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드라마 작가 최완규…펜으로 '드라마 나라'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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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게 아니었다. 지금 <주몽> 드라마 쓰는 최완규 작가, 그가 드라마에 어떻게 '올인'하며, 얼마나 '러브스토리 인 드라마' 하는지 들을 줄 알았다. 그리하여 연봉이 아니라 월봉이 억대인 잘 나가는 드라마작가의 판타스틱한 세계를 들을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13년전 <종합병원>부터 <허준>, <올인>, <상도>까지 썼던 그 작가, 그리고 지금 장안에 TV 본다 하는 이들을 모두 TV 앞에 무릎꿇게 한 <주몽>의 최완규 작가가 말했다.

"지금 나를 긴장시키는 거는 하나밖에 없어요."

오호라. 드디어 고백하는구나. 시청률? 시청자 반응? 덩달아 긴장한 내가 고스란히 받아쓸 만반의 준비를 마친 찰나, 그가 말했다.

"펑크."

주몽보다 소서노에 반하다

드라마 <주몽>은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이라면 대개 아는 '주몽' 이야기다. 고구려 건국 신화의 주역이다. 그런데 이 인물,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웃기다. 새도 아닌데 알에서 태어났다나?

이 스토리를 최완규 작가와 정형수 작가가 쓰고 있다. 정형수 작가는 <다모>로 일찍이 사극의 진수를 보여줬고, 과거 최완규 작가가 쓰던 <상도> 막판을 정형수 작가가 넘겨받아 쓰기도 했다.

'주몽'을 드라마로 만드는 건 만만치 않았다. <대장금>이나 <서동요>와 달랐다.

나라 세우는 이야기니 끊임없이 액션과 전쟁이 나와야 했다. 보는 시청자야 시원시원해 좋지만, 제작진 입장에서 그게 뜻하는 건 하나였다. 막대한 제작비가 술술술. 현재 <주몽>에 잡힌 제작비가 일단 300억이다.

게다가 이야기가 고구려 건국신화다. 똑부러진 자료? 있을 리가 없다. 확실한 건 주몽이 알에서 태어났다는 정도?

"잘 안 알려진 인물이지만, 소서노는 드라마적인 요소가 굉장히 다양했어요. 소서노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극에서 볼 수 있는 여자 캐릭터가 아니에요. 한 여자가 두 나라를 건국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건데, 세계사적으로 보더라도 쉽지 않은 경우고요.

사극에서 주로 보이는 여성 캐릭터나, 특히 내가 먼저 했던 드라마의 여성 캐릭터가 대개 남성 환타지를 충족시키는 조력자 역할들이었는데요. 소서노는 그 자체가 굉장히 주체적이고 강한 여걸이죠."

사실 주몽도 매력적이지만, 최완규 작가는 소서노에 끌려 '주몽'을 택했다고 했다. 그런데 소서노에 반한 게 그가 처음이 아니었다. <대장금>의 이병훈 PD도 '소서노'를 하려다 <서동요>를 했다나? 그게 다 제작비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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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재밌는 게 있다. 역사적인 실존 인물 소서노는 지금 드라마 <주몽>의 소서노와 사뭇 달랐다.

역사 속 소서노는 애딸린 과부다. 나이도 주몽보다 훨씬 많았다. 또 주몽을 만난 것도 주몽이 부여를 떠난 뒤였다. 이들의 결혼이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얽힌 정략결혼이란 소리도 있다. 그런데 소서노가 드라마에서 왜 이리 바뀌었지?

"그런데 드라마에서 그렇게 하면 뭔 재미가 있겠냐고요. 한 명은 유부남이고 소서노는 과부인데 그것도 자식까지 있는 과부인데, 그 멜로를 유지한다는 건 우리 일반적인 시청자 감성에선 쉽지 않다고요. 더구나 과부와 총각의 사랑은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이 인간이 유부남이라고…. 부여 땅에다 유리하고 유씨 부인을 두고 온 유부남이요."

이런. 만약 사실대로 갔다면, 청동기시대 버전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인가?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서로 좋아는 하는데 어느 누구도 좋아하는 사람하고 안 된다는 거예요. 대소도 따로, 주몽도 따로."

해모수는 죽었지만, 그의 역할은 끝나지 않았다

그랬다. 그러고 보니 이 작가, 드라마 속 인물들을 만날 짝사랑만 시켰다.

해모수도 유화부인과 이뤄지지 않았다. 또 죽은 듯 살아있던 아버지 해모수를 앞에 두고, 주몽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다. 덕분에 보는 시청자는 가슴 졸이며 외치고 또 외쳤다. "주몽아. 저 머리 허연 도사가 네 아버지야." 그런데 죽은 해모수는 왜 다시 살아났지? 혹시 시청률 살리러?

"해모수는 원래 예정된 구도예요. 뭔가 완성되지 않은 주몽이란 캐릭터에 해모수가 살아서 뭔가 남성성 영웅성을 부여하고 전수해주고 사라지게 되는 거고요.

주몽이 아직 해모수가 자기 아버지였단 걸 모르는데, 그 해모수가 자기 아버지였다는 것, 그리고 해모수가 다물군의 대장이었고, 다물군의 존재 자체가 잃어버린 옛 국토를 회복하려했던 영웅의 면모를 지녔다는 것을 주몽이 인식하는 순간 부여를 떠나야지 이 드라마가 전개가 될 테니까. 지금은 주몽과 금와가 굉장히 우호적인 관계인데, 주몽이 부여와 금와왕을 떠나게 되는 어떤 계기를 만드는데 해모수의 존재가 아주 큰 역할을 차지하게 되겠죠."

"그런데 주몽이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르잖아요. 어리버리하고 망나니였다가 점점 인간이 돼가잖아요?"

"뭐. 그거 가지고 초반에 말들이 많았는데요. 기록에 나오는 것처럼 일곱살에 활을 잡고 열두살에 나라 건국하고, 그걸로 어떻게 긴 호흡의 드라마를 하겠어요? 주몽의 석세스스토리인데, 석세스를 드라마틱하게 표현한다는 거는 한 단계 한 단계 레벨업 돼가는 과정이 얼마나 재미를 주느냐 문제일 텐데요."

명대사는 때로 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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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보면, 무협지가 생각 나요. 김용 이런 무협작가 소설 보면, 어리버리한 애들이 막 좌충우돌하며 크는 게 많이 나오잖아요."

"나는 무협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내가 굉장히 다양하게 책을 읽은 시기가 있었는데 무협지가 재미가 없었어요. 영화조차도 중국무협영화는 거의 안 봤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쓴 드라마는 무협지 구조를 닮아갔어요. 그건 왜 그런가. 내가 스스로 생각을 해봤어요."

결론은? 최완규 작가가 초등학생일 때, 집이 만화가게를 했다. 담임교사는 툭하면 그를 앞으로 불러냈고, 그는 집에서 본 만화 이야길 아이들한테 신나게 들려줬다. 어쩌면 그 영향 아닐까? 그가 대개 성공스토리 드라마를 쓴 데다 그 구조 자체가 무협지 구조를 닮은 게.

"지금 <주몽>은 무협지를 안 보더라도 할 수 있는 거고, 우리 정형수가 한때 가난한 시절에 무협작가를 좀 했다고 했어요. 거기서 표현되는 건 난 못하는 거죠."

그럼 역사적 고증은?

"최대한 쉽게 쓰고 안전하게 가자, 그래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가져오자는 거였어요. 그래서 약간은 심지어 국적 불명이 되더라도 환타지적 요소를 곳곳에 배치하고, 모티브도 과감하게 활용하고. 폭넓은 시청자들을 확보하기 위해 그 부분은 그냥 감수하고 가기로 했어요."

그런데 궁금했다. 정형수 작가는 <다모> 때 온갖 닭살대사, 명대사로 이름을 날렸고 이름을 남겼다. <주몽>에서도 간혹 그게 보였다.

"명대사는 어떤 부분에선 독이 될 수 있어요. 우리가 뭘 그리 명대사들을 날리며 인생을 사냐고…. 나는 정형수 작가가 더 짬밥을 먹고 성장한다는 의미가, <다모>에서의 소위 명대사라는 감수성을 조율해가는 과정일 거라고 생각을 해요. 내 기준에선. 그런 명대사이 아니라 극히 일반적으로 평범한 대사 속에서 드라마가 굴러갈 수 있고, 드라마를 강하게 의식지어줄 수 있다면 더 좋은 게 아닌가 생각해요."

혹시 '주몽'을 통해 민족적 자부심 뭐 이런 걸 그리려는 건 아닌가? 이상했다. 최근 한미 FTA다 뭐다 시끄러워서 그런가? <주몽>이 그저 드라마만 같지 않다. 한나라가 소금을 주네 안 주네, 교역을 하네 마네. 어디서 많이 보던 시추에이션 아닌가? 어쩌다 보니 그런 건가?

"지금 드라마에서 한나라 관련, 지금 우리 시점에서 미국일 수도 있고 우리 아닌 우리를 둘러싼 강대국일 수도 있어요. 현실적인 걸 고려할 수 있는 구도로 풀어갈 생각이고 그걸 주몽식으로 소서노식으로 극복하는 거, 그것이 내가 시청자들한테 줄 수 있는 드라마적인 재미와 의미일 거라고 생각을 하고요."

왜 우린 'ER''CSI'를 못 만드나

 
▲ MBC 창사특집극 <주몽>의 작가 최완규씨(오른쪽). 그 옆이 작가 정형수씨.
ⓒ 연합뉴스 김희수
 
"드라마 작가 생활이 힘들지 않나요?" 예의처럼 묻자, 그가 한 치 망설임없이 말했다.

"너무 힘들어요. 재미도 없어요. 너무 재미가 없어요. 뭐 내가 지난 몇 년 동안 쓴 게 다른 작가보다 1.5배 이상 과도하게 많이 해서….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서, 아휴 정말 진저리날 때가 사실은 더 많아요."

그는 지금 또 '에이스토리' 대표다. '에이 스토리'는 드라마작가들이 모인 방송 제작사로, 벌써 지금 <종합병원2>와 인천공항을 소재로 한 드라마 <에어스토리>가 차기작으로 잡혀있다.

이 두 드라마엔 대여섯명의 작가들이 붙었다. '우라나라는 왜 'ER'이나 'CSI' 같은 드라마를 못 만드나?' 그가 했던 그 고민이 만든 결과다. 이제 무늬만 전문 직업이 나올 뿐, 하나같이 일은 안 하고 연애질에만 올인하는 하는 드라마가 아닌 진짜 전문 드라마를 보게 되는 걸까?

"나이를 먹어간다는 건 다른 게 아니라, 집중력이 점차 떨어지는 거예요. 몇 년 전에 <종합병원> 쓸 때는 앉아서 그 자리에서 스트레이트로 대본 하나를 썼어요.

지금도 정작 대본쓰는 시간은 길지 않아요. 그냥 뭘 쓸까 전전긍긍하고. 또 뭘 쓸까 고민하냐 하면, 고민도 안 해요. 고민하는 게 고통스러우니까. 딴 짓 하다가 몰려야지만 어쩔 수 없이 고민하게 되는 거죠. 다른 작가도 마찬가지라니까요. 내가 아는 몇몇 여자작가들은 긴박해지면 막 청소해요."

그럼 그도 청소? "난 안 해요. 그냥 멍청히 있죠." 멍청히 있다 TV 보거나? "자거나 TV 보고 있거나." TV는 오로지 드라마? "다 봐요." 헉. 지금 방영하는 드라마를 다? "아뇨. 전 프로를 다 본다고 봐요. 홈쇼핑도."

"난 참 훌륭한 작가다, 내가 생각해도!"

이런, 졌다.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감독 프랭크 대러본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전국 방방곡곡의 신발가게와 버거킹에는 나보다 더 재능있는 시나리오 작가들과 감독들이 일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그들과 나의 차이는 내겐 9년 동안 노력할 의지가 있었고, 그들에게는 그럴 의사가 없었다는 것이다."

최완규 작가는 10년 넘게 끊임없이 썼다. 또 그 드라마는 끊임없이 화제가 됐다. 사랑을 받았다. 그게 그저 행운일까?

할리우드의 잘 나가는 영화감독 스티븐 소더버그가 이런 말을 했다. "행운이란 재능과 인내를 합친 것이다." 그러게 행운은 그냥 심심해서 불쑥 오지 않는다.

"이 상황을 농담처럼 얘기하죠. 난 참 훌륭한 작가다. 내가 생각해도! 뭐냐면 작가들이 헝그리 정신이 필요한데, 난 끊임없이 스스로를 헝그리한 상태로 몰아놓고, 일을 해야 하는 조건을 만들거든요. 앞으로 2~3년은 이렇게 살아야 해요. 어느 정도 글빚이 계산이 되면, 에이스토리를 잘 꾸려나가야죠. 그리고 제작자가 되고 싶어요. 제리 부룩하이머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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