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지방선거가 막을 내렸다. 제주도지사와 교육감, 지방의원 등 45명의 풀뿌리 자치일꾼이 도민들 손에 의해 선출됐다. 승리요인과 패인 등 각종 분석이 쏟아진다. <제주의소리>는 숨을 한 번 더 고르고, 긴 호흡으로 6.13지방선거를 뒤돌아봤다. 더 차분하고, 냉정해지기 위해서였다. 3회에 걸쳐 6.13민심의 의미와 과제를 짚어봤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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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희룡 제주도지사 당선자가 이번 6.13지방선거를 앞둔 5월31일 출정식에서 "제주도민을 섬기겠다"며 도민 지지자를 향해 큰 절을 올리는 모습. 배경 그림은 300여년전 제주의 향품문무 관리들이 임금님의 은혜에 절을 올리는 탐라순력도 '건포배은' ⓒ제주의소리

<글 싣는 순서>
① ‘견제와 균형’ 도민의 선택은 옳았다!
② ‘소통과 협력’ 협치를 재가동하라!
③ 한 눈 팔지 말라! ‘제주도민당’ 약속 지켜야

[6.13표심, 의미와 과제] ③ 중앙정치 말고 ‘제주도민’ 바라봐야…감동 주는 ‘탕평’ 첫 인사 기대  

# 제주목사 이형상과 제주도지사 원희룡 

서릿발 같은 초겨울 찬바람이 도포자락 옷깃을 파고든다. 아랑곳없이 도열한 한 무리의 남성들이 오와 열을 정렬한 채 일제히 포구 밖을 향해 몸을 낮추고 머리를 조아린다. 

1702년(숙종28년) 음력 십일월 스무날. 지방의 모든 관리들인 향품문무(鄕品文武) 300여명이 제주목관아로 모여들었다. 일부는 건입포(산지포구)에서 북쪽 한양 땅을 향해 임금의 성은(聖恩)에 일제히 배례를 올렸다. 또 다른 일부는 관덕정에 정좌한 이형상 목사로 보이는 인물을 향해 절을 올린다. 보물 제652-6호 《탐라순력도》의 건포배은(巾浦拜恩)에 나오는 장면이다. 

2018년 5월31일. 초여름 이른 저녁. 제주시 노형동 우편집중국 사거리에서 열린 6.13제주도지사 선거 무소속 원희룡 후보의 출정식 유세 현장. 청년들 무등에 올라탄 원희룡 후보가 운동회 머리띠를 이마에 질끈 동여매고 승리를 다짐하는 듯 두 팔을 하늘을 향해 들어 올리고 지지자들의 연호에 화답한다. 

이어 무등에서 내려온 원 후보가 출정식 참여 지지자 중 백발이 성성한 노인을 향해 큰 절을 올린다. “도민들에게 순종하고 도민들을 잘 모시겠다는 뜻”이라고 당시 출정식 사회자는 지지자들을 향해 연신 외쳐댔다. 지지자들이 연호와 함께 박수로 호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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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제652-6호 《탐라순력도》의 건포배은(巾浦拜恩) 그림. 이형상 목사와 당시 제주관료들이 마을 신당과 사찰을 훼철하고 한양 땅 임금님 은혜에 절을 올리는 모습을 담고 있다. ⓒ제주의소리

《탐라순력도》. 1702년 당시 이형상 제주목사가 도내 요지를 순력하는 상황과 제주도의 주요행사 장면 등을 화공 김남길로 하여금 생생하게 그림으로 남기게 한 기록 화첩이다. 

마흔 한 장의 그림과 서문 두 면 등 총 43면으로 구성된 탐라순력도 중 ‘건포배은’이라는 그림이 있다. 한양 땅 임금과 제주목사 이형상을 향해 일제히 납작 엎드린, 당시 제주목 지방관료들이 조정과 지방목사를 향한 충성심을 드러내고 싶었던 그림으로 읽힌다.   

그러나 건포배은에는 숨은(?) 장면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바짝 엎드린 관료들 뒤로 제주 곳곳의 마을 신당들이 불타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형상 목사와 향촌 관료들이 제주의 신당을 불태우고 사찰을 훼철하는 모습이다. 

건포배은은 이런 이형상 목사의 행위가 도민들이 임금님께 커다란 은혜를 입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 한다. 엄연한 왜곡이다. 실제 당시 제주백성들의 정서는 이와 정 반대였다. 

이형상 목사는 신당혁파 자체를 커다란 업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백성들은 제왕적 관료가 권력을 남용해 가난한 민초들의 신앙처를 궤멸시킨 것으로 판단했다. 당시 불타 없어진 신당은 129곳에 이르며 훼손된 사찰은 5곳이다. 신당을 지키던 심방 285명도 농업에 종사하도록 강제 조치했다. 당연히 민심은 흉흉했을 터. 

한양에서 내려온 목사의 눈에는 가난한 제주땅 백성들이 질병과 액운을 막기 위해 신당과 사찰을 찾아 길흉화복을 의지하는 모습이 어리석고 사리에 어두운 것이라 여겼던 모양이다. 타고난 가난과 기근으로 의원을 찾을 형편조차 되지 못한 대부분의 제주백성들로선 마을의 신당과 같은 신앙공간이 그들의 최후 안식처이자 의원이었던 것을 권력자만 몰랐다. 아니 백성들의 눈높이에서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초겨울 유난히 싸늘하게 묘사된 한라산 자락과 그 아래 검게 불타는 신당들이 당시 제주백성들이 느꼈던 분노와 두려움의 정서를 잘 대변하는 듯 하다. 불타 없어진 신당들은 이형상 목사가 떠나고 이후 부임한 이희태 목사 때부터 다시 하나 둘 생겨난다. 누대로 이어진 신앙은 그렇게 권력자 한 사람의 뜻대로 사라질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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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희룡 제주도지사 당선자가 이번 6.13지방선거를 앞둔 5월31일 출정식에서 "제주도민을 섬기겠다"며 도민 지지자를 향해 큰 절을 올리는 모습. ⓒ제주의소리

# 이제 선거는 끝났다 

이제 6.13지방선거가 끝났다. 앞으로 제주특별자치도 4년, 민선7기 제주도정을 다시 원희룡 당선자가 이끌게 됐다. 6.13 선거를 앞두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원희룡 당선자는 도민들의 선택으로 민선6기에 이어 재선에 성공했다. 

“제주도에 전념하겠습니다” / “중앙정치 바라보지 않겠습니다” / “제주의 인재를 발탁해 등용하겠습니다” / 원희룡 지사가 이번 선거를 앞둬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면서, 그리고 선거 전날 지지를 호소하며 발표한 대도민 메시지를 통해 거듭 강조했던 도민들과의 약속이다. 그렇게 도민들의 표심과 선택으로 원 당선자가 재선에 성공했다. 이제 원 지사가 약속을 지킬 차례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비평가 조지 버나드 쇼는 사람들의 거짓말의 역사가 구석기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했다. 자신의 용맹을 과장하기 위해서 맘모스를 때려 눕혔노라 거짓말 하는 구석기 시대 남자들의 거짓말이 원조라는 것이다. 

거짓말을 가장 익숙한 사람은 아마 정치인들일 것이다. 심지어 하천이 없는 곳에도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약속하는 사람이 바로 정치인이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지키지 못할 것을 알면서 하는 약속은 거짓말이다. 그러나 정치인의 거짓말은 말로가 뻔하다. 유권자의 냉혹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원 지사는 선거기간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았다고 유세현장마다 스스로에게 일갈했다. 앞으로 더 열심히 도민과 만나고 더 겸손히 도민들 이야기에 귀 기울이겠다고 했다. 

제주도에 전념하겠다고 했다. 난개발 방지, 제주 가치 극대화를 위해 다져온 초석 위에 ‘제주도민의 질 좋은 밥상 차리기’에 전념하겠다고 약속했다. 중앙정치 바라보지 않겠다고 했다. 도민들의 명령하기 전까지는 ‘제주도민당’이 자신의 당이자 정치적 기반이라고 부르짖었다.

이제 더 이상 “제주를 몰랐다. 도민들의 뜻을 몰랐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제주의 인재를 발탁해 등용하겠다”는 약속이 혹여 다음 총선까지 고려한 ‘원희룡 마케팅’의 포석이라면 도민들이 다시 심판할 것이다. 차기 행정시장 인선을 두고 2년 후 총선까지 염두에 둔 인사가 될 것이란 얘기가 심심치않게 들린다. 도민들의 뜻이 아니다. 이제 더 이상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첫 인사에서 국민들에게 ‘감동’을 안겨줬듯, 곧 단행될 민선7기 원희룡 도정 첫 인사에서 도민들이 무릎을 탁 칠 법한 ‘감동’을 안겨줘야 한다. 그것은 원 당선자가 스스로 약속한 여야, 진영, 진보·보수 등을 다 아우르는 인사여야 한다. 그것이 통합 상생 공존의 정치다. 이 모든 것은 원 지사가 밝힌 ‘제주도민당’에 기반한 것이다.  

원 당선자는 더 이상 승리의 기쁨에 도취될 것이 아니라 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적폐를 공정하고 객관적인 잣대로 청산하는데 매진해야 한다. 역대 도지사들이 해내지 못한 도민 편가르기, 줄세우기, 패거리 정치 등의 적폐를 끊는 작업을 완성시켜야 한다. 그래야 원 당선자가 약속했던 ‘더 큰 제주의 꿈’이 현실이 된다.  

조선조 숙종 임금이 임명한 이형상 제주목사와 대한민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도민들이 임명한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분명이 다르다. 제주도민들은 원 당선자를 '특정당 도지사'가 아니라 '제주도민당의 도지사'로 그를 선택했다. 그리고 '견제 받지 않는 오만한 지방권력'이 아니라 '정의롭고 공정한 지방정부'를 원하고 있다. 관행의 답습이 아니라 진정한 개혁을 원하고 있다. 진정 도민들은 부디 원 당선자가 도민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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