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62) 고내리 고내봉마을 산물

고내리는 바다 수심이 깊은 해안선과 대양을 전망할 수 있는 고내봉이 위치한 예부터 바닷가에 형성된 해촌으로 해안절경이 뛰어난 마을이다. 고내리는 고내망이라는 고내봉으로 한라산이 가려 볼 수가 없는 마을이다. ‘고내(高內)’는 높을 ‘고(高)’와 ‘안 내(內)’이므로 ‘고지대(高地帶) 속(內)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탐라시대부터 고내(高內)라 불렀다. 마을 한가운데서는 한라산이 고내봉에 가려져 볼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이 마을에는 서북쪽 낚시터로 유명한 해안가 '고분여'에서 용출되는 명수로 널리 알려진 시니물이 있다. 이 산물은 위쪽 바닷가에서 용출되는 까닭에 들물(밀물) 때는 바닷물의 영향으로 사용할 수 없지만 썰물 때는 수량도 많다. 냉랭함과 신이 깃든 영천(靈泉)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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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조된 시니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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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조 전 예전 시니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 산물은 서측 언덕 바위 구멍에서 용출되어 동쪽으로 흐르는 동류수(東流水)로써 신의 계시에 의하여 발굴되었다 하여 신니(神泥)물(신이물)이라고 한다. 발음대로 써서 시니물이라고 부르며 제를 지낼 때 제수로 사용했다. 제주도 마을포제나 제사 때를 보면 포제에 앞서 주변에 금줄인 새끼줄을 쳐 몸이 상한 사람이나 부정이 탄 사람의 출입을 금하고 관리를 엄격히 했다. 시니물도 마찬가지다. 

산물을 정비하면서 주변을 제주석으로 치장해 버려 바닥은 미끄럽고 옛 정취나 신비로움이 많이 반감되어 있었다. 그런데 입구에 리조트가 들어섰고 이후 몰상식하게 산물이 완전히 현대화식으로 개조됐다.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다. 산물을 정비 말라는 것이 아니다. 물은 그대로 놔두고 입구에 주변에 어울리는 휴게시설 등을 설치할 수는 없었는지 의문이다. 설치된 구조물도 시멘트블록으로 축조하여 파도를 이겨 낼 만큼 견고하지도 않다. 이 산물은 이제 영천이라 하기에는 ‘신은 어디로 갔을까?’라고 의문이 들 정도다.

3. 개조한 시니물 모습.JPG
▲ 개조한 시니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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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 시니물 모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더욱이 산물 입구에 해안도로 개설로 훼손되어 일부 남아 있는 환해장성까지 방치된 채로 있어 아쉬움이 크다. 환해장성 길 건너에는 먼물해안습지가 쉼터로 조성되어 있다. 

여기에 신서란이라는 남방식물이 표류해 와 군락을 이뤘던 곳이다. 신서란은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섬유질이 매우 강하여 짐배나 밧줄로 꼬아 사용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거의 멸실되어 찾아보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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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물해안습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먼물(뭣물)은 이 일대에 늪을 형성하는 산물로 이 역시 들물(밀물) 때면 물이 창창하고 썰물 때는 물이 줄어들어 먼물일대가 펄이 되는 해안습지 형태를 갖는다. 이 물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나타내는 뜻으로, 썰물일 때와 밀물인 때에 따라 산물이 있는 듯 하기도 하고 없는 듯 하여 이름 붙여졌다. 밀물 때만 물이 솟는 특징이다. 이곳에 습지를 복원하면서 산물도 복구하였지만 잘못 복구하여 원래의 위치가 아니다. 

원래 먼물은 남측 길 가장자리에 있는데, 한 동안 방치되다가 옛 원형대로 바람직하게 복원하였다. 잘못 복권된 먼물 서쪽 개인집 마당에도 인력으로 판 오래된 우물이 있기에, 이 일대가 습지가 될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을 갖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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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못 복구된 먼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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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물(원형보전).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시니물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가면 고내리 마을 포구를 만나는데, 포구에서 길 건너편에 우주물이란 산물이 용출된다. 우주물은 포구의 물로 언덕사이 물 ‘우(遇)’와 물노리 칠 ‘주(洲)’를 써서 ‘언덕 사이로 물이 흘러나오는데 이 물에서 물놀이를 친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포구 주위에 인가들이 많았는데 시니물과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주민들은 우주물을 주 식수원이자 생활용수로 사용했다. 이 물은 밀물 때 바닷물이 밀려와 짠물이 되는 특성을 갖고 있으며 부녀자들의 물로 목욕과 빨래터로 이용되었다. 지금은 해안도로를 만들면서 멈추어 버린 시간과 같이 물만 고여 있는 것 같다. 산물 터도 많이 축소되어 수량이 예전만 못하지만 여전히 추억의 빨래터나 애들이 물 놀이터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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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물 표석.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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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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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물 물놀이.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고내리에는 그리 높지 않은 동산이 있다. 이곳은 지형상으로 보아 마치 범이 엎드려 있는 모양이어서 호복(虎伏)오름이라 불렀는데, 와전되어 허벅오름이 되었다고 한다. 어찌되었던 물이 귀했으면 혹은 귀하게 썼으면, 오름이 이름도 ‘허벅’으로 바꾸지 않았까 상상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니물의 자태는 옛 것이 불편해 편함만 선호하는 우리들의 모습일수도 있다. 산물의 위상과 보전에 대해 새롭게 정립해야 할 시기다.

# 고병련(高柄鍊)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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