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입시의 도구로 전락한 10대들의 글쓰기. 결국 그들의 가슴을 울릴 수도, 가슴에 와 닿을 수도 없는 글쓰기다. ‘글은 곧 자기 자신’이다. 자기 생각과 감정 표현에 더 솔직하고, 일상적이고 소박한 삶의 결이 드러나는 10대들의 진짜 글쓰기에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선명하고 묵직한 메시지가 있다. 10대들이 자신의 언어로 세상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라. 최근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펴낸 오승주 작가가 지난해 제주도내 중학교에서 글쓰기 수업을 통해 아이들과 교감했던 사례들을 접목시킨 귀 기울일만한 10대들의 목소리를 재구성해 싣는다. <세상을 바꾸는 10대들의 글쓰기> 연재다. 매주 1회, 총 30회 집필을 예정하고 있는 이 코너에 독자 여러분의 관심을 기대한다. [편집자]

[세상을 바꾸는 10대들의 글쓰기] (25)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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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의 마음속에서 조용히 타고 있는 분노의 불꽃

한국 사람들은
마음의 가난을 
목표를 향한 의지,
미래를 위한 현재의 희생, 
도전을 위한 벌판,
으로 예쁘게 포장한다.
그게 의미 있을까?

한국 사람들은
물질적 가난을
드라마틱한 성공의 배경,
나도 할 수 있다는 자기위로를 위한 포르노,
감동적인 성공신화의 시나리오,
꿈으로 가볍게 만든다. 
그게 의미 있을까? 
- 어느 고등학생의 시 <가난>
대학 2학년 때 처음으로 소설을 습작했습니다. 소설의 제목은 ‘3차 세계대전’이었습니다. 당시에 절박하게 매달렸던 주제는 ‘3차 세계대전이 어떤 방식으로 펼쳐질 것이냐’ 하는 점이었습니다. 작품 속에서 3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장본인은 중학생 정도의 청소년이었습니다. 전 세계의 어른들은 중학생 1명의 손에 놀아나 몇 년 동안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치렀고, 이 사실을 알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미 청소년들은 똘똘 뭉쳐 있었기에 3차 세계대전의 국면은 세대 전쟁의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전쟁은 지구가 대부분 파괴되는 참혹한 대가를 치르고 수호되지만 어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전쟁을 멈춘 것도 역시 청소년이었습니다. 몇몇 양심적이고 지혜로운 어른들이 전쟁에 반대하는 청소년들과 의기투합해서 힘겹게 평화를 지켜내죠. 

이 글을 제대로 완성하고 싶어서 소설 공부도 하고 습작도 틈틈이 했지만 《1984》, 《멋진 신세계》, 그리고 오늘 소개할 《우리들》처럼 훌륭한 디스토피아 소설작품을 보면서 잔뜩 주눅이 들어 내 이야기를 쓸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그 당시 저는 이미 저의 소명을 정해놓았습니다. 제 개똥철학을 용어로 표현하자면 ‘영웅기대론’입니다. 이 이론은 어른들의 세계에 환멸감을 갖는 어른들이 청소년들과 의기투합해서 세상을 멋지게 뒤집어놓는다는 게 주요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스스로를 ‘참모’로 규정하며 준비하고 공부했습니다. 저의 지식과 경험, 상상력을 그 영웅을 위해서 기꺼이 쓰겠다는 의지가 나를 계속 공부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영웅은 나타나지 않았죠.

2005년 서울 대치동에서 논술강사 일을 하면서 다시는 고등학생을 가르치지 않겠다고 다짐한 적이 있습니다. 얄궂은 저의 인생은 이 다짐을 허락하지 않았죠. 14년 만에 고등학생들을 다시 만났고, 대학입시의 문제가 아니라 글쓰기와 사회, 정치의 문제로 말을 섞으니 ‘내가 기다렸던 게 바로 이거야!’하는 느낌이 왔습니다. 

제 고향 제주도에서 많은 어머니와 청소년을 만나고 싶다는 소원은 이뤄졌습니다. 많은 청소년을 만났을 뿐 아니라 앞으로 일을 함께 하게 될 것 같은 청소년도 서너 명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지금 이 상황에 대해서 몹시 분노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분노한다는 것은 어른들이 지금 누리는 지위가 ‘시한부 사형 판결’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청소년들은 그냥 분노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름대로 사회에 대한 명확한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청소년들이 다니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만큼 전체주의에 가까운 공간도 없을 것입니다. 

수능을 통해 1에서 9까지 등급을 매긴 가격표를 붙인 학생들은 대학의 문 앞에 선다. 그리고 대학은 마치 그들의 삶을 구원할 메시아처럼 앞에 서서 그들을 거대한 틀에 탈탈 털어내어 필요한 최소 인원만을 취하고 나머지는 흩뿌려버린다. 그러고는 공부하지 않는 자들을 통틀어 공부하지 않은 것의 대가는 비참한 가난뿐이라며 겁을 준다. 이마저의 노동을 하지 않는다면 죽을 것이 자명한 노동자들을 향한 사회와 기업의 이미지와 일치한다. 결국 가난은 사회생활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12년의 공교육을 통해 차근차근 학습되고 있는 것이다. 
- 어느 고등학생의 에세이 <왜 일을 하는가> 가운데
‘가난’이라는 시에서는 어느 전직 대통령처럼 가난했던 삶을 ‘미담’처럼 정치에 활용하면서도 정작 가난한 사람들에게 되돌릴 수 없는 고통을 주었던 모습을 ‘포르노’라고 비판했습니다. ‘왜 일을 하는가’라는 글에서는 우리가 가난해지는 원인이 ‘12년의 공교육을 통해 차근차근 학습되고 있다’는 의미심장한 진단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청소년들의 글을 읽고, 그들과 토론하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청소년들을 도와서 어른들의 세계를 무너뜨리고 싶다고. 어른들은 너무 안일합니다.
 
어른들은 미래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아이들은 유일하게 용감한 철학자들이에요. 그리고 용감한 철학자는 반드시 어린이들이고요. 아이들이 그리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언제나 ‘그리고 어떻게 됐어?’가 필요해요.” 
- 《우리들》, I-330
올더스 헉슬리는 《우리들》을 읽고 난 충격을 《멋진 신세계》로 그래냈고, 조지 오웰은 이 두 작품을 보고 나서 《1984》를 남겼습니다. 조지 오웰은 ‘자유와 행복’이라는 산문에서 이 작품을 높이 평가하며 “이 소설은 책을 불태우는 사상 통제 시대의 진기한 문학적 흥밋거리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글쓴이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은 스탈린 독재 체제의 한 가운데에서 이 작품을 쓰고 나서 집필 활동을 금지 당했습니다. 소련 사회에 대한 비판 때문입니다. 1990년 고르바초프 정권이 되어서야 해금됩니다. 

《우리들》의 작품 배경은 과학 문명이 정점에 달한 29세기입니다. 전 지구 인구의 80%를 희생시킨 ‘200년 전쟁’을 끝내고 세계는 단일국가로 통일되죠. 단일제국은 가장 위대한 종교입니다. 

사방이 초록색 벽으로 막힌 단일국가의 국민들은 이름이 없습니다. 이야기를 기록해 나가는 주인공도 D-503이라는 번호가 매겨질 뿐입니다. 모든 번호들은 같은 시간에 일어나 석유추출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같은 시간에 열을 지어 산책을 해야 하며 같은 시간 동안 노동을 합니다. 섹스는 체제 유지의 가장 중요한 수단인데, 두 사람이 핑크색 ‘감찰 서류’를 제출하여 승인이 떨어지면 커튼을 잠시 닫고 몇 분 동안 관계를 맺는 것이 허용됩니다. 만약 임신을 시키면 분자로 녹아버리는 처형기계 앞에 끌려가야 합니다. 주인공 D-503은 이 세계를 열렬히 찬양하는 수학자이자 우주선 제작 책임자이지만 사랑의 힘에 이끌려 스스로 계란이 되어 바위에 부딪칩니다.

올더스 헉슬리, 조지 오웰, 그리고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

세 작가들이 그려낸 미래 사회는 공통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통제합니다. 왜 인간성은 불신의 대상이 되고 감정은 통제되어야 할까요? 대항해시대 이후 유럽인들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를 폐허로 만들고 원주민들을 노예로 만들어 경제를 발전시켰고 식민지 경쟁을 하였습니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었지만 식민지와 노예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서로 경쟁이 벌어지고 자신의 이익에 따라 편을 먹고 뺏고 뺏기는 협잡을 통해 갈등이 점점 커지다가 어느 순간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세 작가가 한결 같이 어두운 미래를 다뤘다는 점과 공장처럼 촘촘한 사회에서 기적 같은 돌연변이 주인공이 인간의 사랑과 정신을 가진 개인으로서 항거하다가 비참하게 파멸한 결말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대개 실패합니다. 그들의 실패는 독자의 현실에 밑거름으로 작용합니다. 맹자의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와 이연벌연(以燕伐燕) 고사는 세 작품의 특징을 잘 설명해 줍니다. 안일한 유럽이 덜 안일한 히틀러에게 거의 정복당할 뻔했듯이, 오늘날 사회는 덜 안일한 어른들이 안일한 어른들을 지배하고 세상까지 지배합니다. 오십 보를 전진하다가 후퇴하나 백보를 전진하다가 후퇴하나, 후퇴라는 면에서는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청소년들은 어른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미래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이연벌연(以燕伐燕)의 고사는 전국시대 중국 동쪽의 대국 제나라와 이웃나라 연나라의 외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연나라는 정치가 어지러워 백성의 지지를 잃었습니다. 제나라는 이러한 사정을 알게 되자 연나라를 병탄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비난 여론이 일 것이 두려워 당시의 대학자였던 맹자에게 연나라 이야기를 슬쩍 꺼냈습니다. 맹자는 연나라처럼 어지러운 나라는 정벌당해도 할 말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제나라 선왕은 연나라를 정벌했고 맹자가 동의했다고 왜곡 선전했습니다. 위기감을 느낀 이웃나라들이 제나라를 물리치고 연나라의 새 왕을 세워 주자 제나라는 면구스러워졌습니다. 모든 상황을 지켜본 맹자는 “어지러운 연나라가 어지러운 연나라를 정벌했다”는 촌평을 남겼습니다. 조지 오웰, 올더스 헉슬리,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 세 작가는 정의와 도덕 같은 빛나는 명분들을 내세우며 독재정치를 하는 지도층의 위선과 권력욕을 낱낱이 발가벗겼습니다. 그들도 연나라에 불과할 뿐입니다. 운이 좋아 정벌당하지 않았을 뿐이죠. 오늘날 《우리들》을 읽는 독자는 세 작가가 그려낸 비판의 대상을 어른들의 세계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격변하는 세계에 대한 예민한 관찰도 없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신음소리와 한숨소리에도 귀를 닫고, 한두 번 성공했던 방식으로 현재의 시간을 ‘과거화’시키는 안일한 어른들과 청소년들의 한판 대결이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저는 어른이지만 청소년들 편에 서서 안일한 어른들을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할 것입니다. 그것이 청소년과 어른의 3차 세계대전을 막는 방법이니까요.

#  필자 오승주는?

1978년 제주 성산포에서 나고 자랐다. 제주대에서 국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2003년부터 10여 년간 서울 강남에서 입시컨설팅, 논구술 특강 등의 일을 하다가 대한민국 입시구조와 사교육 시스템에 환멸감을 느꼈다. 

이후 언론운동과 시민정치운동, 출판문화운동, 도서관 운동 등에 참여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변화의 힘은 가정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족의 끈이 이어지게 하는 일에 인생을 걸었다. 소홀했던 가정이 무너지기 직전, 아이의 간절한 외침 소리를 들었기 때문. 

2013년 《책 놀이 책》을 써 아이와 부모를 놀이로 이어 주었고, 3년간의 공부방 운영 경험과 두 아들과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썼다. 아빠 육아, 인문고전으로 아이 깊이 읽기로 가족 소통을 꾀했다. 

현재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공자의 논어》,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사마천의 사기》를 집필 중이며 아주머니와 청소년을 작가로 만드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글쓰기·책쓰기 강사로서 지역 도서관과 활발히 사업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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