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104) 조남주 저, 《82년생 김지영》 Water Proof Book(2018년), 민음사(초판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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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남주 저, 《82년생 김지영》 Water Proof Book(2018년), 민음사(초판 2016년). 출처=알라딘 홈페이지.

올 여름은 그야말로 삼라만상이 무더위에 허덕였다. 말 그대로 ‘가마솥더위’, ‘찜통더위’, ‘불볕더위’가 이 지상을 점령했다. 제주도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름철 인기 피서지로 각광받던 해수욕장도 연일 계속되는 폭염 탓에 피서객들의 피난처가 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쯤 하면 겨울엔 추위를 피해, 여름엔 더위를 피해 제주를 찾는다는 말은 앞으로 옛말이 될 것이다. 사시사철 제주에서의 ‘바캉스 문화콘텐츠’가 절실해지는 이유다.

이를 대변이라도 하듯 최근 어느 신문 기사 제목이 인상적이다. ‘꽉 찬 호캉스, 텅 빈 해수욕장’이라 하여 폭염이 여름휴가 풍속도(트렌드)를 바꿔놓았다는 보도다. 이른바 ‘호캉스’라 하여, 계속되는 폭염에 멀리 떠나지 않고 가까운 도심 ‘호텔에서 바캉스’를 보내는 이들의 등장이다.

이외에도 몰캉스(쇼핑몰+바캉스), 백캉스(백화점+바캉스), 커피서(커피숍+피서) 등의 신조어도 합세했다. 또 시원한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휴가를 보내는 북캉스(book+바캉스)도 빼뜨릴 수 없다. 그만큼 올해는 도심 피서족이 증가한 모양이다. 한마디로, 휴가철 무더위에 고생하며 멀리 바캉스를 가는 대신, 약간의 여유나 사치로 바캉스 분위기를 즐기는 현상이 올 여름 유독 도드라졌나 보다. 

게다다 앞서 말한 ‘호캉스’ 족들을 위해서는 최근 인피티니풀(Infinity Pool: 바다와 연결된 듯 한 착시를 일으키는 수영장)을 갖춘 호텔이 인기가 많다고 한다. 거기다 ‘호캉스’, ‘북캉스’를 위한 책도 출시되어 올 여름 각광을 받았다. 

최근 민음사에서는 ‘미네랄 페이퍼’를 재질로 해서 만든 방수책 ‘워터프루프북(Water Proof Book)’ 4종을 출시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 출시된 본격적인 방수책이라 한다. 이 책은 일반적인 종이와 달리 습기에 강하고 물에 젖더라도 나중에 원상복귀가 가능하다. 

과연 그럴까? 하는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워터프루프북’ 4종 중 내가 최근에 구입한 것이 바로 조남주의《82년생 김지영》이다. 그것도 몇 주 전 우도에 갔다가 그곳 동네책방에서 주인의 소개로 알게 되어 샀다. 내가 아는 제주도 몇몇 동네책방은 규모는 작지만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테마로 넘치는 책들이 있어 내겐 참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는 곳이다. 우도 책방도 그 중 한 곳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번에 소개할 책 조남주의《82년생 김지영》은 최신 트랜드인 ‘방수책’이란 인연으로 만난 소설이다. 시나 소설 같은 경우, 평소 나는 좋아하는 작가 위주로 골라 읽는 편인데, 이번 독서는 그 프로세스가 다르다. 고백하건데, ‘방수책’ 성능 테스트 겸 물 속에서 맘껏 책을 적시며 읽는데서 오는 새로운 경험이 이 책에 대한 나의 관심사였다. 방수책을 들고 풀장엔 못 갔지만 실제 동네 목욕탕에 들고 가서 탕 속 아줌마들의 시선을 끌며 ‘독서’가 아니라 그야말로 방수성능 테스트를 했다. 이 광경에 모두들 신기해하면서도 글씨가 안 읽힌다, 목욕탕에선 목욕에 집중하라 등등의 여러 의견을 듣기도 했다. 

서두가 길었지만 올 여름 이런 인연으로 조남주의《82년생 김지영》을 접했다. 2016년 출간 이래 한국사회에 젠더 이슈의 바람을 일으킨 소설이다. 최근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故 노회찬 의원이 작년 문재인 대통령과 회동 때 이 책을 대통령 내외에게 선물하여 화제가 되었다는 사실도 이번에 알았다. 그러고 보면 2018년 3월 8일 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당시 노회찬 의원이 여성들에게 보낸 축하편지 내용도 새삼 눈길을 끈다. 

“축하와 다짐, 반성의 마음을 담아 편지를 보냅니다. 권력의 힘으로 강제된 성적 억압과 착취가 침묵과 굴종의 세월을 헤치고 터져 나오는 현실을 보며 정치인으로서, 한 여성의 아들이자 또 다른 여성의 동반자로서 부끄러운 마음을 감추기 어렵습니다.” 
- 故 노회찬 의원

그의 생애에 걸쳐 그가 본 현실은 ‘82년생 김지영’이 겪는 부조리한 현실과도 멀지 않았으리라.

82년생 김지영은 현재 30대 중반으로 저출산사회의 대표격이다. 그런 탓일까? 한국은 당시 남녀 출생 성비 불균형이 매우 심각한 나라였다. 

“김지영 씨가 태어났던 1982년에는 여아 100명당 106.8명의 남아가 태어났는데, 남아의 비율이 점점 높아져 1990년에는 116.5명이 되었다. (중략) 이미 남학생이 많았고, 앞으로는 더 많아질게 뻔 한데 남학생이 입학할 수 있는 학교는 부족했다. 남녀공학에서는 남자 반을 여자 반보다 두 배 가까이 두었지만 같은 학교 내에서 성비가 너무 기울어지는 것도 문제였고, 학생들이 가까운 학교를 두고 먼 여중, 남중에 배정받아 장거리 통학을 하는 것도 합리적이지 않았다. 김지영 씨가 입학하던 해에 학교는 남녀공학으로 전환되었다.” 
- 《82년생 김지영》1권 32쪽 가운데

김지영 씨가 고등학생이 되면서는 버스, 지하철, 학교, 교회, 학원, 과외에서 남성들의 변태적 행위를 자주 접하면서 남자에 대한 환멸과 두려움을 쌓기도 했다. 김지영을 비롯한 또래 친구들은 그저 자리를 피할 뿐 소리 한 번 제대로 지르지 못했다. 

“아르바이트하는 친구들의 상황은 정말 심각했다. 옷차림이나 근무 태도를 핑계로, 알바비를 담보로 접근해 오는 업주들, 돈을 내면서 상품과 함께 어린 여자를 희롱할 권리도 샀다고 착각하는 손님들이 부지기수였다. 아이들은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남자에 대한 환멸과 두려움을 가슴 깊은 곳에 차곡차곡 쌓아 갔다.” 
- 같은 책 1권 40쪽 가운데

82년생 개띠 세대는 24살 위 띠 동갑 베이비붐 세대인 언니뻘 58년 개띠 세대와 비교하면, 민주화, 세계화, 양성평등을 제도적으로 보장받은 세대다. 하지만 제도적 차별이 사라지고 저출산·고학력 시대가 도래했다고 해서, 성차별적인 요소가 근절된 것은 아니다. 그런 현실에선 성차별적 요소나 태도가 알게 모르게 내면화되어 교묘히 작동한다는 점이다.

또 82년생 김지영 세대는 대학 졸업 후, 취업난에 성차별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직장이 있어야 그나마 괜찮은 상대를 만나 결혼에 성공도 하고, 결혼 후에는 맞벌이부부가 되어 내 집 마련에 힘쓰는 모습들로 대표된다. 결혼 이후 출산과 육아 문제에 직면해서는 특히 여성은 ‘워킹맘’ 또는 ‘경단녀(경력단절여성)’ 양자선택을 강요당하고 대개는 직장을 그만두어 육아를 전담한다.

그러던 어느 날 김지영 씨가 갑자기 빙의과 같은 이상 증세를 보인 것이다. 소설의 시작 대목이다. 김지영 씨는 현재 서른네 살. 슬하에 딸(정지원)을 두고 있다. 시댁 식구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친정 엄마로 빙의해 속말을 내고, 남편(정대현)의 결혼 전 애인으로 빙의해 그를 식겁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남편이 김지영 씨의 정신 상담을 주선하고, 지영 씨는 정기적으로 의사를 찾아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소설은 김지영 씨의 이야기를 들은 담당 의사가 그녀의 인생을 재구성해 기록한 리포트 형식이다. 리포트에 기록된 김지영 씨의 기억은 ‘여성’이라는 젠더적 기준으로 선별된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82년생 김지영’은 ‘육아우울증’과 같은 단어처럼 가정에만 충실했던 어머니 세대의 그늘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이 소설은 ‘자식만’ 바라보면서 위안을 얻었던 어머니세대가 직장생활에 ‘자식까지’ 책임지며 침묵해야만 하는 여동생세대로 변화된 현실을 차갑게 보여준다. 사회가 변하여 ‘나답게’ 사는 것, ‘나다운 것’을 찾으라며 다양성과 개성을 권장하지만, 이 말들은 현재 김지영에겐 공허한 메아리이자 사치일 뿐이다.

《82년생 김지영》이야기가 던지는 화두는 김지영으로 대변되는 ‘그녀’들의 어느 날부터인가 알 수 없는 증상을 어떻게 회복시켜 줄 수 있을까? 이다. 

국가 차원에서는 ‘인구절벽’ 등을 외치며 가임 여성들에게 아이 하나라도 더 낳으라고 권장하고 있지만, 사회는 막상 아이를 낳은 여성들에게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관심사와 재능까지 제한”(같은 책 2권 111쪽) 하는 것도 모자라, 김지영 그녀들에게 ‘맘충(민폐 육아 엄마)’이라 함부로 단정하며 애써 비하하려 든다.

“김지영 씨는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 들고 공원 벤치에 앉았다.(중략) 오랜만에 밖에서 마시는 커피는 맛이 좋았다. (중략) 그때 옆 벤치의 남자 하나가 김지영 씨를 흘끔 보더니 일행에게 뭔가 말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간간이 그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나도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커피나 마시면서 돌아다니고 싶다……맘충 팔자가 상팔자야……한국 여자랑은 결혼 안 하려고……”
- 같은 책 2권 112쪽

디지털정보화 시대 사회공동체는 정보와 지식양은 무한대로 생산·소비하고 있음에 반하여,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공감능력은 여전히 구호에 불과하다. 누군가의 아픔에 어떻게 반응하고 공감하느냐는 곧 국민의 문화수준과 관련이 있다. 한쪽에선 신음하고 아파하는데도 다른 한쪽에선 아예 귀를 막거나 심지어는 조롱하고 혐오로까지 이어진다. 

무엇보다 가상공간인 인터넷 공세를 무시할 수 없다. 타인의 심정 또는 사건의 전말도 모르고 제한된 정보만으로 사건을 단정 짓거나 무책임하게 과장된 기사들이 조직적으로 넘쳐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함께 공유하고 아파하며 해결할 수 있는 장도 인터넷 공간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공감능력을 조직화·제도화하는 노정(路程)에서.

▷고영자(미학자·번역가)

(사) 제주기록문화연구소-하간 대표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 특별연구원
일본 오사카대학 대학원에서 미학(예술학) 전공으로 
석사 및 박사학위 취득.
프랑스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소(EHESS) 연구원 역임.
부산대학교 예술대학 대학원 강사(미학) 역임.

현재, 근·현대 문화매체론, 제주기록·제주미학론. 제주도 ‘형태기록’ 생성 및 변천사 등을 연구하고 있다. 번역서로는 크리스틴 조디스 저 《미얀마 산책》(2008년), 데이비드 네메스 저《제주 땅에 새겨진 신유가사상의 자취》(2012년), 《서양인들이 남긴 제주견문록(1845~1926)》(2013년), 《서양인들이 남긴 제주도 항해·탐사기(1787~1936)》(2014년), 《구한말 佛語·英語 문헌 속 제주도(1893~1913)》(2015년), 데이비드 네메스 저 《新제주순력담》(2016년), 韓東亀 편저 《제주도: 삼다의 통곡사》(2017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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