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임의 오름기행] 능선이 아름다운 '용눈이 오름'
▲ 용눈이 오름의 분신인 알오름입니다. |
ⓒ 김강임 |
▲ 표지석 앞에 차를 세우면 좁은 등산로 길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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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여름은 온통 푸름뿐이다. 한라산 골짜기에 풀어놓은 초록 물감이 제주 들녘을 덧칠하더니 여름은 어느새 한가운데 와 있다. 한여름에 초록을 밟고 초록을 마시는 기행, 제주산야에 고즈넉이 누워있는 제주 오름의 여름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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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구좌읍 종달리 산 28번지 용눈이 오름의 여름은 푸른 잔디가 으뜸이다. 비스듬히 누워있는 오름 언덕배기엔 풀잎을 뜯고 있는 소들의 풍경이 목가적이다.
사람들은 이번 장마를 지긋지긋하게 여겼지만 장맛비에 신이 난 것은 용눈이 오름의 풀잎들. 풀잎은 날마다 목욕을 했는지 윤기가 번지르르하다. 그러니 소들은 풀잎에 얼마나 맛이 있을까?
표고 247m인 용눈이 오름은 단숨에 오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성급함은 또 한번의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오름 등산로는 늘 길이 나 있는 것만은 아니다. 사람이 밟으면 길이 되고, 여러 사람이 밟으면 그 길은 뚫려 버린다. 이때 오르미들은 날마다 범죄자가 된다. 생명을 이고 있는 풀잎들을 무참히 짓밟아 버리는 범죄자 말이다.
용눈이 오름 등산로 역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는지 풀섶을 사이에 두고 길이 뚫렸다. 행여 풀잎이 아파할까 두려워 걱정하는 오르미 마음.
▲ 오름을 오르다 보면 먼저 오른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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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하나의 알오름이 용눈이 오름 기슭에 달려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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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성이 왼쪽과 오름 쪽에 나타난 알오름의 분화구 뻥- 뚫려 있는 기분이 들었다. 용암류의 이동으로 퇴적된 알오름 분화구 한가운데는 죽은 자의 터가 자리 잡고 있으니 풀섶은 죽은 자의 쉼터가 된다.
"어찌 사람들은 저 분화구속에 잠들 수 있을까?" 화산폭발의 이글거림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오름의 분화구를 뜨겁게 생각하지만, 풀 섶 속에 숨어 있는 분화구를 생각하는 자에겐 알오름 분화구를 천국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용눈이 오름에는 미나리아재비와 할미꽃이 자생한다던데, 철이 늦은 탓인지 할미꽃의 흔적은 찾아 볼 수가 없다. 다만, 시들어 가고 있는 찔레꽃 속에는 열매를 맺기 위한 벌과 나비의 작업이 시작되고 있었다.
▲ 분화구에는 풀잎이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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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화구 능선의 아름다움에 취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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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누운 오름'이라 일컬어지기 때문이지 올록볼록 변화를 이룬 분화구의 모습이 호기심을 자아낸다. 능선을 돌아보는데도 20여분. 능선의 위치에 따라 초점은 달리한다.
▲ 능선에 걸쳐있는 손자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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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장맛비에 휩쓸린 토사의 흔적을 감싸고 있는 풀잎의 무리들. 분화구 전체는 마치 초원인양 풀잎 양탄자를 깔고 있다. 여러 종류의 화구로 이뤄진 올록볼록 솟아난 모양체는 복합형 화산체를 이루고 분화구 주변에는 산 담으로 집을 짓고 누워있는 묘지가 풀섶 향기에 취해 있는 듯하다.
▲ 타래난이 오름 분화구에 피어 있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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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선에 걸쳐 있는 다랑쉬 오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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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 여인의 각선미에 도취되지 않으리. 마치 미인의 허리같이 가녀린 타래난과 용눈이 허리의 곡선의 조화에 도취되는 순간, 능선 끝에 말없이 걸려 있던 다랑쉬 오름 분화구에서는 안개를 토해 내고 있었다.
제주오름 정상에서 허리를 굽어보면 보이는 것들은 산 아래에서 정상을 꿈꾸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산 아래에서 생각하는 오름의 정상은 늘 마음속에 희망이지만,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산 아래 풍경들은 우리들의 현실일 뿐이다.
경계선을 의미하는 제주 돌담 사이에는 농부의 땀이 흐르고, 능선 뒤에 펼쳐진 또 하나의 오름들은 또 다른 화산체로서 역할을 한다. 그 품에 묻혀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산자이건, 죽은 자 이건, 오름 속에 존재해 있다.
풀섶의 향기가 얼마나 달콤한지, 능선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올 여름 용눈이 오름에 올라보라. 성격이 모난 사람은 풀의 숲에서 모서리의 예민함을 깎아내리며 둥글둥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하게 될 것이다.
▲ 날씨가 맑은 날에는 멀리 성산일출봉까지 보이지만, 해안선이 구름위에 떠 있는듯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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