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종교인들 간담회…'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 결성 합의

우리사회에 종교가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생명과 평화가 공동의 선이자 공동의 가치라면 이를 구현하기 위한 종교인의 역할은 무엇인가. 과연 종교는 사회를 개혁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아니면 오히려 개혁의 대상인가.

생명과 평화를 화두로 제주지역 종교인들이 11일 모처럼 한 자리에 모였다.

모임의 명칭은 '생명·평화를 위한 제주종교인 간담회-평화의 섬 제주를 위한 종교인의 역할'로 이날 오후2시 제주도중소기업지원센터 소회의실에서 자리를 함께 했다.

지난달 24일부터 제주에서 탁발순례 길에 나선 도법·수경 스님이 호소한 '생명·평화 탁발순례'가 계기가 됐다.

남들(?)도 제주의 생명과 평화를 위해 탁발순례를 하는 데 제주에 삶의 터전을 삼고 있는 제주지역 종교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자기반성과 성찰에서 마련된 자리였다.

이날 모임에는 탁발순례단의 도법·수경 스님과 제주지역 불교계의 대효 스님(원명선원 주지) 시몽 스님(법화사 주지) 강설 스님(산방산 보문사 주지) 관효 스님(혜관정사 주지), 천주교계에서 임문철 신부(중앙성당 주임신부) 고병수 신부(제주교구 사무국장) 현성훈 신부(신창성당 주임신부),  개신교에서 이정훈 목사(늘푸른교회 담임목사) 박영조 목사(복된교회 담임목사) 제현우 사관(구세군 제주교회 담임) 김준표 목사(살림교회), 원불교의 황범심 교무(신제주교당) 이묘신 교뮤(애월교당) 방인성 교무(탐라교당) 등 도내 4대 종교 성직자들이 참여했다.

제주지역 종교인들의 모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6년전 제주지역종교인협의회를 만들어 오름 지키기 운동과 한라산보호 캠페인, 노동법 개악 저지를 위한 촛불기도회 등을 벌여왔으나 모임의 구심체가 흔들리고 구체적 사안을 모색하지 못해 최근 몇 년 동안은 활동을 멈췄었다.

"제주에서 평화의 꿈을 피우지 못한다면 한반도 어느 지역도 불가능"

이날 모임의 계기는 역시 도법 스님과 수경 스님의 탁발 순례였다. 이를 계기로 생명과 평화를 위해 제주의 종교인들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놓고 이심전심으로 자연스레 그 필요성을 느껴온 것이다.

화두는 도법 스님이 꺼냈다.

도법 스님은 "제주를 돌면서 제주의 아픔과 상처가 그 동안 들어온 것보다 절절하다는 것을 느꼈고 또 이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고 극복하려는 노력이 절절함도 느꼈다"면서 "한반도에서 제주에서 생명과 평화의 꿈을 꾸고 그 꿈을 현실화하는 작업을 하지 못한다면 다른 지역은 꿈꾸는 일도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생명과 평화에 대한 제주의 가능성을 제기했다.

도법 스님은 "제주가 '평화의 섬'과 '자유도시'를 기조로 삼는 것은 제주도가 남다른 아픔이 있었기에 가능하며, 그 기조 자체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한 후 "정치인이나 행정가, 사업가, 지식인 등에 자유와 평화를 맡겨버릴 경우 왜곡 변질될 위험성이 높기 때문에 종교인들이 앞장서서 지역사회의 꿈을 실천하도록 역할 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종교인들의 역할을 주문했다.

또 도법 스님은 "경험적으로 보면 종교인들간에 만남과 교류는 많았으나 결국은 흐지부지 되는 한계를 보여왔다"면서 "구호를 내세우기 보다는 평화와 자유, 공동의 선을 가꾸기 위해 공동의 과제를 놓고 함께 일해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방향을 제안했다.

"제주도민의 평화의 욕구는 4.3의 피해가 있었기에 가능하다"

김준표 목사(살림교회)는 "평화란 피해자의 입장에서 말하느냐, 가해자의 입장에서 말하는 가에 따라 그 개념이 너무나 다르다"라고 전제한 후, 이라크에 보내는 군도 '평화유지군'으로 보내지만 어떻게 그것을 '평화'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고는 "제주도가 평화의 섬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4.3의 피해자인 제주도민들이 평화를 요구하고, 평화를 이루겠다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라고 제주도민들이 추구하는 평화의 의미를 강조했다.

대효 스님은 종교의 역할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대효 스님은 "종교만큼 보수적인 속성을 지닌 곳이 없으며 가장 보수적인 집단이 종교"라고 말문을 꺼낸 후 "학교와 교육, 산업 모든 면에서 앞장서서 이끌고 나가야 하는 종교가 사실은 제일 (변화에) 늦다"고 자성했다.

"원래 생명 자체가 반평화적 반평등적이며, 반소금적이자 반목탁적"이라며 생명을 역설적으로 이야기 한 대효 스님은 "누가 만들라고 하지 않아도 종교가 자연스레 만들어진 게 이 때문으로 제주의 평화를 위해 종교인들이 지금부터 씨를 뿌리고 가꾸는 준비를 해야 한다"며 생명·평화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방인선 교무는 "평화의 문제는 각자가 처한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다"면서 "4.3문제나 생태계, 심지어는 청년실업문제도 보는 이에 따라서는 평화의 문제"라며 평화문제에 대한 구체적 접근을 요구했다.

"제주의 아픔에 동참하지 못한 잘못에 대해 먼저 반성해야"

이정훈 목사는 "지난 1986년 전세계 기독교가 생명·평화·창조·질서의 보존을 화두로 내걸었으나 개교회주의에 묻힌 교회가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 보다는 때로는 지탄이 대상이 되고 있기도 하다"며 종교의 역기능에 문제를 제기한 후 "제주의 종교인들이 지금까지 제주의 아픔에 동참하지 못한 잘못에 대해 먼저 반성을 한 후 지역의 문제에 무관심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시몽 스님은 "개인은 종교적으로 부처가 되는 것처럼 혁명을 이룰 수 있으나 종교가 사회혁명을 하고, 평화를 구현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고 말문을 연 후 "위정자에 의해 평화가 짓밟히고 있으나 과연 종교가 무슨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그 역할은 미미하다"고 말하면서도 "그러나 종교인이 자기 스스로를 던지는 것만이 생명과 평화를 위한 시금석이 될 것"이라며 종교인들의 적극적인 자세를 촉구했다.

한편 이날 모임에 참석했던 종교인들이 제주지역의 평화를 위한 활동을 펼칠 수 있는 (가칭) '평화를 위한 제주종교인회의'를 구성하는데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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