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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역사박물관(관장 주진오)이 2일 마련한 <한국현대사를 말하다-제주4.3 우리의 역사가 되기까지> 토크콘서트 모습. 이날 토크콘서트는 박물관 1층 중앙홀에서 양조훈 4.3평화재단이사장과 김종민 전 4.3위원회 전문위원을 초청해 마련됐다. ⓒ제주의소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양조훈-김종민 초청 ‘제주4.3 우리의 역사’ 토크콘서트 개최 

대한민국역사박물관(관장 주진오)이 ‘4.3 70주년 - '제주 4·3 이젠 우리의 역사' 특별전’에 이어 또 한 번 4.3이 대한민국의 보편적 역사임을 입증하는 행사를 열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2일 오후3시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층 중앙홀에서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제주4.3 우리의 역사가 되기까지> 토크콘서트를 개최했다. 

이날 토크콘서트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한국현대사에 큰 획을 그은 역사들을 다시 되돌아보기 위해 관련역사의 전문가들과 이야기 나누는 방식으로 올해 총 다섯 차례 기획한 ‘한국현대사를 말하다’의 첫 번째 순서로 열렸다. 

첫 토크콘서트의 주제는 제주4.3. 그만큼 아픔과 희생이 컸던 역사다. 이날 콘서트는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인 양조훈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과 김종민 전 4.3위원회 전문위원을 초청해 금기시됐던 4.3이 대한민국의 보편적 역사가 되기까지의 숱한 이야기들을 듣는 시간으로 진행됐다. 
 
이날 양 이사장과 김 전 위원은 1988년 당시 제주신문에서 처음 시작된 4‧3특별취재반에 함께한 순간부터, 이후 제민일보 '4.3은 말한다' 탐사보도, 4·3특별법 제정과 진상조사보고서 작성 등 4·3의 진실이 드러나고 우리의 역사로 보듬어지기까지의 여정과 고난을 함께 했던 순간들,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언론에도 영향을 미친 민주화의 봄은, 지하에 갇혔던 제주4·3을 본격적으로 세상 밖으로 드러내게 한다. 1989년부터 1999년까지 10년 동안 무려 5000명이 넘는 4·3증언자 채록과 500회 가까운 연재로 이어인 당시 제민일보의 ‘4.3은 말한다’ 연재는 한국언론사의 신기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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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조훈 4.3평화재단 이사장
이날 양 이사장은 “처음 4.3을 취재할 때는 대부분 입을 닫았다. 그런데 1988년 12월부터 시작된 광주 5‧18청문회 장면을 본 제주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우리가 겪었던 일에 비하면 저것은 사건도 아니었다’면서 말문을 여는 변화가 일어났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김 전 위원은 ‘가장 기억에 남는 4·3증언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당시 인터뷰했던 4.3유족 중에는 경찰에 의해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5살과 3살 동생을 한꺼번에 잃고 집마저 불타 시신도 수습하지 못한 당시 8살이었던 분이 계셨다”며 “그런데 그분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내 나이가 15살이었다면…’이었다”고 말문을 뗐다.

김 전 위원은 “그 때는 그 의미를 잘 몰랐다”면서 “그 의미가 15살만 됐어도 가족들을 그렇게 보내지 않았을 테고, 하다못해 불에 탄 가족들의 시신이라도 수습할 수 있었다는 의미라는 건 한참이 지나 나중에야 알게 됐다”고 안타까운 기억을 꺼내 들었다.  

양 이사장과 김 전 위원은 4·3의 정명에 대해 조심스런 입장을 피력했다. 두 사람은 4.3이 우리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대개 열흘 안팎에 벌어지지만 제주4·3은 무려 7년 7개월간 제주사회 벌어진 일이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이사장과 김 전 위원은 “4.3은 처음에는 탄압의 국면이 있었고, 항쟁의 국면이 있었고, 초토화시기가 되면 탄압이니 항쟁이니 하는 말을 무색케 하는 수난의 국면이 펼쳐졌다.”면서 “이 모든 국면을 포함할 수 있으면서도, 가족사를 모두 넘어서는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라야 4·3의 정명이 가능하다”는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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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민 전 4.3위원회 전문위원
김 전 위원은 “올해가 4·3 70주년이다. 당시 갓난 아기가 70살이 되고 10살 소년이 80살이 되는 시간이 지났다. 여러분들이 제주에 오면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제주의 해안가, 중산간 숲길, 올레는 굉장히 아름답다. 그러나 이 아름다움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전 위원은 이어 “4·3 당시 깡그리 불타버려서 아무것도 남지 않았던 폐허를 열 살 소년 소녀들이 고사리 같이 여린 손으로 다시 일으켜 세우고 지켜온 아름다움이 바로 지금 제주의 아름다움”이라며 “4·3 그 자체는 상당히 참혹했으나 극복의 역사는 제주의 자랑스러운 역사이다”라고 4.3유족과 도민들의 헌신적인 노력을 평가했다. 

양 이사장은 마무리 발언에서 “4·3이 70주년을 맞으면서 광화문 문화제가 열리고,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전시를 하고, 모든 종교들이 화해와 치유의 운동에 같이 참여해줬다”며 “4.3 70주년 4추념식에 참석했던 문재인 대통령도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자’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상당한 힘을 얻었다. 4·3의 해결을 위해 미국의 책임 문제 등 남은 과제를 푸는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날 토크 콘서트에서는 4‧3 관련 영상도 함께 소개되었는데, 다랑쉬굴 발굴 현장과 제주공항 유해발굴 사진 등이 소개될 때에는 여기저시서 탄식이 나왔다. ‘북한공산당의 사주아래’라고 잘못 기록된 국사 교과서를 수정하고, ‘오라리사건’ 취재를 통해서 미군정의 조작을 파헤치는 과정, 보수세력의 4‧3역사 부정 소송을 당당히 대응해서 승소하는 과정을 소개할 때에는 박수도 터져 나왔다.

이날 주진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장은 "저희 박물관이 4‧3 70주년 특별전을 제주 이외 지역에서는 처음 개최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이 전시를 한 이후 관람객이 평소 보다 두 배 늘었다"며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4‧3과 같은 전시를 한다는 것을 보면서 박물관이 국민들에게 다가가고 아픔의 역사를 공유하려는 시도로 생각해 주시는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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