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체계 개편 예산으로 정치적 쟁점을 만들지 말라는 언론의 지적이 있다. 버스는 교통복지 측면에서 접근해야 하며,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기에 사업이 안정화될 때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주문도 했다.

맞는 말이다. 그 동안 버스는 도민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받아 왔다. 수익노선 위주의 버스운행, 1차산업과 서비스업 종사자 비중, 읍면지역 배차시간 등 버스는 도민들께 다가갈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버스운송회사의 수익을 담보해줘야 하고, 이로 인해 지난 30년 동안 버스체계 개편을 추진하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모든 문제를 의회가 모를 리 없다. 작년 도지사가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버스체계 개편을 추진했을 때 빠른 시간 내에 성공적으로 안착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버스체계 개편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의회와 충분한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됐기 때문이다. 버스운송회사와의 협약서, 예산 투자심사 등 일련의 과정에서 의회가 배제됐고, 투명성에 의심을 품게 만들었다. 의회가 절차적 문제를 지적한 작년과 달리, 며칠 전 지적은 버스체계 개편 예산을 감당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작년부터 이어지는 지리한 공방이 아닌 새로운 문제이며, 그 배경에는 최근의 세입상황이 매우 안 좋기 때문이다.

제주도 지방세는 2012년 6841억원에서 2016년 1조3761억원으로 101.2% 증가했고, 연평균 19.1% 증가했다. 그러나 올해 8월16일 기준 지방세 수입은 886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0.3% 증가에 그쳤다. 일시납에 따른 세액 경감으로 인기가 많았던 자동차세 증가규모 230억원을 제외하면, 오히려 마이너스 증가를 보인다. 여기에 더해 중앙정부로부터 배분되는 보통교부세도 이번 추경에서 축소됐다. 제주도 재정을 지탱해주던 지방세와 보통교부세, 두 마리 말이 모두 병들었다. 한마디로 좋은 시절이 끝난 것이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민선 6기 첫해인 2014년에 버스체계 개편이 추진되었다고 가정해보자. 2014년부터 매년 5,000억원씩 증가하는 세입 호황기에 의회는 사업이 안정화될 때까지 지켜볼 충분한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세입상황과 함께 집행기관에 대한 신뢰의 문제도 있다. 예산규모에 있어 965억원, 1475억원, 1750억원 등 어떤 수치가 맞는지 모른다. 의회는 버스 관련 예산 전체규모를 이야기하는데, 집행기관은 계속 준공영제 예산만을 이야기한다. 올해 버스운송회사에 분배되는 재정지원액이 965억원인데, 이 수치가 버스체계 개편 예산이라고 주장한다. 버스체계 개편과 함께 기존 공영제 버스 서비스도 강화됐는데, 인건비와 운영비 153억원은 버스체계 개편과 별개라는 주장이다. 환승주차장과 환승센터 개발을 위한 시설비 57억원과 중앙우선차로 예산 125억원은 언론에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의회 추산규모에는 비가림 승차대 5억원, 버스정보 안내기 12억원이 포함됐기 때문에 예산이 부풀려졌다고 생채기를 내고 있다. 승차대 개선과 안내기 확대 구축 예산은 버스체계 개편과 무관한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고, 신뢰가 가지 않는다. 준공영제는 버스체계 개편의 핵심이지만 준공영제만 가지고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버스체계 개편은 준공영제, 우선차로, 환승센터, 공영제 서비스 개선이 모두 포함되고, 이 사업들에 대한 도민 만족도가 높아야 버스체계 개편이 안착될 수 있다.

의회의 지적에 대해 집행기관은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기 때문에 기업의 논리를 바탕으로 도민들의 성원과 협조를 부탁하고 있다. 행정문화에 기업정신을 도입하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하지만 행정이 기업화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기업은 수익을 목적으로 투자하고 과실이 맺힐 때까지 기다린 후 수확한다. 기대수익에 못 미칠 경우, 기업은 파산하거나 대표에게 책임을 묻는다. 버스체계 개편은 교통복지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맞지만, 세입감소기에 사업이 안정화될 때까지 복지와 교육 예산을 줄일 수 없고, 더구나 파산할 수 없으며, 임기를 갖고 있는 도지사에게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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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석 의장. ⓒ제주의소리
재정을 긴축해야 하는 현재 상황은 정책우선순위를 더욱 따지게 만든다. 우선순위를 논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얼마만큼의 재정투입이 이뤄져야 하는가를 냉철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이 수치를 가지고 버스체계 개편사업에 대해 여유를 갖고 지켜볼지, 규모를 축소할지, 속도조절을 할지 결정해야 한다. 이것이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어려운 경제 용어를 쓸 필요도 없고, 써서도 안 되는 이유이다. /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장 김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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