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83) 소다리, 말다리
  
* 쉐다리: 소다리
* 몰다리: 말다리

소의 다리와 말의 다리는 얼른 보기에는 같아 보일지 모르나 확연히 다르다. 우선 발굽 모양이 다르고 뼈대의 굵기, 길이에서 사뭇 다르다. 이렇듯이 어떤 물건이나 생각의 기준을 삼기 위해 제시된 것들을 서로 비교했을 때 각각 어긋한 경우가 많다. ‘다르다’와 ‘틀리다’는 실제 말하기에서 혼동되기 쉬운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말을 다르게 하는 데서 의식이 갈려나와 혼란스러울 수가 있어 엄격히 구별해야 한다.

언어구사에서 흔히 범하게 되는 오류가 다름과 틀림의 차이를 모르고 무분별하게 쓰는 것이다. ‘다름’이란 어떤 확실한 정답이 없는 것에 대해서 서로의 차이점이고, ‘틀림’은 확실한 단 한 개의 답이 있을 때 그 답이 아닌 것, 그 모든 것은 틀린 것이다.

“어이 이 사름아, 암만 다리만 놓안 봠주마는, 쉐다리 모르곡 몰다리 몰라게.” 
(어이, 이 사람아, 아무리 다리만 놓고 보고 있지만, 소다리 모르고 말다리 모르는가)

“맞수다. 눈으로 보민 틀린 걸 바로 알아지쿠다”라 한다.
(맞습니다. 눈으로 보면 틀린 것을 바로 알겠습니다) 
정답이 나와 있는 경우다. 그러니 이는 아무래도 ‘틀림’이 될 것이다.

그런데 사람 사이의 대화에서 종종 이런 문장을 구사한다.

“나는 너하고 틀려!”

말의 오용은 판단의 착오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왜냐하면 나와 너는 맞고 틀리고 할 대상이 아니다. 다를 뿐이다. 다름을 인정하는 데서 다양성이 나온다. 이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틀리다고 한다면 싸움(대립과 불신)이 일어날 뿐이다.

좀 더 상세히 말하면, ‘다르다’는 비교되는 두 대상이 같지 아니하다. ‘틀리다’는 셈이나 시작 따위가 그르게 되거나 어긋난 것이다. 1+1=3 같은 경우다.

우리는 대개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생각한다. 착각하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이랑 틀려”, “가난한 사람은 우리랑 틀리게 살아”, “흑인은 피부색이 틀리잖아.” 

이것은 대체로 말실수지만 때로는 자그마치 우리의 사고를 지배한다. 다른 것을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면, ‘차이’는 차별이고 우리의 삶은 회색빛을 잃은 흑색지대가 되고 말 것이다. 흑 아니면 백, 승자 아니면 패자, 정답 아니면 오답. 이것은 곧 누군가에게 무시무시한 폭력이 된다. 다른 것과 틀린 것을 혼동해선 안되는 이유다.

틀리다의 반의어는 맞다, 다르다의 반의어는 같다이다. 피부색, 재산, 성격, 성별이 틀리다 생각하면 그것은 고쳐야 할 오답이 되고, 고쳐 봐야 고작 문제 하나 맞히는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다르다 생각하면, 그것은 이해해야 할 대상이 되고, 그에 대한 관심이 상대에게 전해지면 ‘다름’이 점차 ‘같음’이 돼 간다. 그것은 곧 ‘모두의 만족’이다. 그러므로 다름과 틀림은 엄연히 다르다.

영화 <언터처블:1%의 우정>에서 백인이자 부자이며 장애인인 필립은 흑인이자 빈자이며 비장애인인 드리스가 아주 친한 친구 사이가 된다.

“그는 날 장애인처럼 대하지 않았어. 심지어 내가 손을 움직인다고 착각할 때도 있으니까!” - <언터처블:1%의 우정> 중에서 대사.
필립이 드리스를 좋아한 이유는 드리스가 자신을 장애인처럼 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개 사람들은 장애인을 대할 때 더욱 조심스러워지는데 오히려 그런 행동들이 필립에겐 상처가 됐던 것이다. 드리스는 필립이 그저 자신과 조금 다르다고 생각할 뿐 틀리다고 생각지 않았기에 그처럼 비장애인 대하듯 편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영향을 받아 필립도 흑인이며 빈자인 드리스가 자신과 다른 부분을, 이를테면 담배를 피운다든지 힙합 음악을 듣든 것과 같은 것들을 존중해 줄 수 있게 됐다.

거듭 말하거니와, 장애가 틀림이 아니고 다름인 이유는 AB의 개념은 다름이고, OX 개념은 틀림인 데 있다. 장애는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기보다 일반인들과는 몸이나 정신적으로 조금 다른 존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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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쉐다리, 몰다리 장애는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기보다 일반인들과는 몸이나 정신적으로 조금 다른 존재일 뿐이다. 영화 <언터처블:1%의 우정>의 한 장면. [편집자] 출처=네이버 영화.

수사학적 측면에서는, 무언가에 대해 얘기할 때 틀리다고 말하는 것이 다르다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유리할 수 있다. 틀리다에는 가치판단이 들어가 있으므로 무의식적으로 더욱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덤으로 발음 자체의 날카로움으로 인해 명확하고 힘 있게 발음되고 인지된다. 대개의 경우,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분 안 하는 사람들이 이 이유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는지.

“쉐다리, 몰다리”는 이건 소다리이고 또 이쪽은 말다리임을 가려 말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쉐다리는 쉐다리일 뿐 말다리가 아니다. 따라서 ‘틀림’이지 다름이 아니다. OX 문제 즉 진위(眞僞)를 따지는 것이므로.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모색 속으로>, 시집 <그때의 비 그때의 바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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