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어민들 "100km 해상 표류 불가능 아냐"...슬리퍼 이동경로도 재조사 예정

1.jpg
▲ 지난 1일 오전 10시 50분쯤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도에서 제주 여행 중 실종된 여성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돼 해경이 수습에 나섰다. 가파도 해상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모습 /사진제공=서귀포해경 ⓒ 제주의소리
실종된 뒤 일주일만에 숨진채 발견된 30대 여성 관광객에 대한 시신 부검 결과, 단순 실족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시신이 100km 이상 떨어진 지점에서 발견된 점, 멀찌기 떨어져 있던 슬리퍼 두 쪽 등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2일 제주지방경찰청 등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제주시 구좌읍 세화포구에서 가족캠핑 중 실종됐다가 7일 후인 지난 1일 숨진 채 발견된 최모(38·여·경기도 안산)씨의 부검 결과, 사인은 익사인 것으로 추정됐다.

결박이나 외력에 의한 상처 등 특별한 타살 흔적을 찾을 수 없었고, 성범죄 흔적도, 약물 복용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최씨의 폐의 형태도 일반적인 익사자의 것과 유사했다는 결과다. 사망 시점도 위 안의 음식물 상태로 볼 때 최씨의 실종 시점(7일 전)과 비슷한 것으로 조사됐다.

정확한 사인은 조직검사가 이뤄진 후에 확정할 수 있지만, 여러 정황상 최씨가 세화포구 내에서 실족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유족들 역시 부검 결과에 수긍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저히 낮은 확률이지만, 시신에 남아있는 플랑크톤 등과 세화포구의 플랑크톤 등을 대조해보면 사망지점도 특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할 계획이다.

2.jpg
▲ 지난 1일 오전 10시 50분쯤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도 해상에서 제주 여행 중 실종된 여성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돼 해경이 수습에 나섰다. /사진제공=서귀포해경 ⓒ 제주의소리
◇ 일주일만에 100km 이동 가능? 지역 어민들 "해류 타면 가능"

다만, 타살 흔적이 없다고 해도 의혹이 온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제주 북동쪽인 제주시 구좌읍 세화포구에서 실종된 시신이 제주섬 정반대에 위치한 국토최남단 마라도 인근의 가파도 해상에서 발견된 점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두 지점은 직선거리로 70km 떨어져있으며, 해안선을 따라 곡선으로 치면 서쪽으로도, 동쪽으로도 약 100km의 거리가 있다. 이 거리를 일주일에 이동했다는 점도 의구심이 남는다.

전문가들도 정상적인 조류의 흐름으로는 세화포구의 시신이 가파도 외해까지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펴고 있다. 제주를 지나는 평균 해류는 일반적으로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대한해협을 향해 흐르게 돼 있는데, 이번 경우는 서에서 동으로 가는 흐름이라는 주장이다.

반면, 시신 부검 결과와 맞물려 경찰은 새로운 가정을 제시했다. 사건 현장 인근의 제주시 동부지역 어민들을 대상으로 한 면접 조사에서 시신이 서귀포까지 넘어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지역 물길에 대해 가장 잘 알 수 있는 분들은 현지에서 어로작업을 하는 분들인데, 이 분들을 대상으로 탐문을 해 본 결과, 썰물 시 동쪽 또는 남쪽으로 해류가 흐르고 있다는 설명을 전해들었다"고 했다. 또 "우도쪽으로 가면 일본 방향인 북쪽으로 흐르는 해류가 있고, 서귀포 방향인 남쪽으로 가는 해류가 있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시신이 북동풍을 맞았다면 우도를 경유해 서귀포해안까지 충분히 넘어갈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역으로 성산에서 제주도 서쪽인 한림 앞바다로 가는 해류도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실제로 성산포에서 좌초된 선박의 흔적이 한림읍 월령리에서 발견된 전례가 있어, 시신이 한림까지 흘러갔다고 가정하면 차귀도를 돌아 가파도까지 갈 수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또 7월 25일부터 29일까지 제12호 태풍 '종다리'가 일본을 관통하면서 제주 동쪽 해안으로 넘어왔는데, 당시 풍랑예비특보가 발효된 이 지역 해상의 풍속이나 파고가 평상시 2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는 점도 주요 변수 중 하나다.

3.jpg
▲ 실종된 최모씨가 머물던 캠핑카와 실종 이후 발견된 휴대폰, 소지품 등의 위치. <사진=제주지방경찰청>
◇ 멀찌기 떨어진 슬리퍼 두 쪽...경찰, 슬리퍼 이동경로 실험

한 쪽은 포구 안에, 한 쪽은 2.7km 동쪽으로 떨어진 바닷가에서 발견된 슬리퍼도 의문이 남는 대목이다.

최씨가 실종 당시 슬리퍼를 타이트하게 신었는지, 헐렁하게 신었는지 등의 작은 변수로도 위치를 가정하기가 어려워진다. 다만, 경찰은 시신과 슬리퍼의 이동경로는 다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바다 표층부와 심층부의 해류가 다른데, 둥둥 떠다니며 표층부로 이동했을 슬리퍼가 동쪽으로 이동해도 심층부로 가라앉은 사체는 정반대 방향으로 이동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 같은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이르면 3일, 늦어도 이번 주 중으로 비슷한 형태의 실험용 슬리퍼를 바다에 띄워 이동경로를 조사한다는 계획이다. 실질적으로 슬리퍼가 포구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일반적으로 바닷가에서 사라진 시신의 경우 옷가지 등이 훼손되는 경우가 많은데, 최씨의 경우 옷가지가 온전하게 보존돼 있다는 점도 의혹이 제기됐다.

경찰은 최씨가 입고 있었던 면 소재 상하의가 물에 젖었을 때 달라붙는 현상을 보이고, 포구 내항쪽에 바위가 없어 훼손되지 않았을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또 발견 당시에는 가스로 팽창된 최씨의 시신에 옷이 달라 붙어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4.jpg
▲ 세화항 포구 내에서 발견된 최모씨의 슬리퍼. <사진=제주해양경찰서>
◇ 낮은 수심? 선주-낚시꾼 용의자? "사실과 달라"

일부 언론에서 실종 당시 세화포구 일대 바다의 수심이 성인 허리 높이에 불과하다고 보도된 것은 사실과 다르다.

포구 바깥의 일부 지역은 수심이 낮은 곳이 있지만, 최씨가 실족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포구 내 수심은 썰물 때 2m, 밀물 때 3.5m에 이른다. 지난달 25일은 오후 9시 17분이 만조였고, 썰물이 빠져나가는 상황이었다. 

최초 휴대폰을 습득한 선주가 의심스럽지 않냐는 의견도 사실무근이다. 인근 낚시배는 GPS를 통해 입출항 기록이 남아있는데, 해당 선주가 항구로 복귀한 시간은 다음날 오전 2시 32분이었고, 휴대폰을 습득한 시간은 오전 3시께였다. 당시 선박에는 선주의 부인도 동승하고 있었다.

GPS 분석 결과 최씨가 실종된 것으로 추정되는 25일 오후 11시38분부터 다음날인 26일 0시 10분까지는 입출항 한 선박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실종 시점과 비슷한 시간대에 항구에 들어섰던 코란도 차주도 인근 블랙박스를 통해 동선을 파악한 결과 애초에 용의선상에 없었다. 최씨의 남편도 실종 직후와 다음날까지 보인 행적, 최씨에게 남긴 문자기록, 차량 블랙박스 기록 등을 종합해보면 혐의점을 찾을 수 없었다.

동기 측면에서 상당히 희박하지만, 누군가가 최씨의 등을 떠밀었을 가능성이 남아있기는 하다.

경찰 관계자는 "(등을 떠밀었을)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 경우 현장에 출입했던 차량이나 출입자들을 중심으로 확인이 필요한 과정"이라며 "그 부분에 대해서도 면밀히 수사를 진행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5.jpg
▲ 세화항 포구 내에서 실종자에 대한 수중 수색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제주해양경찰서>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