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풍습 속 숨겨진 금융상식] 프롤로그

나는 지난 5월 KEB하나은행 제주금융센터지점에 발령받아 근무하고 있는 프라이빗뱅커(Private Banker)다. 조금은 생소할 수 있는 직무지만, 상대적으로 복잡한 금융니즈가 있는 자산가들의 자산과 부채를 동시에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관리하는 자산의 범위는 금융자산에 한정하지 않는다.

부동산 뿐만 아니라, 증권사에서 다루는 주식이나 채권도 관리해 드리고, 투자자들이 모여 미국 NASA(미 항공우주국)의 본사 건물을 매입하는 펀드에 투자하기도 한다. 좀 더 자세히는 보유부동산을 어느 정도의 가격에 매수 또는 매각하는 것이 좋을지, 거래시 양도세나 취득세와 같은 세금은 어떻게 납부해야 하는지 등의 업무도 함께 조언해 드린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고객 본인의 사망시 유족간의 재산상속을 진행해 드리는 경우도 있다. 고인의 재산 운영 방침과 주변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주에 거주하고 있는 또는 제주 출신의 VIP손님들과 만나게 되고 그분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생활습관들을 접하고 이를 배우게 된다. 육지와는 다른 풍습을 접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때마다 오랜 시간 속에서 왜 이러한 생활습관들이 생겼는지, 이것들이 제주인들의 생활에 정착되기까지 어떤 의미와 배경이 있었는지 생각해 본다. 분명 제주 풍토와 제주사람의 생활과 생업에 가장 적합한 해결책들이 풍습으로 정착되었을 것이다.

금융도 마찬가지다. 오랜 시간 동안 크고 작은 경험들이 모여서 제도가 되었고, 변화하는 시장환경에서 어떻게 재산을 관리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한 흔적들이 다양한 금융상품에 녹아져 있다. 인생의 중요한 시기마다 적지 않은 금전이 필요한데, 이를 미리미리 준비하는 방법이나 큰 재산이 생겼을 때 이를 관리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제주의 상황을 살펴보면 이러한 현실적인 접근이 절실해 보인다. 예를 들어 제주지역은 최근 5년간 두 자리수가 넘는 토지가격 상승을 경험하고 있다. 물론 평생을 간직해온 땅이 효자(?) 노릇을 하였기에 이를 잘 지켜가는 집안도 있지만, 갑자기 생긴 큰돈을 어떻게 관리할지 몰라 허둥대다가 돈도 잃고 인심도 잃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과거 일산과 분당에서 갑작스런 토지가격 상승을 경험한 후 겪는 잡음들이 이곳 제주에서도 들린다. 땅 때문에 웃는 사람도 있지만 우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인구통계적 변화도 간과할 수 없다. 새로운 일자리 창출은 더디고 1인당 소득수준은 좀처럼 높아지지 않는다. 젊은이들의 결혼시기가 자꾸 늦어지고, 1인가구가 급증하며, 은퇴시기가 짧아지는 등의 상황도 감안해야 한다.

특히 명심해야 할 부분은, 한 번 시행착오를 겪고 나면 이를 회복하는데 걸리는 직, 간접적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에 사전 교육과 체험이 반드시 필요하다.

필자는 <제주의소리>가 할애해준 지면을 통해 제주만의 관혼상제(冠婚喪祭) 풍습을 배우는 입장에서 이들 풍습 속에 녹아들어 있는 선조들의 지혜를 배우고 이에 걸맞는 금융상식을 찾아 소개하려 한다. 예를 들어 제주 소녀가 상군해녀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며 금융을 처음 접하는 사회초년생이 배워야 할 개념들을 살펴볼 것이고, 혼례를 준비하는 신혼부부의 입장에서 내집마련과 창업 시 알아야 할 은행 활용법, 더 나아가 안정적인 노후설계를 돕는 금융상식 등을 이야기 해 보려 한다.

제주의 상가(喪家)에서 흔히 접하는 팥죽이 갖는 의미와 이를 사돈이 준비하는 상부상조의 전통을 보면서 리스크헷지 기능이 강화된 금융상품도 살펴보고,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산담’을 통해 제주 묘자리풍습을 알아보며, 현재의 법제도상 분묘기지권과 토지권의 갈등상황을 재조명해 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금은 모습을 감춘 ‘벌초방학’을 회상하면서 제주의 제사(祭祀)풍습도 살펴보고, 고조부 제사까지 지내는 모습을 통해 상속을 준비하는 방법과 세대간 상속에 대해 알아 볼 것이다. 

9월 제주. 제주에서 나의 첫 여름나기를 지나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다. 7월에는 주로 각종 세제 개편과 관련한 질문이 많았고, 8월에는 해외에서 유학하는 자녀들에게 학비를 송금하려는 학부모들의 방문이 잦았다. 8월말부터는 ‘벌초방학’을 지내러 일본에서 제주를 방문한 재일동포 분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제주를 보다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시작하는 이번 글이, 다양한 제주의 손님들에게 재산증식에 도움이 되고 자산보전을 위한 궁금함을 해결해 드리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손권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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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KEB하나은행 제주금융센터 내 제주인터내셔널PB센터를 이끌고 있는 프라이빗뱅커이다. 미 일리노이대학 경영대학원 MBA 출신으로 세계적인 IT서비스기업인 아이비엠에서 기술영업대표와 컨설턴트를 지냈다. KEB하나은행 입행 후 거액자산가들을 위한 금융상품 개발과 자문업무를 수행했고, 부자들의 투자방법과 라이프스타일을 연구하기 위해 부자보고서를 발간했다. 금융업의 집사라고 불리우는 프라이빗뱅커(Private Banker) 업무는 금융자산 관리 뿐만 아니라 부동산과 기업재무관리까지를 포함한다. 가업승계와 증여를 통해 절세전략을 세우는 등 가문의 재산을 관리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학창시절부터 세계배낭여행과 국제교류를 통해 다양한 문화를 접해 본 여행가이며, 2001년 가을 이후 제주의 매력에 빠져 사진기 하나를 달랑 메고 계절마다 제주를 찾았던 제주 애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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