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44) 하예동 알열리 용출수

하예동은 알열리(알연리)리 불렀던 마을로 하예1동인 상동과 중동, 하예2동인 하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마을에도 마을의 생명을 지킨 귀한 산물인 차귀물, 돔뱅이물, 논짓물, 점뱅이물 등 많은 물이 솟아난다. 마을에서는 대왕수와 소왕수, 돔뱅이물, 차귀물이 합쳐져서 만든 대왕수천을 ‘너븐내’라고 부르며, 2002년 한국반딧불이연구회에서 제1호로 반딧불이보호구역을 지정하였다. ‘너븐’은 ‘넓다’의 제주어이다.

차귀물은 대왕수 다음으로 용출량이 많고 물맛이 좋은 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대왕수 다음 좋은 물이란 뜻으로 차귀물(채기물, 차계수)이라 명명하는데, 채기물이라고도 부른다. 채기는 ‘후미, 다음’과 같은 뜻으로 물가나 산길이 휘어진 곳 혹은 제기나 그릇이란 뜻으로도 사용되나 대왕수 다음으로 용출량이 많다고 하여 붙여진 차귀물이 와전된 이름이라고 생각된다. 이 산물은 예래생태체험관에서 서쪽으로 100미터쯤 떨어진 대왕수천에 있다. 산물은 도로절벽 밑 암반 틈새에서 나오는데, 마을 아래쪽에 있기 때문에 주로 알동네(아랫마을) 사람들이 식수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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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귀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 산물은 물통이 두 개로, 하나는 예전 그대로 보존되고 있으나 옆에 있는 것은 1970년 초에 시멘트로 정비된 것이다. 왕이 되지 못해서인지 왕(王)자를 두 개를 가진 칸으로 나누어 물통을 구성하는 해학적인 구조를 띈다. 차귀물 입구는 소왕낭거리로 마을 쉼터였다. ‘소왕낭’은 ‘산유자나무’로 지금은 예래로가 확장되면서 사라져 버렸다. 예전에 이곳 소왕낭 덕분에 여름에 그늘이 잘 지고 바로 밑에 차귀물이 있어 밭에 오다가다 땀을 식히고 몸도 씻곤 하던 곳이다. 입구 언덕 아래서 솟는 엉알물이란 작은 산물도 있어 그늘아래 앉기만 하여도 시원했던 장소다. 또 동네 사람들은 이곳에 모여 이야기를 하거나 장기를 두거나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등 담소를 나누는 마을소식 터로 동네 명소였으나 도시화라는 개발로 인해 그 옛 정취는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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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엉알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차귀물에서 서쪽으로 140미터 정도 걸어서 가면 돔뱅이물(한자표기로 도음방천)을 만날 수 있다. 예전에는 이 산물이 있는 주변은 절벽과 같은 벼랑으로 울창한 숲이 둘러싸여 있어 여름철 더위를 식히는 장소였다. 그러나 지금은 도로 등으로 많이 훼손되어 옛 정취가 많이 반감되었다. 이 산물은 솟는 물이 크지 않으나 언덕배기 자락에서 솟아나고 있으며 차귀물과 합류하는 화합수로 '대왕수천'의 지류를 형성하고 있다. 위에 있는 물은 웃물, 아래 있는 물은 알물로 구분하는데, 웃물은 식수로 사용하며 알물은 음식물을 씻겨나 빨래하는 생활용수로 사용하였다. 지금 모습은 대왕수천을 생태하천으로 정비하면서 현대적 감각을 살려 개조한 것으로, 대왕수천의 쉼터로 탐방객들이 주변을 전망하는 장소로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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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돔뱅이물 전경.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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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돔뱅이물 윗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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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돔뱅이물 알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농사와 관련하여 유래된 산물로 논짓물(논지물)이 있다. 이 산물은 예래해안로에서 솟는 물이다. 논짓물이라 부르게 된 것은 바다와 너무 가까운 곳에서 물이 솟아나 바로 바다로 흘러들어 가 버리기 때문에 농사에도 사용할 수가 없는 쓸데없는 물이라는 의미로 “그냥 버린다”는 뜻으로 붙여진 산물이다. 또 다른 의미로 논에서 나는 물이라고도 한다. 지금도 논짓물 일대 여러 곳에서 산물이 솟고 있는데, 논짓물이 원천인 산물은 해안도로 건너편에 시멘트로 포장된 농로를 따라 20미터쯤 들어가면 냇가의 도랑처럼 산물 터를 만든 곳에서 용출된다. 논이 사라지면서 이 물로 인해 일대에 해안습지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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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짓물 원류(용출지점).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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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짓물 해안습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지금은 이 물을 이용하여 남여를 구분한 목욕시설과 바닷물을 경계로 한 1653㎡ 규모의 담수욕장을 조성하여 산물을 찾는 사람들에게 물이 주는 감흥을 제공한다. 이 산물로 매년 여름철 예래논짓물축제(2011년부터 예래생태마을 해변축제)를 여는 등 ‘핫플레이스’로 손꼽힌다.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해수와 담수가 밀도차에 의해 경계면을 형성하고 해수가 담수침입을 막고 있는데, 이런 해안을 기수역 조간대라 하며 파도의 포말이 염·담수 경계면을 허물어버리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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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짓물 남탕.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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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짓물 여탕.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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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짓물 담수욕장.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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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짓물 염·담수경계면.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논짓물에서 서쪽으로 1㎞정도에 예래포구가 있는데, 포구안 동쪽 큰 코지가 있는 점뱅이 구석에 가면 점뱅이물(정뱅이물)이란 산물도 만날 수 있다. 제주어로 짧게 만든 홑바지를 점뱅이라 하고 있는데, 물에 들어가려면 홑바지처럼 무릎까지 바지를 걷는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인지 떠올려본다. 한편으로 뱅이는 성질이나 특징을 나타나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의 성격으로 볼 때, 언덕 아래 낮은 둥근 궤(동굴)에서 앉아 있는 정좌한 모습과 같이 솟고 있다고 해서 ‘점뱅이’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산물은 여름철에 목욕을 하던 물이다. 산물 위 언덕은 쉼터로 만들었지만, 절벽 형태의 바위들로 둘러싸여 있던 이곳까지 포구로 확장하면서 주변이 많이 변해 버렸다. 그래서인지 솟는 산물의 양은 예전 같지는 않지만 산물 모습은 운치 있는 자연스런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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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뱅이물 전경.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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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뱅이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외에도 논짓물로 가기 전 중동마을 주민들이 생활용수인 못밭물도 있으나 지금은 귤 과수원의 농업용수로 사용된다. 2013년에 개수한 과수원 창고 옆에 있는 못밭물은 두 군데서 용출되며 강우의 영향을 받는 물로 비가 안 오는 갈수기에는 물이 말라버리는 특징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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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못밭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논짓물에서 열리해안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650미터 정도 가면 ‘작은코지’가 있는데, 이 코지에 용이 지나간 듯한 모양의 커다란 바위 ‘용문덕’을 볼 수 있다. 이 바위는 하늘로 승천하는 용이 지나던 문턱이라 한다. 1997년과 1998년의 극한 가뭄 때 물이 풍부한 마을인 예래동도 가뭄을 비켜 나가지 못해 여기서 기우제를 지낸 적이 있다. 

용은 ‘미르‘라고 하며 물(水)을 뜻한다. 그리고 용은 물을 관장하는 수신(水神)으로 강, 못, 바다를 관장하고 비와 풍요를 가져 오는 선한 신이기에 용이 지나는 길목에서 기우제를 지낸 것이다. 이처럼 물은 항상 곁에 있는 것 같지만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 수도 있는 유한 생명자원이기에 우리 모두가 사라져 가는 생명유산인 제주산물을 보전하는데 힘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 고병련(高柄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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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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