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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수형인생존자측 변호인과 제주4.3도민연대가 14일 마지막 청구인진술에서 법원에 제출한 70년전 군법회의 관련 자료.
초유의 판결문 없는 재심 ‘4.3수형인생존자 18명’...청구인들 마지막 진술서 증거 2개 제시  
 
제주4.3 당시 불법감금 된 사람들에게 형 집행을 요구하는 군(軍) 공문서가 발견된데 이어 군법회의 형벌 확정자의 집행 지휘 방법을 지시한 검찰의 문서가 추가로 확인됐다.
 
판결문이 없는 사상 초유의 재심 청구 재판에서 절차적 군법회의를 의심할 만한 자료가 연이어 제시돼 재심 개시 결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제갈창 부장판사)는 14일 오후 2시 국방경비법 위반 등의 혐의로 옥살이를 한 4.3수형인 생존자 재심사건에 대한 마지막 청구인 진술을 들었다.
 
청구인 18명 중 마지막 진술에 나선 김경인, 김순화, 박순석 할머니는 법정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을 해야겠다”고 밝혔다.
 
박 할머니는 “그동안 가족들에게도 숨긴 이야기를 법정에서 할 것”이라며 “이런 기회를 줘서 감사하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이야기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재심을 청구한 18명은 1948년 12월 제주도계엄지구 고등군법회의와 1949년 7월 고등군법회의에서 내란죄 등의 누명을 쓰고 최소 1년에서 최대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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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수형인생존자 18명 중 마지막 진술에 나선 김경인, 김순화, 박순석 할머니(왼쪽부터)가 법정에 들어서기 전 취재진과 만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이들은 죽기 전 억울함을 풀겠다며 2017년 4월 재심을 청구했다. 문제는 재심 청구의 근거가 되는 기소장과 공판조서, 판결문 등 입증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군법회의 유일한 자료는 정부기록보존소가 소장한 수형인 명부다. 4.3사건 군법회의의 내용과 경과를 확인할 수 있지만 이 명부를 제외하면 그동안 재판과 관련한 기록은 없었다.
 
형사소송법 제420조(재심이유)는 재심 청구를 위해서 청구 취지와 재심 사유를 구체적으로 기재한 재심청구서에 원심판결의 등본, 증거자료, 증명서를 법원에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청구인 측은 당시 판결문 등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군법회의가 이뤄졌다는 당시 국방부와 검찰 내부 자료를 연이어 발굴해 재심 개시 결정 가능성을 높였다.
 
변호인 측은 4월30일 3차 심문기일에서 4.3 당시 제주도 군 책임자인 수도경비사령부 함병선(육군대령) 제2연대장이 대구형무소장에게 형 집행을 요청한 ‘군집행지휘서’를 공개했다.
 
이 지휘서는 수형인명부와 함께 1949년 작성된 공문서로, 군법회의가 열렸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당시 군법회의는 국방부 지휘로 집행됐다.
 
변호인 측이 5차 심문기일에서 추가로 제출한 자료는 1947년 10월30일 당시 사법부장(김병로)이 미군정청 대검찰청 검찰총장(이인)에게 보낸 형 집행지휘 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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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수형인생존자 재심 청구를 주도한 양동윤 제주4.3도민연대 대표(오른쪽)가 청구인 진술 과정에서 추가로 발견한 군법회의 관련 자료를 설명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문서에는 ‘군법회의에서 처형된 피고인에 대한 형 집행 지휘 촉탁시 관할 검사는 해당 수형인을 다른 수형인과 함께 수형인명부에 등재하라’는 지시 내용이 담겼다.
 
즉 군법회의에서 형이 확정된 피고인의 수형인 명부등재가 임의로 작성된 것이 아니라, 검찰총장의 구체적인 집행 지휘에 따라 이뤄졌다는 것을 뜻한다. 
 
또 다른 문서에는 1949년 8월29일 당시 내무부 장관(김효석)이 법무부 장관(권승렬)에게 군법회의에서 무죄를 받은 자를 증거보강으로 재검거해 다시 처벌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담겨있다.
 
일사부재리 법률에 대한 유권해석을 요청하는 이 질의서는 당시 국가적 차원에서 군법회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정부가 스스로 입증하는 공문서다.
 
재심 청구를 주도한 양동윤 제주4.3도민연대 대표는 “재판과정에서 확인된 문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고 생존자들의 진술까지 더해지면 재심 개시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변호인 측은 “오늘(14일)로 청구인 진술이 모두 끝나면 추가 기일 없이 재판부에서 개시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며 “빠른 시일 내에 판단이 내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재판부가 재심 개시를 결정하면 70년 전 재판의 정당성을 다시 판단하는 정식 재판이 제주지법에서 열린다. 반대의 경우 재심도 하지 못한 채 소송절차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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