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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일 제주 난민 인권을 위함 범도민위원회와 제주인터넷신문기자협회(회장 이승록)가 개최한 '난민 인권 개선을 위한 언론의 역할'간담회. ⓒ제주의소리
난민인권도민위-제주인터넷기자협회, 난민 인권개선 언론역할 간담회..."공존모델 제시해야"

가이드라인 없이 무분별하게 쏟아진 언론보도가 제주에 머물고 있는 예멘 난민들에 대한 혐오 감정을 부추겼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가짜난민'이라는 단어의 태생부터 '국민이냐, 난민이냐'의 선택을 요구하는 극단적인 프레임까지 언론의 자정이 절실하다는 목소리다.

제주지역 39개 단체가 참여한 '제주 난민인권을 위한 범도민위원회'와 제주인터넷신문기자협회(회장 이승록)는 31일 오후 2시 제주도의회 도민의방에서 '난민 인권 개선을 위한 언론의 역할'을 주제로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간담회는 최근 예멘인 난민 사태와 관련해 일부 언론에서 난민 신청자들의 국적과 종교를 범죄와 연결시켜 보도하며 난민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개선방안을 찾기위해 마련됐다. 국내 난민 보도의 실상을 살펴보고 난민 인권 증진의 관점에서 향후 난민 보도의 바람직한 방향을 논의하기 위함이다.

간담회는 고명희  제주 난민 인권을 위한 범도민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의 사회로 김성인 상임공동대표와 변수현 난민네트워크 활동가가 예멘인 난민 현황과 해외 보도사례를 소개했다.

토론자로는 예멘 난민 신청 당사자인 이스마일씨와 이슬 난민인권센터 활동가, 홍창빈 헤드라인제주 기자, 감현주 국가인권위원회 언론담당 사무관이 참석했다.

◇ 김성인 대표 "예멘 난민 '인성' 아닌 '인권'으로 판단해야"

발제에 나선 김성인 대표는 "'국민이냐, 난민이냐' 극단적으로 나누는 것이 아닌 우리 사회 나름대로 공존모델을 만들어가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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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인 제주 난민 인권을 위한 범도민위원회 상임공동대표. ⓒ제주의소리
김 대표는 제주 난민과 관련된 키워드로 '가짜 난민', '집단 소모게임', '짬짜면' 등 세 가지를 들었다. 먼저 그는 "난민에 대해 부정적으로 다루는 뉴스가 쏟아졌고, 어느 순간부터 '가짜난민'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어 "난민을 판단하는 근거는 하나 뿐이다. 이들이 예멘으로 돌아갔을 때 박해의 위험성이 있는지, 생명의 위협이 있는지에 대해 판단을 해야 한다"며 "그럼에도 지금의 언론은 이들을 '인권'이 아닌 '인성'으로 판단하려 하고 있다"고 했다. 개인 인성의 문제와 법적으로 누릴 수 있는 권리는 별개라는 주장이다.

또 "현재 난민을 향한 혐오는 '소모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하나씩 손가락을 접게 하는데, 첫번째 대상으로 찍은게 난민이어서 모두가 '난민 접어'를 외치는 느낌"이라며 "그 다음은 이주노동자, 무슬림, 성소수자, 여성이 될 것이다. 살아남는 사람은 몇몇의 엘리트 뿐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 대표는 "반대하는 분들은 '국민이냐 난민이냐' 선택을 강요한다. 이 상황에서는 저라도 국민을 선택한다"며 "그러나 이 조건 자체가 올바른 조건인지 묻고 싶다. 국민도, 난민도 윈윈 할 수 있는 짬짜면처럼 분명 방법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 우리나라 주거복지 예산이 153조7000억원 정도 되는데, 이중 난민에 대한 예산은 배정한다 해도 8억원 정도다. 국민 대신 난민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난민을 위해 조금 떼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 변수현 활동가 "난민에 대한 부정적 인식, 언론이 확산시켜"

변수현 난민네트워크 활동가는 "언론은 난민 문제와 관련된 사안을 다루면서 상이한 인식과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특히 사회적 소수자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언론은 종종 사회의 문제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주체적인 입장보다는 어떠한 사건의 대상으로서 객체화해 표현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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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수현 난민네트워크 활동가. ⓒ제주의소리
변 활동가는 "국내 언론은 난민의 날을 맞아 예멘사태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는데, 방송 보도 대부분이 예멘 내전 발생 배경과 본국으로 돌아가게 될 경우의 위험성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지 않고, '이슬람 난민 점령', '난민 쇼크', '뜨거운 감자' 등의 자극적인 언어를 사용해 찬반 논쟁으로 갈등 국면을 집중 보도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지난 5월부터 8월 9일까지 석 달간 전국 신문과 방송사, 지역신문, 타블로이드, 인터넷신문 등 총 36개의 언론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모니터링 결과를 발표했다. 분석 결과 총 172건의 인권보도준칙 위반·오보 사례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사건과 관련없는 정보 제공 49건, 출신국·종교·문화에 대한 차별적 요소 47건,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난민의 정의 27건, 사실확인 없이 제공된 정보 14건, 난민신청자 신원노출 9건, 왜곡된 편집 3건, 정정보도 27건 등으로 분류했다.

그는 "예멘 난민사태를 언급하며 이슬람 난민 점령, 난민 폭탄 등 감정적인 단어들을 기사 제목 또는 소제목에 사용하고 있었다"며 "전반적으로 아랍권 문화에 대한 몰이해와 문화 절대주의적 시각이 기사에 반영됐는데, 이는 사실확인 되지 않은 루머성 정보에 더해 난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언론이 확산시키는 효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변 활동가는 "뉴스가 사회현실을 어떻게 묘사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현실을 보는 가치관도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예멘 난민 사태는 앞으로의 난민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정책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며 "사회현실을 파악함에 있어 상반되는 시각이 존재할 경우 최대한 어느 쪽에도 편향되지 않고 동일한 비중으로 사건을 제시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 예멘 난민 신청 당사자 "인도주의적 문제이지 언론 도구 아냐"

토론석에는 예멘 난민 신청 당사자인 A씨가 참석해 한국사회에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A씨는 "모든 사람들이 예멘과 제주도의 상황을 잘 살펴보고 인도주의적 이슈로 다루기를 바란다. 확실한 결론이 나오지 않았을 경우 사건을 조사하고 동정하는 것을 계속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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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멘 난민 신청 당사자로서 토론회에 참석한 A씨. 신변상의 이유로 언론 공개를 조심스러워 했다. ⓒ제주의소리
그는 "4월18일 예멘 난민들이 처음 이 섬에 들어왔지만, 난민들에 대한 첫번째 뉴스는 지난 5월2일 지역 신문에 보도됐다. 그 후 적어도 한 달 이상, 7월14일까지는 예멘 난민 이슈가 언론에서 제기되지 않았다"며 "한 달 동안 한국 언론은 어디에 있었나. 예멘 난민 이슈는 인도주의적 문제이지 언론의 도구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A씨는 "예멘은 인권협약에 서명한 국가다. 수십년 동안 아프리카 국가로부터 100만명 이상의 난민을 받아왔다. 전쟁 전에는 팔레스타인, 이라크, 시리아에서 온 난민들 또한 받아왔고, 누구 앞에서도 문을 닫지 않았다"며 "하지만 세계의 대부분은 전쟁 시작부터 지금까지 예멘의 난민들에게 문을 닫았다. 이 섬이 500명의 난민들에게 개방된 것은 매우 공정했다"고 했다.

특히 예멘 거주 당시 기자로 활동했다는 A씨는 "이 섬에 함께 있는 2명의 기자 출신 예멘인들은 '한국 언론이 우리를 인도주의적 문제로 다뤄야 하며, 우리의 목소리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우리들의 문제를 수용하고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영향을 줘야 한다'고 했다"며 "한국 신문이 예멘 난민들을 어떻게 대우했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이익을 위해 예멘 난민들의 이전 사진을 신문에 기재했다"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A씨는 "한국 국민들이 우리를 위해 해결책을 찾고 또 공정한 결과를 얻기를 바란다. 또 대중들에게 인류가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이라고 알려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 이슬 활동가 "난민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전달해야...가이드라인 필요"

이슬 난민인권센터 활동가는 "난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지금, 언론 역할의 중요성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지금은 난민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전달할 때"라며 센터 자체적으로 설정한 난민보도 가이드라인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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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 난민인권센터 활동가. ⓒ제주의소리
이 활동가는 "난민은 기존의 사회에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으며, 언론은 그 이야기와 사실을 전달할 권리가 있다"며 "그러나 난민은 박해의 위험을 피해 보호를 신청한 사람들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 박해의 위험은 난민이 한국에 도착했다고 해서 종결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다수의 난민신청자는 난민으로 불인정 받고 본국으로의 귀환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 때 타국에서 난민신청을 했다는 사실은 귀환시 본인 뿐만 아니라 본국에 남아있는 가족들에게도 박해의 위험을 가중시키는 일이 될 수 있다"며 "난민법에는 난민 당사자의 인적사항을 공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당사자 동의 없는 주소, 성명, 연령, 용모 등 보도는 금지된다"고 말했다.

또 "난민은 타국에 보호를 요청하는 사람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쉽게 부정적인 시선의 대상이 된다. 한국 내 난민이 이슈로 떠오른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해외의 부정적인 시선은 언론을 통해 그대로 수입됐다"며 "그 시선이 동정이든, 두려움이든, 배척이든, 언론이 부정적인 시선을 쉽게 심화시킬 수 있는 영향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활동가는 '가짜난민', '불법난민'이라는 용어 대신 '난민불인정자'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체류 비자기한을 넘긴 사람에게는 '불법체류자' 대신 '미등록체류자'로 쓸 것을 당부했다.

◇ 홍창빈 기자 "해당 문화권에 대한 이해 필요...기자 공부 필수"

홍창빈 헤드라인제주 기자는 예멘 난민 문제에 대해 편향된 시각으로 보도된 주요 사례를 언급하며 "보도에 있어 1차적인 팩트체크도 중요하지만, 그 일이 왜 발생했는지에 대한 2차적인 취재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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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창빈 헤드라인제주 기자. ⓒ제주의소리
홍 기자는 "예멘 난민 보도에 있어 제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는 취재가 가능하지만, 예멘 현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경우 제주에 온 예멘인들의 진술에 의존하거나 해외언론 보도 또는 특파원 보도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이럴수록 언론에서는 팩트를 정확하게 크로스체크하고, 해당 문화권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위해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도 들어야 한다. 기자 본인의 공부는 필수라고 생각된다"고 했다.

특히 홍 기자는 "언어의 차이에 있어 주의해야 한다. 일부 예멘인들이 영어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간단한 의사소통에 그치는 경우가 상당수이고, 중간에 다른 언어를 거치는 과정 자체가 이미 의사소통에서 의사전달에 일부 훼손이 있을 수 있는 만큼 인터뷰와 취재에 있어서 보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는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이해 부족이 없도록 사전에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며 "준비할 때는 힘들겠지만 노력의 결과는 기사가 보답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 감현주 사무관 "언론보도 피해 줄이기 위한 교육-훈련 필요"

감현주 국가인권위 홍보협력과 사무관은 "예멘 난민 보도 문제는 한국사회의 언론시장, 저널리즘에 총체적인 문제 때문이라고 본다"며 "이런 사태는 포털사이트에 내다 팔리는 기사들이 얼마만큼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지, 클릭을 유도할 수 있는지에 과열돼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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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현주 국가인권위원회 홍보협력과 사무관. ⓒ제주의소리
감 사무관은 "언론은 국민의 인권의식 향상과 인권문화 확산에 있어 큰 역할을 맡고 있다. 사회적 의제를 설정하고 여론을 형성하며 대중적인 이미지를 생산해 그 문제를 보도할 때 파급효과는 극대화된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들의 의식형성과 문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행사하는 언론이 인권관련 보도 시 적용할 기본 준칙 마련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특히 언론인의 무의식 또는 고정관념이나 편견 등에서 비롯된 반인권적이고 차별적인 보도 가능성에 대한 세부지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감 사무관은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확대되는 인권의 범주를 고려하고 이를 보도에 잘 반영하기 위해서는 법률적인 규제보다는 자율적인 실천 강령을 통해 언론인이 능동적으로 실천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특히 감 사무관은 "언론보도로 인해 취재 및 보도대상자들이 2차 피해를 받는 사례를 줄이기 위해서는 언론인들의 인권 감수성이 높아야 하고, 이를 위한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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