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30) 동홍동 동홍로 용출수

‘홍로, 홍리’라 했던 홍로촌은 매우 오래 전에 촌락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가 되서야 동·서홍리로 분리됐다. 동홍동은 '동쪽에 있는 홍로'에서 연유한 이름이다. 이 마을은 한라산 최고봉에서 방아오름을 따라 미악산에 이르는 맥을 이어받고, 산지천과 정방폭포의 물인 서귀중학교 뒤 정모시 하천의 용출수를 생활용수로 이용하면서 설촌하게 되었다고 한다.

동홍주공아파트 5단지 입구 동홍교가 있는 중산간동로 남측에 산짓물(산지천)이란 돌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하천 계곡에 있는 산물인 산짓물은 동홍마을의 귀한 식수였다. 이 산물은 폭포도 아니면서 벼랑 측벽에서 폭포같이 솟아나 계곡에 떨어지는 동홍동의 명소다.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까지만 해도 물이 솟는 지점은 식수로 아래쪽은 목욕물로 나누어 사용한 동홍동 주민의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지금은 소공원으로 꾸미고 여름철 피서 및 목욕장소로 이용한다.

이 산물은 제주시 산지천의 큰딸이 이곳에 시집온 물로 전해지고 있어 마을사람들은 ‘산지천 큰년’이라 부르기도 한다. 특히 5월 장마 때 천둥치고 난 후에는 구멍이 터지면서 큰물이 솟는다고 한다. 유독 여름철에만 큰물이 솟는 것은 겨울에는 큰딸이 친정인 제주시 산지물로 가버리기 때문이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그래서 이 산물은 겨울로 접어들면서 수세가 약해지다가 봄이 되면 점점 회복하여 여름에 절정을 이루는 산물로 여름 식수라 한다. 식수로 썼던 산물 아래 쪽에 남자와 여자 목욕탕이 있었으며, 용출된 물을 모아두는 소(沼)의 깊이는 10m 정도이나 물은 바닥이 보일 정도로 맑고 차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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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짓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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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짓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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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짓물 목욕탕.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동홍로의 겨울 식수는 가시머리물이다. 이 산물은 산짓물에서 북동방향으로 400m 정도 떨어진 곳인 지장샘으로 가기 전, 미나리밭 샛길을 따라 가면 가시머리동산 중턱에서 만날 수 있다. 가시머리물이 용출하는 지점인 원류는 물이 내리는 돌구시(수로) 바로 뒤 10m 쯤에 있는 경계돌담 밑 암반 틈이다. 서홍동에 지장샘이 있다면 동홍동에는 가시머리물이 있다고 할 정도로 사시사철 솟는 좋은 물로 알려져 있다. 암반 틈에서 솟는 산물은 식수뿐만 아니라 논농사도 지었던 물이다. 예전에는 이 산물을 대답천(大畓泉), 조연(藻淵), 큰논샘이라고도 했는데, 이 산물 하부에 큰 논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불려진 이름이다. 큰 논은 가시머리물 서북측에 있는 서홍동 지장샘과 합류되어 만들어졌는데, 지금은 미나리 재배지로 바뀌었다.

가시머리라는 명칭은 짐을 싣기 위해 소 등에 올려놓았던 도구인 '질(진)매가지'가, 이곳 지형과 닮았다고 하여 '가지머리'로 부르다 '가시머리'가 되었다고 한다. '머리'는 동산을 나타내는 제주어다. 가시머리물 위에 있는 커다란 왕석은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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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시머리물 전경.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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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시머리물 용출지점.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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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시머리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옛날 밥 많이 먹는 사람이 살았는데 밥을 너무 많이 먹어서 마을에서 쫓겨난 후 너무 배가고파 가시머리물에 가서 물만 먹다가 왕석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왕석을 만들 정도로 물 힘이 좋은 산물은 그 맛이 어떤 산물에 비할 바 없이 좋아, 한 때 상수원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이 물은 제를 지내거나 당에 갈 때 길어가 썼을 정도로 정화수 같은 용출수 역할을 했다. 지금은 약수터의 약수물로 시민들에게 사랑 받는 쉼터다.

이 마을에는 산물어위란 곳이 있다. 이곳은 미악산 서측 일대로 ‘생수가 나는 둘레’란 뜻이다. 예전에 마을사람들이 이곳에 지하수를 파려다가 아래 동네에 물이 나오지 않을까봐 포기했다고 한다. 이렇게 남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의 정신이 있기에 마을의 산물들은 지금도 사시사철 끊이지 않고 여전히 솟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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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시머리물 돌구시(수로).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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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시머리물과 상수원 보호구역(흰 간판 뒤).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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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시머리물 하부의 큰 논(미나리재배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고병련(高柄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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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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