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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도민연대가 4일 오전 11시 제주도의회 도민의방에서 제주4.3 군법회의 재심 개시 결정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초점] 4.3생존수형인 재심 개시 결정 의미와 과제...9개월째 표류 4.3특별법 개정 서둘러야
 
70년만에 제주4.3생존수형인에 대한 재심 개시 결정이 내려지면서 법원이 군법회의 부당성을 인정했다. 군법회의가 불법적으로 이뤄졌다는 법적 판단은 사법부 역사상 처음이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제갈창 부장판사)는 양근방(86) 할아버지 등 4.3생존수형인 18명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재심 청구사건에 대해 3일자로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이번 재심사건은 판결문이 없는 사건에 대한 사실상의 첫 재심 청구로 법조계의 관심을 끌었다. 군법재판 사건을 일반 법원에 청구한 특이 사례여서 재심 개시 여부가 쟁점이었다.
 
재심의 역사적 근거는 4.3의 광풍 속에서 국가에 의해 자행된 군법회의다. 군법회의는 1948년부터 1949년까지 제주에서 이뤄진 불법적인 군사재판이다.
 
당시 정부는 1948년 12월에 14차례에 걸친 재판에서 형법 제77조 내란죄를 적용해 사형 38명과 무기징역 67명 등 총 871명을 처벌했다.
 
1949년 6월부터 7월까지는 14차례의 재판을 열어 국방경비법 제32조(적에 대한 구원통신연락 또는 방조)와 제33조(간첩)를 적용해 사형 345명, 무기징역 238명 등 1659명을 희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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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를 제외한 수형인들은 인천과 목포 등 전국 형무소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중 대다수는 한국전쟁과 함께 집단 처형됐다. 재심 청구인은 이중 생존한 수형인 30여명 중 18명이다.
 
소송의 쟁점은 재심 청구의 근거가 되는 공소장과 공판조서, 판결문 등 입증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군법회의 자료는 정부기록보존소가 소장한 수형인 명부가 유일했다.
 
당시 군법회의의 근거가 된 국방경비법 제81조, 83조에는 소송기록의 작성과 보존의무를 명시하고 있지만, 공판조서와 예심조사서는 빠졌고 판결문 역시 작성되지 않았다.
 
형사소송법 제420조(재심이유) 제7호에는 ‘공소의 기초가 된 수사에 관여한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것이 확정판결에 의해 증명된 때’를 재심 사유로 명시했다.
 
재판부는 재심의 근거가 되는 확정 판결의 직접적인 자료가 없었지만 재심 청구인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송돼 옥고를 치르는 과정에서 사법기관의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봤다.
 
군법회의가 법령에 따라 적법하게 구성돼 법령이 정한 절차에 따라 재판이 이뤄진 것인지 여부까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제주도에 군법회의가 설치돼 운영된 사실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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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수형인생존자측 변호인과 제주4.3도민연대가 2018년 6월14일 마지막 청구인진술에서 법원에 제출한 70년전 군법회의 관련 자료.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재판부는 더 나아가 “청구인들은 당시 법원이 발부한 사전 또는 사후 영장 없이 불법적으로 체포‧구금돼 군법회의에 이르게 된 것으로 판단된다”며 군법회의 위법성을 인정했다.
 
청구인 진술을 토대로 옛 형사소송법에 따라 구속영장 발부 후 40일을 초과해 청구인들을 구금했고 조사 과정에서 폭행과 고문 등 가혹행위를 했다는 사실도 확인 시켜줬다.
 
소송을 맡은 임재성 변호사는 “군법회의의 불법성을 행정기관이 아닌 사법부가 인정한데 의미가 있다”며 “심문 과정에서 제시한 새로운 증거들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밝혔다.
 
실제 법률 대리인들은 재판 과정에서 제주4.3 당시 불법감금 된 사람들에게 형 집행을 요구하는 군(軍)문서와 형벌 확정자의 집행 지휘 방법을 지시한 검찰 문서 등을 발굴했다.
 
재심 개시 결정으로 청구인들의 무죄가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검찰측 항고가 없으면 다시 정식 재판을 통해 70년 전 공소사실에 대한 유‧무죄 여부를 다시 판단해야 한다.
 
때문에 군법회의 당시 적법한 재판행위가 없었다는 점을 고려해 판결 자체를 무효화 하거나 특별재심 청구가 가능하도록 제주4.3특별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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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생존 수형인 재심 청구사건의 변호를 맡은 임재성(39) 변호사가 4일 오전 11시 제주도의회 도민의방에서 열린 제주4.3 군법회의 재심 개시 결정 기자회견에서 재판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개별적 소송 대신 법률적 방식으로 4.3생존 수형인은 물론 이미 운명을 달리한 희생자까지 일괄적으로 명예를 회복하고 배‧보상 등으로 피해를 구제하자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오영훈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제주시 을)이 2017년 12월19일 대표 발의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전부개정 법률안’에도 이 내용이 포함돼 있다.
 
개정안 제13조(군사재판의 무효)에는 ‘1948년 12월29일에 작성된 제주도계엄지구 고등군법회의 명령 제20호의 각 군사재판을 무효로 하고 희생자에 대해 보상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는 “군법회의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는 재심을 청구할 길이 없다”며 “결국 군사재판을 무효로 선언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고 이는 입법절차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 변호사는 이와 관련 “군법회의에 대한 위법성이 확인된 이상 입법부도 이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재심 청구를 계기로 4.3특별법 개정안도 공론화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양동윤 제주4.3도민연대 대표는 “4.3특별법 개정은 필요하다. 다만 생존자들에게는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며 “수형인들의 굳은 의지에 대해 도민들의 성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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