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29) 송산동 자구리해안 용출수
  
송산동의 옛 지명 ‘솔동산’은 소나무가 동산을 메웠다고 하여 붙여졌다. 소나무 숲에서 유래해 현재 행정동 명칭을 송산동이라 한다. 법정동은 서귀동이다. 송산동 소나무는 바다로부터 들어오는 외부의 적을 방어하는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솔동산이 있는 자구리 해안가에는 자구리물과 소남머리물이 있으며, 지금은 여름철 담수욕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자구리물(자구릿물)은 칠십로길 서귀포항 동측 해안가 앞개 여러 곳에서 암반 틈새로 솟아나는 산물이다. 용출량이 많아 인근 주민들이 식수이자 생활용수였으며, 지금도 빨래를 하는 주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자구리는 옛날부터 물이 풍부하여 수도가 가설되기 전에는 이곳에서 물허벅을 이용해 식수로 사용할 만큼 이 지역의 귀한 물이었다. 또한 이곳 자구리 엉(낭떠러지 비슷이 된 암석이란 뜻의 제주어)에 점을 치고 길흉을 봐주는 진안할망(관청할망)당이 있어 치성 드릴 때 올리는 물로도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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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구리물 입구.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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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자구리물(1990년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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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구리 동측 엉에서 용출되는 산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예전에 가축 도축을 위해 이 물을 도축장에서 사용하였기 때문에 ‘소를 잡으러 가자’란 뜻이 와전되어 ‘잡으러’가 ‘자구리’로 불렀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지만 어원의 유래는 명확하지가 않다. 이 산물에서 동측 엉 밑에서 자구리물이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물이 다량으로 바위틈을 헤치고 솟아나와 바다로 흘러내리고 있다.

현재 이 산물은 담수욕장으로 개수되어 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기는 장소로 타바꿈했다. 관광객들이 서귀포 앞 바다를 관조하는 해안공원이자 탐방 장소가 됐다. 그리고 이 용출수를 모티브로 여름에는 자구리축제가 열린다. 안타까운 것은 자구리물 서측을 상수도 원수로 이용하려고 자구리광역원 수원지로서 개발하였지만 수질오염 문제로 장기간 폐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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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자구리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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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자구리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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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구리 광역수원.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자구리물에서 동측으로 100m정도 떨어진 해안가 절벽에 소남머리물(소낭머리물)이라는 산물도 용출된다. 이 물은 절벽 밑 암반 틈의 여러 지점에서 솟아나와 연중 흐르는 물이다. 식수로도 사용했지만 주로 목욕하는 물이었다. 특히 백중날 물 맞는 장소로 많은 사람들이 찾았으며, 여름철 서귀포 앞바다의 풍광을 보며 목욕을 즐기기 위해 주민들이 애용했던 장소이다. 

소남머리의 유래는 지리학상으로 '소머리'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소남머리라고 부른다는 설이 있다. 다른 내용이라면 소나무가 많은 동산(머리)으로 바다 쪽으로 돌출되어 있는 암석을 보면 소나무들의 머리 부분(윗부분)이 보인다는 데서 소남머리라고 부른다는 설 등이 있다. 지금도 해안가 언덕에는 소나무 군락으로 숲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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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남머리 전경.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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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남머리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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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남머리물 탕(좌 남탕, 우 여탕).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 물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의 냉동공장에서 사용하기 위해 정지작업을 하기도 했다. 현재는 남탕과 여탕으로 구분하여 목욕을 할 수 있도록 시설 개수됐다. 탕 앞 광장에는 남녀 구분 없이 노천욕을 즐길 수 있도록 원형으로 된 큰 물통 두 개를 만들어 놓았다. 지금 소남머리물은 현대적으로 치장되어 옛 정취는 퇴색되었지만 서측 엉에서 예나 지금이나 자연의 상태로 끊임없이 용출하는 소남머리물을 만날 수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된다. 

아쉬운 점이라면 서귀포시민뿐만 아니라 탐방객 등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지만 산물에 대한 소개나 안내판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산물보다는 확 트인 서귀포 앞 바다나 해안의 주상절리 등 기암괴석을 감상하는 장소로만 인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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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수 전 소남머리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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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수 후 소남머리 남탕.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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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수 후 소남머리 여탕.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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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남머리 서측 엉에서 용출하는 산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고병련(高柄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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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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