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 감수성 살리는 <공감수업> 펴낸 김홍탁·강영아 교사 부부 "학교민주주의는 시대정신"

머릿 속에 담긴 교과와 관련한 지식은 갈수록 바닥을 드러내고, 수업 준비에 소홀할 때도 많았다. 어느 날은 교실 문을 열기가 두렵고, 학생들 앞에 서 있는 것에 미안한 감정을 느낄 때도 있었다. 교직 생활을 버틸 수 있는 근력은 수업으로 성장하는 경험에서 나온다. 교직의 매력이자 교직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은 수업 안에서 효능감과 즐거움을 체감할 때 커진다. 수업 연구가 충분히 된 날에는 학생들 앞에서 당당하고 자신감이 높아지며, 수업 중에 농담 한 마디를 해도 격이 달라지는 경험을 해 본 교사는 알 수 있다. - <공감수업> 본문 중에서

1.jpg
▲ 제주시내 모처에서 만난 귀일중학교 김홍탁 교사와 오현고등학교 강영아 교사. ⓒ제주의소리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수업이 될 수 있을까?'

교사로서 가장 근본적인 고민이어야 함에도 아직도 상당수 교사들에겐 사치(?)스런 고민으로 다가오는게 사실이다. 행정적인 업무 처리도 모자라 야간 자율학습에 보충수업까지. 교사들에겐 일방적인 '가르침' 외에 자기자신을 계발하는 '배움'은 끼어들 여지가 적은게 현실이다.

하지만 이 부부교사의 고민은 치열했다. 변화해야할 주체로서 교사의 역할은 무엇인지, 삶과 분리되지 않는 배움은 무엇인지, 학생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은 없는지 한 순간도 고민의 끈을 놓지 않았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결국 해답은 '수업'에 있다는 것이었다. 실마리를 찾은 부부교사는 지체없이 펜을 들었다. <공감수업>은 그렇게 탄생했다. 

제주시 애월읍 귀일중학교 김홍탁(37) 교사와 오현고등학교 강영아(38) 교사의 이야기다. 

<공감수업>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교사로서의 삶의 고백들이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설익었던 초임 교사 당시 실수부터 의욕만 갖고 달려들었다가 호되게 겪은 시행착오까지, 300쪽 남짓의 책은 두 교사의 거울이었다.

교사이기 이전에 일곱살 배기 쌍둥이 자녀의 부모인 부부는 절대적인 시간의 부족함 속에서 수 개월 간 하얗게 밤을 지새웠다. 그럼에도 두 교사는 "일과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그 시간들이 가장 행복했다"고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봤다.

▲ 제주시 모처에서 인터뷰를 갖고 있는 김홍탁 교사. ⓒ제주의소리
◇ 홍탁 쌤 이야기 : '민주공화국이 뭐냐' 뒤통수 때린 학생의 질문

제주대학교 사회교육과에서 만나 부부의 연을 맺은 두 교사는 2007년 나란히 임용됐다. 

"사회과의 매력에 푹 빠져 교과 전문가가 되고 싶었어요. 전공 서적을 끼고 살았고, 교단에 서면 누구보다 사회 수업을 잘할 수 있을 것으로 단단히 믿고 있었죠. 학생들도 제가 중고교 시절에 그랬듯이 열심히 공부해줄 것이라 기대했어요"

교사로 임용된 후 마주한 교실의 풍경은 당초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머릿 속에서 그렸던 교실과는 달리 실제 맞닥뜨린 수업 현장은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사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교사는 대학 시절의 공부만으로도 소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교사는 상담사, 사회복지사, 때로는 부모님 등으로 변신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시작은 '민주공화국이 무슨 뜻이냐'는 한 학생의 질문이었다. 

"당시 민주공화국이 단순히 민주국가로라고만 생각했고 그 의미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민주공화국은 민주국가'라는 요지로 설명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그것을 학생들에게 정확하게 가르치지 못한 것이 부끄럽고 아쉬웠죠"

이듬해 진학한 대학원에서 그는 학위 논문의 연구 주제를 '민주공화국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로 정했다. 쉴 새 없이 서울을 수시로 오갔다는 김홍탁 교사. 

바다 건너 찾아온 현직 교사가 수업에서 비롯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많은 격려가 잇따랐고, 그 또한 자연스럽게 민주공화국의 모습을 확산적으로 사고하는 활동을 담은 수업을 구상하게 됐다.

"아이들과 같이 생각하고 공감하는 것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에요.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낼 지는 교사가 수업을 어떻게 디자인하느냐에 달려있는 거죠"

사회-역사 교사인 그는 아이들이 진짜 사회와 소통하는 방법을 깨닫도록 교과서에서 뛰쳐나왔다. 제주4.3학살터, 해군기지 갈등의 현장 서귀포시 강정마을,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베트남 전쟁의역사 등은 모두 생생히 살아있는 교육 현장이었다.

직접 현장을 찾아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은 모두 수업 그 자체였다. 필요에 따라 학부모들을 설득도 하면서 학생들과 함께 제주 곳곳은 물론 서울까지 오갔다.

1.jpg
▲ 학교 수업 현장의 김홍탁 교사. ⓒ제주의소리
◇ 영아 쌤 이야기 : "여백이 없는 교실 현장, 교육환경 전환 필요"

'입시 성적'으로 평가가 매겨지곤 하는 일반계 고등학교의 사정은 중학교와 많이 달랐다. 

첫 발령을 받고 고교 3학년 '법과 사회'를 가르친 강영아 교사. 당시만 해도 해당 교과는 상위권 학생들이 법과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선택했던 과목이어서 수업의 강도와 난이도가 높았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공부했다. 수십 권의 문제집을 풀었고 학습지 제작과 개념별 문제풀이 자료 제작에 심혈을 기울였다. 배움이 느린 학생들에게는 휴일과 주말을 반납까지 하면서 특강을 열어 기초부터 개념을 설명해줬다. 학생들의 피드백도 좋았다.

학업성취도가 떨어지는 학생들이 못 따라와도 애써 외면하며 좋은 표준점수와 상위 등급을 보며 만족해 했다. 학업성취도가 낮으면 '학생들의 탓'으로 돌리는 것에 그 어떤 성찰도 없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숱한 문제집과 씨름을 했어요. EBS 강사 못지 않게 문제도 잘 풀어야 했고, 테크닉 적으로도 훌륭해야 하고...몇 년 간 고단한 수업을 해서 입시 성적은 나쁘지 않았는데, 수업에 생기가 없는 거예요. 그러다 '내가 강사인가, 선생님인가, 이럴거면 저렴한 수업료로 들을 수 있는 강사에 불과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불현듯 하게 됐죠"

2.jpg
▲ 제주시 모처에서 인터뷰를 갖고 있는 강영아 교사. ⓒ제주의소리
고민하던 차에 갖게 된 육아휴직은 그녀의 시야를 넓혀줬다.

"3년간 쌍둥이 자녀를 기르면서 민들레라는 대안교육 모임에 나가게 됐어요. 동료 교사나 선후배 선생님들 말고 다른 범주의 선생님들을 만났는데 건강한 사고방식을 가진 분들이었어요. 교육 철학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됐죠. 그런 분들과 교감하고 얘기를 나누니까 '내가 공부를 더 많이 해야겠구나' 반성을 많이 했어요"

운신의 폭이 상대적으로 좁아 남편의 수업이 부럽다면서도 그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수업을 디자인했다. 1000여명의 남학생과 80%에 육박하는 남교사들 사이에서 그녀는 '감수성'을 키워드로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수업 주제로 일탈 행동에 대한 개념을 배우는 내용이었어요. 사실 교과서 한 페이지 분량이고 10분이면 끝나는 수업이죠. 이 수업을 아이들의 삶과 접목시켰어요. 자신의 일탈 행동을 주제로 한 자작 시를 쓰게 했어요"

성적의 잣대로만 평가했다면 그저 그런 아이들의 작품은 놀라웠다. 특히 그녀는 유난히 말썽을 부렸던 한 학생의 시가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아이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해 감수성 수업으로 서로 공감하고, 배움과 평가의 경계를 없앤다'. 강영아 교사만의 수업 철학이다.

"수업 경쟁력이 입시 경쟁력이 되다보니 저의 빛깔을 내는 수업은 한 달에 1~2주 정도에요. 2~3주는 현실과 타협해 개념과 문제풀이식의 강의식 수업을 하죠. 수업이란게 저만 효능감을 느끼면 안되니까요. 학생들의 만족과 제 철학이 만나는 접점을 찾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아요"

2.jpg
▲ 학교 수업 현장의 강영아 교사. ⓒ제주의소리
◇ "경쟁 허덕이는 교사들, 학교 현장에는 '여백'이 필요하다"

두 교사는 교사를 성장시키는 교육환경 시스템이 정착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사실 지금 학교는 교사들이 교육을 말하는 공간이 되지 못해요. 개인이 해야 할 몫에 따라가기 벅차거든요. 교사가 가장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은 동료와 함께 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학교라는 공간이 그렇게 돼야 한다고 봐요"

교사로서 처리해야 할 행정적 업무에 더해 일과 중 수업은 물론, 야간자습, 보충수업 등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교사들의 일상이다. '여백의 시간'은 각자가 재량껏 확보해야 하는 구조. 시간이 갈수록 에너지를 소진할 수 밖에 없는 형국이다.

"선생님들은 기본적으로 지성인이에요. 여백을 만들어주면 내적인 성숙의 기회로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어요. 하지만, 과잉경쟁에 허덕이는 학교 시스템으로 인해 선생님들은 질적으로 경쟁할 기회를 잃고 있어요. 교사에게 정성을 다하면 자연스럽게 교사 또한 학생과 수업에 정성을 다하지 않을까요?"

두 교사는 앞으로의 시대정신이 '학교 민주주의'에 맞춰져야 한다고 했다. 교사는 물론 학생들까지 학교 운영에 적극 참여하는, 수평적인 합의와 토론이 교육 현장에서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학교가 '전문적 학습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고 제언했다.

"각 학교에 학생회가 있지만 실질적으로 학생자치가 이뤄지는 곳이 있을까요? 학생과 교사들 간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되면 학생들도 자발성이 일어나 효능감을 느끼게 될 것이고, 교사들 역시 교육과정과 수업, 평가 등에 있어 의사결정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겁니다"

▲ 두 교사가 집필한 <공감수업> 책자. ⓒ제주의소리
<공감수업>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도 이것이 아닐까? 다만, 아쉬운 점은 있다. 전국적으로 현장 교사가 학교와 교육의 이야기를 담아낸 책들이 봇물처럼 쏟아져나오고 있지만, 제주에선 이렇다할 도서를 찾아보기 어렵다.  

광주광역시교육청 같은 경우 교사의 수업 사례 집필을 정책사업으로 지원해주고 있다. 전북교육청은 7년간 110여권의 책이 발간돼 최근 북토크 콘서트도 열었다.

제주는 혁신학교를 비롯해 나름의 성과를 냈다고는 하지만,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담아낸 기록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교사들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어요. 존경할 만한 교사가 없다는 이면에는 그렇게 만든 시스템을 봐야 합니다. 교육은 물론 보육시스템까지 도맡아야 하는 선생님들에게 제대로 시간을 내어준 적이 있나 고민했으면 해요"

두 교사는 자신들의 영역에서 보다 나은 교육을 구현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때로는 교원 전문성 신장을 위한 워크숍을 직접 주재하기도 했다. 오는 14일 오후 6시에는 애월읍 광령초등학교 인근 독립서점에서 북콘서트를 열 예정이다.

"책을 낸 이유도 결국은 수업 얘기를 공유하고 싶어서에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을 더 많은 교사들과 함께 나눴으면 합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