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듣는 '세계화와 삶의 위기']"저항의 세계화 동반"
강수돌 교수 "세계 곳곳 민초들의 저항 몸부림"

'세계화'는 우리 시대의 가장 큰 화두가 되었다. 90년대 들어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총체적 분석이 결여된 채 ‘국제화’니 ‘세계화’를 국정의 지표로 외치기 시작하면서 ‘세계화’에 따라가지 못하면 낙오된다는 인식은 이미 우리의 머릿속 깊이 뿌리를 내린 상태이다.

지금의 한미 FTA논란에서도 보듯이 ‘세계화는 거역할 수 없는 대세이므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며 선진국가로 발전하기 위한 바탕’이라는 강력한 신념이 정책결정권자와 기득권층에 만연해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세계화가 ‘자본만의 세계화’라는 데에 있다.

이러한 ‘세계화’에 대한 구체적 문제제기는 마르틴과 슈만이 공동으로 집필한 ‘세계화의 덫’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을 번역하여 세계화의 문제를 국내로까지 끌어들인 이가 바로 ‘강수돌’이다.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의 강수돌 교수는 세계화에 대응하는 대안적인 사회 논리를 만드는데에 주력하여 왔다. 노동-교육-경제-생명을 서로 연결된 고리 속에서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심하며 살고 있기도 하다.

제주환경운동연합에서는 오는 7월 25일, 저녁 7시 제주시참사랑문화의집 강당에서 강수돌 교수를 초청해 ‘세계화와 삶의 위기’란 주제로 강연회를 마련한다.

강수돌 교수는 이 강연에서 세계화 또는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최근의 전세계적 논란에 대하여 철학적 배경, 문제점, 타국가의 사례, 그리고 대안까지 이야기할 예정이다. 강의문을 요약하여 미리 싣는다. (정리=양수남 제주환경운동연합 생태현안팀장)

1.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특성

우선 작금의 세계화 물결은 네 가지 기둥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것은, 개방화, 탈규제화, 민영화, 유연화 등이다. 개방화는 초국적자본이나 세계금융시장에 국경을 개방하라는 것이고, 탈규제화는 국가나 노조의 자본에 대한 간섭과 제한을 철폐하라는 것이며, 민영화는 공공 부문이나 국가 복지를 민간 자본에게 넘겨 수익성 원리에 따르게 재편하는 것이고 유연화는 노동시장과 기업조직을 신축적으로 개편하는 것이다.

이러한 물결을 추동하는 주요 주체는 일차적으로 초국적자본이나 세계금융시장이지만, 그 뒤에는 IMF(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WTO(세계무역기구)와 같은 국제기구가 있고, 그 앞에는 민족국가와 그 대리자인 파워엘리트가 있다. 이에 동조하는 학자와 언론이 도처에 존재한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의 특성을 보이고 있다.

첫째, 기존 민족국가의 상대적 배제 또는 약화를 들 수 있다. 범지구적 자본은 한편으로는 시장 자유주의를 내세우며 국가를 배제하려 하면서도 다른 편으로는 국가가 사회와 민중에 대해 시장 자유주의를 현실화하도록 강제한다. 예컨대, 미국이 식료품 유통과 관련, 한국을 WTO에 이의신청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자마자 한국 정부는 식품안전에 관한 두 개의 법률을 완화시켰다.

심지어 WTO는 개별 기업이 한 국가를 고소할 수 있는 권리까지 부여한다. 예컨대, 미국계 기업인 <에틸>사는 망간이 함유된 유독성 가솔린 첨가제를 생산했는데, 이것이 연소될 때 나오는 물질이 사람들의 건강에 치명적임을 안 캐나다 의회가 자국의 환경법에 근거해 1997년 4월에 이 가솔린 첨가제의 수입과 운반을 금지하자 캐나다 의회를 제소했다. 마침내 캐나다 정부는 일개 기업의 권력 앞에 무릎을 꿇었고 수입 금지 취소와 더불어 1,300만 달러의 손해배상과 소송비용을 에틸사에 지급했다.

둘째, 세계금융시장은 갈수록 실물 경제와 유리되면서 ‘카지노 자본주의’를 창출한다. 카지노 자본들은 고도의 정보기술을 활용, 순간적 시세차익을 노리면서 엄청난 뭉칫돈 형태로 지구를 수십 바퀴씩 돌아다닌다. 금융체제의 불안정성, 경제사회 불안정이 고조됨은 물론이다.

한편, 스탠더드 앤 푸어스나 무디스, 피치 같은 신용평가기관들이 세계 금융의 흐름을 사실상 막후 조종한다. 이들은 모두 한 나라의 의사결정 체계를 심각히 왜곡하고 마침내 ‘국민주권’의 무력화와 곳곳의 자립적 경제방식을 파괴한다. 게다가 공영기업이나 공공부문 민영화 과정에서 초국적기업이나 금융자본들은 각 나라의 부를 헐값으로 집어삼킨다.

셋째, 세계자본의 의사결정과 활동이 ‘되돌리기 어려운 범지구적 파국’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오늘날 세계에는 약 4만 개 정도의 초(다)국적기업들이 활동 중인데 이들이 60억 명에 이르는 지구촌 사람들의 사회경제적 생활상을 좌우한다. 이들 기업 중 500개 정도가 전 세계 무역의 3분의 2를 차지하며 그 중 약 절반은 자기들끼리의 내부 네트워크를 통한 것이다.

특히 지엠이나 엑슨, 아이비엠 등 15대 초대형기업들의 수입은 120개 나라의 수입 합계보다 많을 정도로 그 정치경제적 영향력이 막대하다. 나아가 초국적자본은 동남아의 새우 양식장이나 바나나 농장, 댐 건설, 남미와 아프리카의 산업형 축산지대 등에서 보듯 인간과 자연이 조화로이 살던 모든 삶의 터전을 무참히 파괴한다.

넷째, 초국적자본, 세계금융자본, 세계기구들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뒤에는 강력한 정치군사적 힘이 도사리고 있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거부하고 특히 미국 중심의 ‘제국’에 저항하는 나라는 ‘고강도 전쟁’을 통해 초전박살 내려고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소말리아, 유고, 아프간이나 이라크는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질서 형성에 협력하기를 거부하고 지속적 위협이 되었으므로 전쟁과 점령의 대상이 되었다. 이것은 기존의 군산학 복합체가 더욱 노골적으로 범지구적 차원에서 작동하는 것으로, 한편으로는 그것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수호자’ 역할을 하고 다른 편으로는 군수자본 그 자체가 엄청난 ‘이윤 공간’으로 된다.

2. 세계화가 삶의 문화에 미치는 영향

(1) 자립성의 범지구적 훼손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가난한 나라들의 기아와 빈곤 문제는 한마디로, ‘개발’이 안 되어서가 아니라 ‘세계자본’에 의한 ‘개발’과 ‘구조조정’ 때문에 비롯된다는 것이 많은 통찰력 있는 분석들의 결과이다. 특히 각 사회가 전통적으로 이어온 ‘자립경제’가 자본주의 이후 지속적으로 파괴되어 왔으나 특히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더불어 ‘화폐 경제’가 심심산골까지 스며들면서 더욱 급속히 파괴되고 있다.
독일의 볼프강 작스는 필리핀의 민데나우 섬에는 불과 20년 전만 해도 자급 경제가 뿌리내리고 있었지만, 돌(Dole)이나 델몬트(Del Monte) 같은 초국적 농식품기업들이 그 섬에 들어가 환금작물인 파인애플을 대량생산하도록 하는 플랜테이션 농장을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지난 15년간 민데나우 섬에서 파인애플 생산은 네 배나 늘었다. 이제 민데나우 섬엔 전통적 자급 경제는 사라지고 경작지의 50%가 파인애플, 바나나, 커피, 목재, 코코넛 등을 재배하는 거대 자본에 의해 통제된다.

(2) 다양성의 범지구적 파괴
 
  <에콜로지스트>의 부편집장인 폴 킹스노스는, 세계화란 한마디로, 세계를 획일화하는 비민주적 시장권력이라 규정한다. 삶의 다양성이 범지구적으로 파괴되는 전형적 사례를 ‘맥도날드 세계’에서 볼 수 있다. 맥도날드 문화는 한마디로, 사람들이 배고픔을 느낄 때 그 고유의 밥을 생각하기보다는 통일적으로 맥도날드 햄버거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목이 마를 때는 코카콜라를, 놀이 공원에 가고 싶을 때는 디즈니랜드를, 만화 영화를 보고 싶을 때는 디즈니 만화를 보고 싶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도날드 문화는 세계 곡물 시장의 80%를 장악한 거대 곡물 메이저들의 탐욕과 이들을 직간접으로 지원하는 WTO 체제가 조장한다.

(3) 순환성의 범지구적 단절

50억 년에 이르는 지구 역사 중에서 지금처럼 파괴적인 경제는 불과 500년인데 이 짧은 시기에 온 생태계의 물질대사 순환 고리가 급속도로 파괴되고 있다. 정보화와 과학기술을 무기로 추진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그나마 남아 있던 후미진 곳도 쏙쏙 찾아 자본의 순환 고리로 포섭해나가며 그렇게 되는 순간 자연적 삶의 순환 고리는 파괴된다.

아룬타이 로이는 <9월이여, 오라>에서 인도의 나르마다 강과 41개 샛강을 메워 무려 3200개 댐을 건설하는 프로젝트가 어떻게 토착민의 삶과 자연의 순환고리를 파괴하는지 생생히 보여 준다. 나르마다 유엔개발계획으로 불리는 이 사업에는 세계의 다국적기업들이 대거 참여하는데, 대형 댐만도 30개에 이른다. 이 수천 개의 댐을 만드는 과정에서 무려 2,500만 명의 (자연 속에 소박하게 살던) 토착민들의 삶이 박탈당하고 숲이 물 속에 잠긴다.

예컨대 1990년에 완공된 최초의 댐인 바르지 댐을 보면, 돈은 원래 예산보다 10배나 많이 들었고 수몰 지역은 기술자들이 예상했던 넓이의 3배에 이르지만, 완공 후 10년이 지난 뒤 바르지 댐으로 관개가 가능한 땅은 수몰지역의 넓이 정도밖에 되지 않아 정책 입안자들 선전했던 면적의 5%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대형 ‘사기’라는 것이다. 그 사이에 162개 마을에서 소박하게 살던 11만 4천명의 사람들이 재정착 프로그램이 전무한 상태에서 삶의 터전을 박탈당했다.

3. 풀뿌리의 반작용과 향후 전망

그러나 다른 편에선 저항 및 대안 형성의 물결도 거세다. 한마디로,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저항의 세계화’를 동반하고 있는 것이다.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개시와 더불어 멕시코 농민들은 반군을 조직해 정부는 물론 초국적자본에 저항하고 있다. 이들이 주목받는 것은 ‘연대의 세계화’를 실천한 것을 넘어, 저항의 형식에서나 권력과 민주주의 개념에 있어 풀뿌리 민중의 입장을 철저히 견지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오늘날과 같은 저항과 연대의 세계화에는 아무래도 1999년 미국 시애틀에서 WTO 각료회담을 저지시킨 세계 민중의 운동이 큰 계기가 되었다. 그 이후, IMF나 WTO가 주도하는 각종 국제회의마다 저항의 세계화를 위한 대오가 형성되었다. 동시에, 세계자본들의 전략 회의인 ‘세계경제포럼’에 대항하여 세계민중들은 2000년부터 브라질의 포르투알레그레나 인도의 뭄바이에서 ‘또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란 기치 아래 ‘세계사회포럼’을 조직하고 있다.

이미 1994년부터 인도의 소농들은 자립성과 다양성, 순환성을 파괴하는 세계자본에 저항하기 위해 ‘농민의 길’(Via Campesinos) 운동을 조직해왔다. 아프리카 케냐에서는 세계은행 차관을 매개로 커피 재배가 강요되자 농촌 여성들이 먼저 나서 사보타지를 벌여 전통적인 생계경제를 지혜롭게 수호했다.

브라질에서도 토지로부터 축출당한 농민들이 ‘토지 없는 농민 운동’(MST)을 조직해, 불과 1% 미만의 부자들이 거의 절반의 땅을 소유하고 돈벌이에 치중하는 현실을 바꾸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남미 볼리비아 코차밤바 주민들은 물을 민영화한 정부의 신자유주의와 초국적자본 벡텔을 상대로 저항한 결과 승리를 쟁취했다.

캐나다와 프랑스에서도 ‘물의 사유화’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고 있다. 또 세계금융자본의 ‘카지노 자본주의’에 효과적으로 저항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아탁’(금융거래과세운동) 운동이 출범해서 세계 각국에 번지고 있다. 또한 조세 보베 등 프랑스 농민들은 호르몬 쇠고기의 수입 반대는 물론, 맥도날드 가게를 공격하고 GMO 종자들을 못 쓰게 만들어버리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쿠바는 1990년 초에 소련의 붕괴로 생존의 위협을 느끼게 되자 모든 토지에 유기농으로 먹을거리를 재배하는 운동을 벌여 이제는 식량자급률이 95%에 이른다.

요컨대,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전 세계 민중의 삶을 무차별적으로 파탄시킴으로써 역설적이게도 ‘저항과 형성의 변증법’을 재촉하고 있다. 세계민중은 한편으로 세계자본(시장, 기업, 국가, 금융, 국제기구 등)에 저항하면서 다른 편으로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에 ‘생동하는 연대’ 강화하고 있다.

결국 향후 미래 전망은, 현 시스템의 모순을 자각한 세계 민중이 정보화와 네트워크, 창의력과 상상력 등 주.객관적 조건을 슬기롭게 활용하여 ‘연대의 세계화’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뤄내느냐, 그리하여 자립성, 다양성, 순환성에 기초한 ‘대안적 삶의 양식’을 얼마나 창의적으로 형성해내느냐에 따라 현저히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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