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57) 남원읍 신흥리 앵고무랑여 산물

남원읍 신흥리는 지형 지세가 여우가 누워 있는 형국으로, 하천을 끼고 있어서 ‘여호(여우의 제주어)내’라고 불렸다. 이후(1902년)에 동네가 번창하라는 뜻으로 신흥리로 개명했다. 이 마을은 산물이 없어 물이 대단히 박하다고 하여 박수물이란 지명이 있듯이, 봉천수를 주로 식수로 사용한데서 뜨뜻미지근한 물을 먹는 마을이라 하여 일명 온천동(溫泉洞)이라고도 했다.

다행히도 이 마을은 해안 변을 끼고 있어 바닷가에는 숨겨진 비경이라 할 수 있는 산물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산물은 태신해안로를 따라 나오는 토산리와 경계지역 바닷가인 앵고무랑여에 있어 앵고무랑여물이라고 한다. 이 지역 주민이 아니면 이곳에 산물이 솟아나는 것을 알기 힘들 정도로 숨은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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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고무랑여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앵고무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지만 산물은 바다 쪽과 그 안쪽(육지쪽)인 두 개의 원형 통으로 되어 있는데, 바다 쪽 통이 크고 솟는 양도 많다. 통의 규모는 선녀가 아무도 몰래 내려와서 목욕하고 갈 정도의 크기로, 흡사 가족탕 규모다. 모양은 바다 쪽 통은 누가 와서 만든 것처럼 둥근 원형이다. 안쪽 통은 바다 쪽 통보다는 통 하부에 자연적으로 물이 모여 둘 수 있는 웅덩이가 형성되어 있다. 웅덩이는 물놀이하기 적당한 모양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산물은 만조 시에는 볼 수가 없으며 간조 때 만날 수 있는데, 여름철 산물 가까이 가면 찬기가 올라오는 것을 느껴질 만큼 강한 기운을 갖고 있다. 빨래터를 만들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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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 쪽 앵고무랑여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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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지 쪽 앵고무랑여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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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터 흔적.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앵고무랑물에서 태신해안로 서쪽으로 300미터 떨어진 바닷가에도 공장암물이라는 산물이 있다. 이 산물이 있는 바닷가는 각가지 기암기석이 많기로 유명한 해안으로, 예전에 공장암물이 있는 이곳에 전분공장이 있었다. 그래서 해안가 빌레 틈에서 담수가 나오는 것을 보고 공장에서 사용하고자 우물 형태로 파서 산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이 산물이 솟아나는 것은 바닷가 끝 용암 빌레(너럭바위의 제주어)에 남근석(남근바위)이 있어서 그 기운으로 암물인 여자물이 나온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이 지역 사람들은 공장에서 사용했다고 해서 ‘공장’과 남근석의 기운으로 여자 물이 나온다는 의미의 ‘암’을 따서 공장암물이라고 부른다. 

이 산물은 간조 시에는 물이 바다로 빠져 나가고, 만조에서 간조로 또는 간조에서 만조로 변할 때 수세가 좋아 많은 양의 물이 솟는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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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장암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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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장암물 남근석.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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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근석이 지키는 공장암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신흥리 해안가 산물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연히 바닷가를 찾는 사람들에게 해안 전경과 함께 산물의 감흥을 느끼게 하는 숨은 명소로 충분하다.

# 고병련(高柄鍊)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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