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화려한 기대 속 '반쪽' 출발…접근권 '제로(0)'
장애인인권영화제·여성영화제 장소로는 '2% 부족' …엘리베이터·놀이방 시설 필요

▲ 31일 개관한 제주영상미디어센터.'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했다'는 문구가 보인다.

31일 제주영상미디어센터를 들뜬 마음으로 찾았던 이준섭씨(46.제주장애인연맹회장)는 남들이 맘껏 드나들며 각종 시설물을 구경하는 것을 뒤로한 채 1층 몇 곳을 살펴보는데 만족해야 했다. 휠체어 이동과 접근이 너무나 힘이 들었기 때문이다. 

휠체어 장애인인 그가 영상미디어센터에 주목한 이유는 매해 열고 있는 '장애인인권영화제'를 마음놓고 치를 수 있는 안성마춤의 공간으로 여겼기 때문. 디지털 편집실과 영상실, 방송실 등 각종 회의실과 장비가 마련된 이 곳 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는 생각에서다. 

'미디어센터에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

▲ 1층에서 지하 전시실로 가는 길목은 계단으로 막혀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가 무너지는데는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준섭 회장은 "몇개월 동안 리모델링을 했다는데 장애인에 대한 접근권과 이동권이 전혀 보장되지 않았다"며 "행여 기대를 했는데 장애인에 대한 인식부족과 '차별'은 여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부푼 마음을 담고 온 단체는 이들만이 아니다. 해마다 여성영화제를 비롯해 각종 영상 관련 행사를 열고 여성단체와 영상단체에서도 실망이 큰 것은 마찬가지.

몇몇 여성단체 실무자들이 두루 시설을 둘러봤지만 최근 필수시설로 여기는 '놀이방' 역시 찾을 수 없었다.

한 여성단체 관계자는 "어린이를 위한 '놀이방' 시설은 아빠와 엄마 모두에서 필요한 시설"이라며 "이는 모든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있어 기본적인 시설"이라고 말했다.

5억원 리모델링 비용 '무색'

이날 장애인단체와 함께 제주영상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해 공식 개관한 제주영상미디어센터의 편의시설을 둘러본 결과 '반쪽 출발'이라는 꼬리표를 부칠 수 밖에 없었다.

 5억원이라는 리모델링 비용을 들였지만 약자를 위한 편의시설에는 인색하다는 평가를 받은 셈이다.

이날 개관식에 참석한 20~30여명의 귀한(?) '초대 인사' 가운데 누구 하나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는 이는 없없다.

이날 제주부시장을 비롯해 문화예술과장, 제주시 문화관광국장 등도 초대석 한쪽을 채웠지만 약자의 이동시설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지는 않았다.

▲ 이날 많은 귀빈들이 개관식에 참석했지만 장애인  편의시설에 눈을 돌린 이는 없었다.

150석 규모 상영관...단 한 석의 장애인자리 없어

▲ 이날 기자와 함께 편의시설을 둘러본 이준섭 (사)제주장애인연맹 회장
150석의 규모를 자랑하는 상영관(예술극장)에는 장애인석이 단 한석도 없는데가 2층 공간으로 가기위한 외부계단은 물론 새롭게 만든 내부계단 역시 장애인은 올라갈 수가 없다.

(사)제주영상위원회가 마음먹고 노약자 등을 위한 편의시설로 만든 내부 철제계단 역시 경사가 너무 가파르면서 노인 및 장애인의 접근이 불가능, 사실상 빛이 바랬다.

이 회장은 "가장 중요한 상영관에 적어도 휠체어 전용석은 있어야 한다"며 "경사로가 있는 주변 좌석(10석)을 장애인석으로 전환하는 등 일련의 시설 개선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장애인의 경우 일반인 보다 생리적요구를 쉽게 참지 못하는 경향이 많다"며 "영화를 보는 중에라도 급한 볼 일을 볼 수 있도록  접근성과 동선까지 고려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전동휠체어의 경우에는 움직임까지 고려해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며 "소수 약자를 배려해야 하는 영상미디어센터가 이렇게 허술하게 편의시설을 마련하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고 꼬집었다.

실제 국비사업으로 진행되는 전국 영상미디어센터 사업 특성상 장애인의 접근권을 보장하는 편의시설은 필수다. 이번에 제주영상미디어센터를 개관하기 위해 많은 자문을 구했던 서울 미디어액트인 경우에도 수차례 '장애인 접근권'에 대해 강조하기도 했다.

개관에 맞춰 미디어센터를 둘러보러 왔다는 주부 오 모씨(35.제주시)는 "마음껏 어린이들을 맡기고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실습도 할 수 있는 그런 장소였으면 한다"며 "좀 더 편의시설에 신경을 써 줬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 노약자를 위한 철제 계단은 너무 가파르고 사방이 훤이 보여 장애인 및 여성들이 이용하기가 힘들 수 밖에 없다.

2층 접근로 심각...외부 또는 내부에 엘리베이터 시설해야

특히 사무실과 운영위원장실을 비롯해 차후 미디어프로그램의 수강 장소인 강의실과 회의실이 몰려 있는 2층에 대한 접근 역시 휠체어 장애인에겐 거의 불가능한 상태여서 별도로 리프트 및 엘리베이터 등의 시설이 시급하다.

▲ 고창균 (사)제주영상위원회 사무국장이 현재 여건에서 엘리베이터 시설이 가능한 곳을 설명하고 있다.
(사)한국장애인연맹 제주DPI 이영석 사무국장은 "건물 전체가 장애인의 이동권과 접근권을 배려한 흔적이 전혀 없다"며 "1층의 몇몇 디지털편집실 조차 휠체어가 드나들기 위해 약간의 문턱을 넘어야 할 정도인데 다른 것은 말해 무엇하겠느냐"고 말했다.

장애인단체는 "이러한 시설에 대한 불편과 불만이 결국 별도의 장애인 전문 영상센터 건립을 요구하는 쪽으로 갈 수 밖에 더 있느냐"며 "선출직 단체장 시대에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이러한 문제는 결국 중복 예산투자와 분산이라는 병폐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어린이 놀이방'은 편의시설의 '기본'

이날 여성단체들도 차후 접근성과 시설을 고려할 때 각종 영화제와 영상미디어 관련 행사들이 주로 이 곳에서 열릴 수 밖에 없다"며 "적어도 기본 편의시설로 자리잡은 놀이방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영화제가 주로 열리는 국립제주박물관에서는 상영회관 아래 1층 다용도실을 '놀이방'을 활용하고 있다.

고창균 제주영상위원회 사무국장은 "건물이 신축이었다면 장애인 등을 위해 충분한 고려가 이뤄졌을 것"이라며 "하지만 10년전에 지어진 건물인데다 쓰임새와 용도가 매우 다르게 지어진 상태여서 리모델링을 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이어 고 국장은 "장애인의 편의를 고려해 개선한다고 했지만 예산상 문제로 인해 어려움이 많았다"며 "장애인 단체가 지적한 문제는 반드시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건물내 편의시설을 둘러본 후 이 회장과 만난 고 국장은 '영상미디어센터 출입구 쪽 공간에 장애인은 물론 일반인의 접근을 도울 수 있는 엘리베이터 설치가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 경사로가 시설된 상영관 중앙석 부분. 적어도 상영관 만큼은 제주문예회관 처럼 4~5석 가량의 '휠체어석'이 필요하다.

▲ 2층 사무실로 가는 계단은 보기에 화려하지만 실용성은 '제로'에 가깝다.

▲ 기자와 취재를 끝낸 후 이준섭 회장이 고창균 사무국장과 만나 대화를 나누면 서로의 공감대를 넓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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