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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당선 후 일부 언론 ‘대권주자’ ‘보수의 희망’ 띄우기...‘도정 전념’ 맹세 위협 
 
“잘못한 것 인정하고 고칠 것은 고치겠습니다. 중앙 곁눈질 하지 않고 도민만 바라보며 앞으로 4년을 가겠습니다”(5월7일 선거사무소 개소식)
“한편으로는 기대에 못미쳤다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중략) 제주도지사와 중앙정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쫓으려는 욕심을 냈던 때도 있었습니다. (중략) 지역의 실정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4월7일 공식 출마 선언)
원희룡 제주지사는 선거기간 내내 바짝 엎드렸다. 지난 4년 소통부족을 고백했다. 도정 수행 와중에 ‘여의도’를 향해 곁눈질도 했다고 했다. 마음 속으로는 연북정(戀北亭)에 올랐음을 실토한 셈이다. 임기 초반에는 제주를 잘 몰랐다고도 했다. 

자기 반성은 용서 구하기로 이어졌다. 가는 곳 마다 한번 더 기회를 달라며 읍소 전략을 폈다. 이러다가 진짜 눈물까지 보이겠다 싶었다.  

그만큼 원 지사는 절박했다. 고공행진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 남북-북미정상회담, 고립무원…. 그에게 우호적인 환경은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대진표가 확정된 후의 여론조사 결과도 그렇게 나타났다. 

당당했던 평소 스타일에 어울리지 않는 그의 전략은 주효했다. 승인(勝因)이 어디 이 뿐이겠냐 만은, 제주도민은 그에게 한번 더 기회를 부여했다. 또 하나의 승부수는 ‘인물론’이었다.   

선거 과정을 복기하며 원 지사의 정치적 감각을 운운하는 이들이 있다. 세 번의 총선, 두 번의 지방선거를 모두 이긴 5전5승의 불패신화를 동원하면서 말이다.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을 탈당한 것도, 바른정당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도, 끝까지 무소속을 고집한 것도 중앙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노련한 정치인의 정무적 판단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정가는 물론 기자들 사이에서도 한 때 그의 최종 행선지를 놓고 설왕설래했던 점을 보면 영 틀린 말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승리를 거뒀으니까.     

승리 후의 맹세는 더 비장했다.

“우리 제주도의 현안 그리고 제주도의 화합을 위해서 도민만 바라보고 도정에 전념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정치의 앞길을 열어나가는 것은 도민들의 부름과 도민들의 명령에 의해서만 결정을 하더라도 하겠습니다”(6월13일 당선 인터뷰)
향후 정당 선택 여부를 묻자 원 지사는 ‘도민 명령’을 앞세워 단호하게 일축했다. 

따지고 보면, 지금 원 지사가 그토록 애창하는 도민 명령을 지난 4년 충실히 따랐다면, 납작 엎드릴 일도 없었을 것이다. 60%에 가까운 압도적 지지율이 그의 시선을 다른 데로 향하게 했을지 모를 일이다. ‘알아서 각자도생하라’며 등을 떠민 당내 주류 세력에 독기를 품은 채. 

원 지사의 고해성사를 도민들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인간적인 고백으로 받아들였는지는 알 수 없다. 솔직히 난 반신반의했다. 

어쨌거나, 이제는 굳은 맹세를 되새길 때가 됐다. 선거가 끝난지 얼마나 됐냐고 되물을 수 있다. 여측이심(如廁二心). 정치인 만이 아니다. 누구나 화장실 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른 법이다. 

벌써 맹세를 위협하는 요소가 널려있다. ‘원조 소장파에서 보수 대권주자로’, ‘유일한 보수 출신 광역자치단체장’, ‘보수의 희망으로 발돋움’…   

선거가 끝나자마자 일부 언론은 ‘원희룡 띄우기’에 나섰다. 두리번거리게 하기에 딱 좋은 말들이다. 본디 유혹은 달콤하다. 취하는 순간 독이 될 수 있음을 간과하기 쉽다.  

또 한번 고사성어를 떠올리게 된다. 수욕정이 풍부지(樹欲靜而 風不止). 나무는 가만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멈추지 않는다고 둘러댈 수 있다. 그러나 뿌리가 깊으면 바람이 대수겠는가. 여기서 ‘뿌리’는 극도의 경계심이다. 

다시 출마 선언을 곱씹어본다. 

“큰 정치에 도전하는 것은 제 평생의 목표입니다. 결코 버릴 수 없는 저의 꿈입니다. (중략) 이런 저의 꿈이 도민 모두의 꿈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인물론의 정점인 ‘큰 정치’로 민심을 자극한 원 지사는 자신의 꿈과 제주도민의 꿈이 같기를 원했다. ‘제주가 커지는 꿈, 도민과 한 몸 된 원희룡’까지 등장했다. 

크든 작든 꿈을 꾸는 것은 자유다. 원대한 꿈을 이루려면 천운까지 따라야겠지만, 전제 조건이 있다. 스스로 밝혔듯이 먼저 도정에 올인해야 한다. 현안이 쌓여있는데 한 눈 팔 새가 없다.  

민선7기 제주도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지 못하고서 그 다음을 기약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우리는 한국 정치사에서 그런 사례를 많이 봐왔다.   

당선 인터뷰에서 향후 거취와 관련, 예의 ‘도정 전념’ ‘도민 명령’을 되뇌이던 원 지사에게 진행자가 “그건 정치인들이 늘 하시는 말씀”이라며 추가로 던진 질문은 비수와 같았다.   

“그럼 도민이 원하는 바를 어떻게 파악하십니까?” 

역시 문제는 진정성이고, 어떻게든 맹세를 지키려는 굳은 심지다. /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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