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난민신청을 위해 제주로 들어온 예멘인 549명이 뜨거운 화두다. 대부분 내전을 피해 말레이시아로 탈출했다가 체류연장이 어려워지자 무비자입국이 가능한 제주로 넘어온 사람들이다. 다소 낯선 나라의, 그것도 대다수가 남성인 이슬람 문화권 난민신청자들이 한꺼번에 제주로 입국하자 이들에 대한 배타적인 여론까지 형성되고 있다. 거기에다 내전을 피해 살기 위해 8000km를 넘어 제주로 왔지만 이들에게 '난민 인정 심사'까지 이들에겐 큰 장벽이다. 우리나라의 난민 인정률은 4.1%. 국제평균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제주의소리>가 난민 인정심사제도에 대해 두차례에 걸쳐 긴급 점검해본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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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도 국내 난민 심사 현황 갈무리 / 이미지 = 난민인권센터

[난민심사 긴급점검-下] 난민 심사 ‘인력부족’, ‘전문성 제고’...난민심사 인프라 부실

◇ 전국 난민 심사관 38명...‘인력 가뭄’

제주도내에 머물고 있는 예멘인 486명(현재 최종)의 난민 인정 여부는 2~3개월 후면 결정된다. 그들에게 난민 인정 심사는 '바늘구멍'이다. 1994년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난민 인정을 받은 사람은 2만361명 중 단 839명으로 4.1%만이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국제평균 보다도 매우 낮은 난민 인정률은 '엄격한 심사기준'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 이면에는 ‘심사 인력난’도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국에 난민 심사관은 38명뿐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6월 30일까지 전국에 1차 난민 인정 심사를 기다리는 사람은 1만3693명. 이중 7209명이 지난해 난민 신청자 중 1차 심사를 받고 있다.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이 올 6월까지 집계한 도내 전체 난민 신청자 수는 1080명이다. 현재 제주출입국청의 난민 심사는 심사관 6명과 통역관 6명 등 총 12명의 인력이 심사에 착수한 상태다. 전국에 난민 심사를 하는 곳은 제주출입국청을 포함해 21곳인데 제주출입국청에만 6명의 심사관이 몰렸다. 나머지 20곳은 1~2명의 심사관이 심사 업무를 맡는다는 얘기다.

심사관 6명은 먼저 예멘 난민 신청자에 대한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예멘인 뿐만 아니라 594명의 신청자에 대한 심사도 진행해야 한다. 보강된 인원이라 하더라도 제주출입국청 심사관들의 업무는 과중하다. 심사가 '부지하세월'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지난달 18일 예멘인 난민신청자들이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취업교육을 받고 있다.
난민 통역관 ㅁ씨는 “(심사에 대한)사전 준비와 국가 정황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무리가 따르지만 가능하다”면서도 “물리적으로 시간이 빽빽하다. 이런 일정이라면 집중력과 심사의 질적인 문제도 우려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 사람이) 심사하는 사람의 수보다 중요한 것은 면담의 질이다. (심사)결과를 봐야겠지만 (예멘인에게는) 이제까지의 신청자와는 다른 경위와 배경, 국가 정황이 있을 텐데 이에 대한 정기적인 공유채널이나 정보가 부족한 걸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심사의 질을 높이는 것도 매우 중요한 과제다. 공익법센터 어필(APIL) 이일 변호사는 “심사관은 출입국청 소속 공무원이 돌아가면서 맡고 있어 출입국청 관점의 심사가 진행되는 경향이 짙다”며 “출입국청과 독립된 기관에서 난민 분야 전문가를 심사관으로 양성해야 한다. 아니면 법무부 내부에서라도 난민 전문가를 위촉해 지속적으로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대안도 제시했다.

법무부는 제주 예멘 난민 문제로 지난 달 29일 긴급대책회의를 연 후 언론브리핑을 통해 난민 심판원과 국가정황 수집·분석팀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심사 인력이 보강됐음에도 여전히 인력난을 겪고 있어 신청자, 심사관 모두 속이 탄다.  

더군다나 현재 제주에서 난민 인정 심사를 기다리고 있는 총 1080명 중에는 예멘 난민 신청자에 앞서 입국해 인정심사를 기다리고 있는 594명의 난민 신청자들이 있다. 예멘인 신청자들이 일시에 대거 입국하는 특수한 상황이 벌어지면서 이전에 난민 신청한 외국인들의 심사는 자연히 뒤로 미뤄지게 됐다.

▲ <제주의소리>가 단독 입수한 2013년 2월 받은 난민신청자 A씨의 난민 불인정 사유서. ⓒ제주의소리

◇ 외국인에게 ‘한글’ 난민 불인정 사유서...‘납득 불가’

최근 <제주의소리>가 입수한 법무부의 난민 불인정 사유서는 눈여겨 볼만하다. 난민 불인정 통지서는 1994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통역안내 없이 오롯이 한글로 통보된다. 법무부가 지난 5일 발표한 설명자료에 따르면 불인정 사유서의 구체적 내용은 통역 인력 부족으로 부득이 한글로 된 붙임자료를 첨부한다고 밝히고 있다.

면담을 위해 대기한 기간과 실제 면담 시간에 비해 불인정 사유서는 신청자가 납득할 만한 내용이 충분치 않다. 단 몇 단락의 불인정 사유 제시는 충분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구체적 사유와 합리적 근거 제시가 부족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의신청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외국인에 대한 통역 문제는 심사과정에서부터 발생한다. 객관적인 난민 심사가 가능해지려면 심사에 배석한 통역관의 전문성이 담보돼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다.

통역관 ㅁ씨는 “난민 통역의 경우 통역관에게 신청자의 사전정보(진술서, 난민신청 경위 등)가 전혀 제공되지 않아 제대로 교육·훈련받은 통역인도 (신청자 진술의) 맥락을 짚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이어 “통역관은 현장에 도착해서야 신청인의 국적을 확인한다. (난민 통역은)비즈니스 통역과는 대화 목적이 애초부터 다른 데다 신청자의 정돈되지 않은 말을 통역하려면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며 “(이 상황에서) 여러 차례 확인을 해도 통역의 질을 완벽하게 보장하기는 어렵다”고 현장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 <제주의소리>가 단독 입수한 2016년 8월 난민 신청자 B씨가 받은 난민 불인정 사유서. ⓒ제주의소리

2016년 8월 E국가 출신의 B씨는 서울출입국사무소로부터 난민 불인정 통보를 받았다. B씨는 한글로 된 통보서 내용에 대해 통역 안내를 받기 위해 난민인권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놀랍게도 불인정 사유서에는 “돈을 벌 목적으로 난민신청 하였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곧장 이의신청을 했지만 기각 당했다. 결국 그는 법무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0단독(임수연 판사) 재판부는 지난해 11월26일 B씨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B씨는 통역관에게 돈을 벌 목적으로 난민을 신청했다고 말한 적이 없고, 또 고국으로 돌아갈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한 적도 없다”며 “통역관은 면접조서에 원고가 취업을 위해 난민 신청을 했고 난민 인정 신청서는 거짓으로 작성했다는 사실을 신청자 B씨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원칙적으로 난민신청자에게 면담조서가 완료되면 조서 내용을 확인하도록 되어 있다. 

또한 “통역관은 자신이 질문하는 것에 대답하라고만 했고 원고가 설명할 기회를 충분히 주지 않았다”며 “통역인은 원고에게 ‘‘예’, ‘아니오’로만 대답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B씨에게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외국어를 구사한다고 원활한 난민 심사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자격 미달 통역관이 난민 통역을 할 경우 발생하는 문제도 심각하다.

통역관 ㅁ씨는 “심사관을 포함해 많은 사람이 두 언어를 할 줄 알면 당연히 통역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보는 태도 자체가 문제”라며 “전문적인 통역훈련이 필요한데 정기적인 통역훈련은 1~2년에 한번 정도”라고 답했다. 

난민 문제가 최근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화두가 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제주로 들어온 예멘 난민신청자들에 대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무사증 출입국제도의 허점을 이용한 가짜 난민을 엄격히 가려내는 일도, 전쟁과 정치적 박해를 피해 입국한 진짜 난민을 인도주의로 포용해야 하는 일도 모두 책임을 방기해선 안될 일이다. 

이에 대해 중앙정부와 제주도정이 몇몇 응급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난민심사 인프라'의 부실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언 발에 오줌 누기' 미봉책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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