라면 차마 그런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글과도 무관한 댓글이다. 나는 대입 본고사가 있던 1970~80년대에, 그것도 10년 넘게 그 학교에서 졸업반 담임으로 대입지도에 몸을 던졌던 사람이다. 집과 학교만을 오가던 그런 구도에 갇혀 살았음을 토로한다. 
  
누가 말하듯 그런 교사였다면, 그 학교에 세 번씩이나 발령 받아 10년도 더 근무할 수 있는가. 나는 J 고교에서 ‘청춘을 불사른 사람’이다.’ 뒤에서 빈말을 하는 것은 스스로를 돌아보아 성찰이 따라야 할 일이다. 가상공간에서 그러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빈말은 식은 밥 벙뎅이만도 못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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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없는 일을 거짓 꾸며 말하는 빈말은 결코 신실(信實)한 사람이 지닐 덕목이 못된다. 삼가야 한다.

내 글을 읽어 주는 독자가 있는 한, 계속 쓴다. 무소의 뿔처럼 용맹 정진할 뿐이다. 음울한 울안에 갇혀 있지 말고 민낯을 드러내야 할 것이다. 

유사한 속담이 있다.

‘빈말은 식은 죽만도 못 헌다’. 말은 제아무리 그럴듯해도 소득이 없으면, 그에 비해 식어 풀어진 죽 한 술이 낫다 함이다. 까딱하다 감언이설에 넘어가기 쉽고, 현란한 말재간에 이끌려 해를 입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아무리 사탕발림일망정 실속 없는 빈말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허황된 말은 백 번 경계해야 옳다. 그걸 꼬집고 있다.

‘빈말은 식은 밥 벙뎅이민도 못헌다, 혹은 ‘식은 죽만도 못헌다’. 실로 허언의 속성과 공허함, 그 정곡을 짚어 냈다. 없는 일을 거짓 꾸며 말하는 빈말은 결코 신실(信實)한 사람이 지닐 덕목이 못된다. 삼가야 한다.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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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모색 속으로>, 시집 <그때의 비 그때의 바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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