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47) 조천리 조천진성의 산물

육지로 나가는 사람들이 순한 바람을 기다리는 곳인 조천리는 조천관이라 불렀다. 조천진성이 있어 제주 섬의 중요한 방어지이며 섬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통제한 제주 섬의 관문이었다. 그리고 ‘조천’이란 의미는 천자(임금)을 배알(알현)한다는 뜻이다. 

조천리의 물과 관련된 기록을 보면 “성 안에는 우물이 없고 곡식을 저장하는 창고도 없어서 외적이 침입했을 때 성을 지키기가 어렵다”고 기술되어 있다. 김상헌의 <남사록>에도 “우물은 없고 동문만 있을 뿐인데 문 위에는 망루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조천리도 물을 얻기 위한 노력을 부단히 해 온 마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행히도 이 마을의 바닷가는 큰물, 두말치물, 장수물, 수룩물, 엉물, 자리물 등 많은 산물이 풍부하게 용출되고 있어서 물을 구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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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낭개 산물(앞 조근돈지물, 뒤 큰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조천리에서 마을의 중심이 된 물은 용출되는 물의 양이 커서 ‘큰물’이라 부르는 산물이다. 큰물은 마을에서 2월에 거행하는 용신제라는 세시풍속과 함께 연북정 등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산물로 큰물성창이라는 개낭개에 있다. 개낭은 누리장 나무를 말한다. 용신제는 마을제로서, 육지부에서는 ‘우물제, 우물고사’라는 샘제와 같다. ‘물의 신’ 용(龍)에게 지내는 제사로 마을의 안녕과 함께 산물이 잘 솟도록 기원하는 의식이다. 큰물은 비석거리를 지나 북쪽으로 100m 정도 내려가면 왼편에 위치하고 있다. 여자전용의 물로 일명 ‘하동계못’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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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물(현재).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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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물(예전 비가림 시설).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큰물은 남서쪽으로는 연북정이 올려다 보여서 바다와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경치를 지닌다. 두 개의 수로를 따라 풍부하게 흐르는 큰물은 사각 식수통이 네 개가 있다. 10여m 가량의 두 개의 수로는 채소 씻는 통, 빨래통으로 사용했다. 식수통 네 개 중 맨 위 서측 가장자리에 있는 것은 암반 틈에서 솟는 물이며, 가운데에서 솟는 물은 바닥에서 솟고 있는데, 바닥에서 다량의 산물이 용출된다. 또한 조류에 따라 수량을 달리하는 큰물은 밀물 때면 물팡 이상의 높이까지 바닷물이 담수를 밀어 물을 이용할 수 없다. 그리고 개수되었지만 예전 그대로 일부 남아 있는 물팡은 옛 명성을 대변한다. 특히 큰물 물줄기를 자세히 보면 한라산을 향해 샘솟는 거슨물인 역류수로 호종단의 단혈과 맞선 마을을 지킨 수호산물이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큰물을 귀하게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산물은 바닥에 판석을 깔고 일부 개수되었지만 그래도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존되어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가림시설이 있었는데 최근에 비가림 시설을 철거했다. 이유는 비가림으로 햇빛이 들지 않아 바닥에 이끼가 껴 미끄러워 넘어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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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물 내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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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물 용출 광경.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큰물 앞 북쪽 바닷가에는 여자물의 파수병인 조근돈지물이라는 남자물이 있다. ‘조근’은 제주어로 ‘작다’는 의미며, ‘돈’은 ‘달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산물은 큰물보다 작고 밀물 시 바다에 잠기는 위치에 있지만 물이 짜지 않고 달았던 산물이다. 

이 물은 구럼비 빌레(너럭바위) 위 용암경계인 암반 틈에서 솟아나는데, 어른 두세 사람 정도 들어 갈 수 있는 사각 욕탕이 만들어져 있다. 밀물 때에는 주변이 바닷물로 둘러싸여 떠 있는 섬같이 보여 신비감을 자아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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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근돈지물과 연북정.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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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근돈지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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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근돈지물 내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조근돈지물 우측 곁에 방파제처럼 쌓아 만든 돌길을 따라 가면 빨래터로 사용했던 조그마한 산물인 빌레물이 있다. 빌레물은 너럭바위로 암반 틈에서 용출되는 옛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이 물의 안내 팻말에는 옛날 돈지영감이 살던 집터로, 돈지영감이 식수로 사용했던 생이물이라고 쓰여 있다. 생이물이란 용출되는 물이 양이 적어 새들이 먹을 만큼만 나오는 작은 물이라 의미로 붙여지는 이름이다. 이름으로 봤을 때 배를 매는 선창에 모시는 ‘돈지당’의  물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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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레물(생이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산물 설명 팻말을 보면 물 관리에 힘쓰는 모범적인 마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설명문에 쓴 대수층의 한자가 틀려있다. 설명 문구에 있는 대수층(학명 Aquifer)은 일명 땅속 지하에 물을 가둔 지하수 창고로 지하수가 있는 지층을 말한다. 함수층 또는 함수대로 지하수가 형성되어 있는 지하수면을 갖는 지하수로 포화된 투수층을 말한다. 

안내 팻말에는 ‘대수층(大水層)’이라 적고 있으나 ‘대수층(帶水層)’이 맞는 한자로 전문가의 감수를 받았다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있다.

# 고병련(高柄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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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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