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집단 ‘예담길’은 예술을 이야기하며 길을 걷는 문학인들의 모임입니다. 김광렬(시인), 김대용(번역가), 김병택(시인·비평가), 김석희(소설가·번역가), 김희숙(무용가), 나기철(시인), 문무병(시인·민속학자), 양원홍(시인), 장일홍(극작가·소설가) 등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예담길이 찾아가는 ‘제주도내 맛집’을 월 1~2회 연재합니다. 이 맛집 기행은 한 사람이 맛집을 소개하던 종래의 방식에서 벗어나, 예담길 멤버들이 함께 참여하되 1인이 집필하는 ‘다자참여-대표집필’의 형식으로 쓰여집니다. 이러한 방식은 한 개인의 기호나 취향 등 주관적 판단에 맡기지 않고 여러 사람이 평가에 참여하므로 보다 객관적이고 타당성·공정성을 확보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맛집의 주 메뉴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작가집단 예담길의 맛집기행] (4) 서귀포 보목해녀의집

대학 때 어느 선배가 '자리'는 세계에서 노르웨이 근해와 제주도 바다에서만 난다는 말을 해서 그게 사실인 줄 알았었다. 그런가보다 하고 있다가 자리에 대해 알아보니 그건 우리나라에서 제주도와 남해 동부, 동해 남부 등에서 나고, 일본 중부 이남과 동중국해, 대만 등에서 서식한다는 것이다.

노르웨이라니! 그 선배가 어떤 근거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자리가 제주도의 자랑할 만한 어류라는 걸 강조하려 한 것은 틀림없겠다.

제주에서 자리라고 부르는 이 바다 고기는 자리돔이 정확한 명칭이다. 여기 제주도에는 모슬포 자리와 보목 자리가 이름이 있다. 모슬포 자리는 거친 그 쪽 바다에서 자라 뼈가 굵고 크기도 커 구워먹기에 좋고, 남쪽 서귀포 부근 바다에서 자란 보목 자리는 뼈가 좀 약하고 크기도 작아 물회나 강회로 많이 먹는다.

나는 이 중 보목 자리와 가까운데, 이는 여기 서귀포 도심을 벗어나 동쪽으로 조금 가면 재지기오름이 있고 바로 앞 바다에 섶섬이 있는 보목동에 한기팔(82) 시인이 계시기 때문이다. 한 선생은 거기 태생으로 한 씨가 많은 이 마을의 종손이다. 20대를 빼곤 거기서만 살아오고 있는 보목의 터주 대감이시다. 여름에 몇몇이 선생을 만나러 가면 꼭 그 바닷가의 한 횟집으로 우릴 데려가신다. 그 집은 섶섬이 바로 앞에 있고 바다 물결 소리가 발아래 부서지는 ‘보목해녀의집’이다.

cats.png
▲ 보목리 바닷가에서(왼쪽 나기철 시인, 오른쪽 한기팔 시인). 제공=양원홍. ⓒ제주의소리

내가 그 집엘 들린 지도 30년이 넘었다. 우리는 바로 바다에 임한, 집 밖에 마련된 세 개의 상에 마주 앉아 자리강회와 자리물회를 안주로 소주잔을 기울인다. 가득 숲으로 된 무인도 섶섬과 수평선, 물새들을 배경으로 마치 배 위에 있는 듯하다. 여길 다녀간 육지부 문인들도 수없이 많다.

이번 ‘예담길’의 ‘보목해녀의집’ 맛 기행에도 전과 같이 한 시인께서 함께 해 주셨다. 주인에게 미리 얘기해 놓고, 자리도 밖의 좋은 데로 마련해 놓으셨다.

자리에 앉으니 먼저 자리를 잘게 썬 강회가 들어온다. 우린 소주를 털어 넣고 보목의 청정 바다에서 떠 올린 자리강회를 초 된장에 찍어 입에 넣는다. 쓴 소주가 보목 자리와 만나 이를 데 없이 고소하고 감칠맛이 나면서 우린 이미 보목 앞바다의 자리가 되어 유영을 한다.

다음 자리물회가 들어온다. 비늘을 벗기고 내장을 뺀 후 머리 쪽을 다지고 몸통을 어슷썰기로 얇게 썰어 식초를 뿌려 재운 것에 오이, 깻잎, 미나리, 부추, 풋고추, 양파를 썰어 된장, 식초, 설탕, 다진 마늘, 다진 생강, 깨소금, 후추와 참기름, 초피 잎을 넣어 버무린 뒤 물을 부어만든다. 비린내는 일찌감치 멀리 가 버렸다.

cats3.png
▲ 자리구이. 제공=양원홍. ⓒ제주의소리
cats4.png
▲ 자리강회. 제공=양원홍. ⓒ제주의소리

자리물회에는 봄, 여름의 아직 뼈가 여물지 않은 어린 자리가 알맞다. 무더운 여름에 찬 성분의 콩으로 만든 된장이 듬뿍 들어간 자리물회를 먹으면 가슴이 탁 트이며 더위가 싹 가신 다.

한 시인께서는 여기 자리는 섶섬 부근 일정한 곳에서만 산다며 그들의 생태에 대해 얘기하신다. ‘자리’라는 이름도 멀리 가지 않고 한 자리에서만 산다고 하여 붙여졌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리를 마주했던 자리에서 일어나 보목 포구로 갔다. 거기 한 시인의 시 ‘자리물회’를 새긴 시비가 있다. 

cats2.png
▲ 한기팔 <자리물회>. 시비 제공=양원홍. ⓒ제주의소리

자리물회
한기팔

자리물회가 먹고 싶다.
제주 사투리로
'아지망 자리물회 하나 줍서' 하면
눈물이 핑 도는,
가장 고향적이고도 제주적인 음식.
먹어본 사람만이 그 맛을 안다.
톡 쏘는 제피 맛에
구수한 된장을 풀어
가난한 시골 사람들이
여름 날 팽나무 그늘에서
한담을 나누며 먹는 음식.
아니면
저녁 한 때 가족들과 마당에
멍석을 깔고 앉아
먼 마을 불빛이나 바라보며
하루의 평화를 나누는
가장 소박한 음식.
인생의 참
뜻을 아는 자만이
그 맛을 안다.
한라산 쇠주에
자리물회 한 그릇이면
함부로 외로울 수도 없는
우리 못난이들이야
흥겨워지는 것을
나는 일행의 권유로 그 시를 크게 읽었다. 순간 우리는 모두 자리가 되어 회갈색 등에 푸른빛이 나는 은색의 배, 가슴지느러미 쪽 흑청색 반점을 빛내며 팔딱팔딱 보목 바다로 들어가 버렸다. 

서귀포 보목해녀의집 식당 주소는 서귀포시 보목포로 48이다. 가격은 자리물회 1만2000원, 자리강회 3만원, 자리구이 2만원(소)-3만원(대)이다. (전화: 064-732-3959) 
<대표집필 : 나기철>

※ 예담길 멤버들의 촌평

- 자리 물회는 역설의 음식이다. 새콤한 맛이 우리의 신산한 삶을 위로해 주고 있으니…
(김병택)

- 제주사람에게 자리물회는 추억의 음식이자 솔(Soul) 푸드다. 그래서 제주인들은 물회와 함께 추억도 먹고 사랑도 먹는다. (장일홍)

- 제주 여름은 자리물회 몇 낭푼은 먹어사 끝날꺼주… (문무병) 

- 그 옛날, 버랭이깍 포구에 자릿배 들어오면, 왜 그리도 신이 났던지! (김석희)

- 하동시절. 물장구치는 선창에서 들어오는 자릿배삼춘이 던져준 자리 몇 마리! 통째로 아작 씹어 잊을 수 없었던 고소한 제주바다의 맛. (김대용)

- 특히, 자리구이의 구수한 맛이 돋을새김으로 남아 우리의 영혼을 황홀하게 물들인다.
(김광렬)

- 무쳐서 새콤 달콤 매콤하거나, 뼈째로 썰어서 고소하고 담백하거나, 싱싱한 채로 소금에 절여 구워지거나, 언제나 꼭꼭 씹어 기억하는 바다의 향수. (양원홍)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