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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에서 당근 농사를 짓는 조태옥(65)씨가 바싹 마른 당근 밭을 바라보고 있다. ⓒ제주의소리

[르포] 계속된 폭염에 땅 '쩍쩍'...“며칠 내 비소식 없으면 올해 농사 끝” 한숨만 푹푹

“땅 마른 것 좀 보세요. 조금이라도 비가 내렸으면 좋으련만...”

제주 전역을 덮친 무더위가 밤낮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 22일 제주 일부 지역에 소낙비가 내렸지만 더위를 식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폭염 경보도 어느덧 보름째, 타오르는 폭염이 계속될수록 농민들의 속도 타들어 가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당근 파종을 앞둔 농민들은 파종시기를 늦추면서 비 소식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25일 찾은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의 한 당근 밭. 조태옥(65) 씨는 새벽 5시부터 마른 밭에 물을 주고 있었다. 그는 구슬땀을 닦으며 그늘 없는 밭에 주저앉았다. 푹푹 찌는 더위 앞에서 조씨는 비 얘기 먼저 꺼냈다. 

“이대로 비가 계속 안 내리면 올해 농사는 그냥 망해요. 이런 가뭄은 처음이네요”

▲ 조씨가 새벽부터 나와 당근 밭에 물을 뿌렸지만 땅은 금세 말라 갈라진 곳이 생겼다. ⓒ제주의소리
조 씨의 당근 밭은 뜨거운 열기에 아지랑이가 일렁이고 있었다. 다른 농가보다 일찍 파종을 했지만 강한 일사 때문에 땅이 금세 말라 한시도 밭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농가들이 파종을 머뭇거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비 소식이 없어서다.

“당근 밭은 돌 위에 모래가 있어서 다른 밭보다 더 잘 가물어요. 물을 주다 안 주다 하면 씨가 발아를 못해요”

일대 당근 밭은 암반 위에 흙과 모래가 섞여 기온에 큰 영향을 받는다. 꾸준히 물을 주지 않으면 땅이 금세 말라버린다. 게다가 강한 일사로 지표면의 온도가 올라 파종했던 씨들도 녹거나 익어버린다. 파종한 밭은 ‘빈 밭’이 되기 일쑤. 

같은 날 구좌읍 덕천리의 콩 농가도 ‘단비’를 기다리기는 매한가지였다. 김대규(71) 씨는 노랗게 변색된 콩밭을 보면서 한숨부터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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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 구좌읍 덕천리에서 콩 농사를 짓는 김대규(71) 할아버지가 갈라진 콩밭을 보면서 한숨을 쉬고 있다. ⓒ제주의소리
“저기 갈라진 땅을 보세요. 콩 농사하는 사람들이 울상이에요”

올해 장마기간은 21일로 평년보다 11일 짧았다. 비가 파종시기에만 집중해서 내린 탓에 씨앗은 전부 썩어버렸다. 다시 씨를 뿌렸지만 이번에는 가뭄이 발목을 잡았다. 얼핏보기에 콩밭은 푸릇푸릇 했지만 손으로 콩잎을 거둬보면 노랗게 마른 잎들이 바삭거리며 땅에 떨어졌다.

그는 “그래도 작년에는 중간중간 비가 내려 농사에 문제가 없었는데 지금은 한시에 집중해서 비가 내렸다”며 “일주일 내로 비가 내리지 않으면 콩 농사는 끝났다고 봐야한다”고 말했다.

농정당국의 지원에도 김 씨를 비롯한 농가들은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있다. 소방차, 레미콘차, 물차 등을 동원한다고 해도 드넓은 마른 땅을 적시기엔 한계가 있다. 현재 구좌읍에는 10톤 가량의 물을 담을 수 있는 대형 물백이 16개가 있지만 목마른 농가들에게는 턱없이 모자라다. 결국 해결책은 단비 뿐이다. 농가들이 하늘만 쳐다보는 이유다. 

▲ 보름동안 지속된 폭염에 김대규씨의 콩밭은 쩍쩍 갈라졌다.
제주도농업기술원에 따르면 25일 구좌읍 동복리의 가뭄판단지수(Kpa)는 236Kpa. 수치가 100Kpa를 넘으면 초기가뭄, 500Kpa면 가뭄으로 판단한다. 

제주도는 연일 이어지는 폭염과 가뭄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다. 

관계자는 “아직까지 가뭄에 대한 민원은 없지만, 농가 피해에 대비하고 있다. 물 공급을 위해 소방차량, 레미콘차, 물차 등을 임차하는 동시에 물백도 대여할 것”이라며 “유관기관과도 협조 체제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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