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85) 까마귀도 칠월칠석날은 안 잊어버린다

* 가나귀  까마귀의 제주방언. 가마귀라고도 함
* 분다 : 버린다의 제주방언 (예: 허던 일 그만두고 가분다 / 하던 일 그만두고 가 버린다)

추석이 며칠 뒤로 다가온다. 귀 세우고 따끔하게 들어야 할 말이다. 
  
민족이 대이동하는 명절이야 잊을까마는 부모 생신, 기일제사 등을 잊어버리는 자식에게 하는 말이다. 다 잊는다고 해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 있다. 살아생전 자기를 낳아 준 어버이의 생신날과 돌아가신 뒤 제삿날을 잊어버린 수는 없다 함이다. 금수가 따로 없다. 사람으로서 기본 도리를 하지 못하면서 사람이라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여기, 까마귀가 등장한 이유가 있다. 까마귀란 놈은 먹을 것을 숨기는 버릇이 있는데, 지나가는 구름을 보면서 숨겨 놓고 못 찾으니, 그처럼 건망증이 심하다고 하는 빗댐이다.

효행은 인륜의 기본으로 소중한 덕목이다. 공자도 ‘부모를 공경하고 마음을 편안히 해드리며, 예로써 제사를 받들 것’을 설했다.
  
부모에 대한 자식의 일방적인 효(孝)가 강조되는 것이 한국적 효의 특징이다. 부모와 자식 간의 은혜를 서로 주고받는 것이라 보면 상호적이지만, 부모의 은혜와 자식의 효는 본질적으로 다르므로 상호 호혜적인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부모의 은혜는 양과 질에서 더욱 높고도 깊다. 또한 한없이 크다. 노래에서도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라 했다. 그래서 한없는 효가 요구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효는 부모가 사망했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인식은 가족적 차원에서 조상으로부터 은혜를 받는다는 관념으로 확대된다. 더 나아가 신하로서 임금으로부터, 제자로서 그 스승으로부터 은혜를 받는다는 차원으로까지 확장되는 것이다.

한국인의  ‘효 구조’를 가장 잘 표현한 책이 있다.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왼쪽 어깨에 아버지를, 오른쪽 어깨에 어머니를 업은 채 수미산(須彌山)을 백 번, 천 번 돌아 가죽이 터져 뼈가 드러나고 뼈가 닳아 골수가 드러나더라도, 외려 부모의 깊은 은혜는 갚을 수가 없다’ 했다. 즉 은혜를 갚을 수 없는 사례를 들어 어머니의 은혜를 설명했다. 보은의 구조가 일방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옛날처럼 ‘시묘(侍墓)’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상을 당해 성분(成墳, 무덤을 이룸)한 다음 그 서쪽에 여막(廬幕)을 짓고 상주가 3년 동안 사는 일이 시묘다. 아마 망 부모에 대한 가장 효성스러운 행위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득한 옛날 일이고, 아주 특별한 경우에 불과한 것이지 일반적으로 보려는 것은 무리다.

거듭 말하거니와, 효는 부모에 대해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보은(報恩)의 정(情)이며, 실천의 덕(德)이다.

효와 더불어 충(忠), 이의 실천이야말로 현대 산업사회에서 나타나기 쉬운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의 병폐를 막아낼 수 있는 정신적 방어기제가 아닌가. 사회를 정화하고 윤기 있게 하는 원동력이라 할 것이다.

부모의 은혜는 질과 양에서 절대적이고 무한하다. 낳아 준 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그 은혜는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더 깊다.’ 따라서 자식의 효도에 대한 의무도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것이다. 
  
공간적으로는 무한하고, 시간적으로는 영원하다.

유학자 이을호(李乙浩)는 효심과 효도를 구분해 말한다. 유교적 측면에서 볼 때, 심청의 효는 불효라고 보았다. 여성은 출가해 시부모를 통해 효도하는 것이 유교적이므로 효심을 가지고 효를 행해도 효도라는 유교적 제도에 합당하지 않으면 ‘불효’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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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마귀도 칠월칠석날은 안 잊어버린다. 돌아가시고 나서야 가슴을 치는 것이 효도하지 못한 한(恨)이 아닌가. 사진은 현직 의사가 본인을 포함, 여러 환자 가족 경험을 통해 부모를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 정리한 책 《부모님 살아계실 적에》(2012). [편집자] 출처=알라딘.
자식이 되고서 부모의 생신을 잊거나 돌아가신 다음 제사를 잊는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이 세상 천지에 그런 몰상식·몰염치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효도는 그 실천이 어렵다. 맛있는 음식 한 번 사드리자, 겨울에 따뜻한 옷 한 벌 사서 몸을 싸 드리자, 모시고 아까운 어디 산수구경이라도 가자 해놓고 벼르는 중에 세상을 하직하고 마는 우리들의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서야 가슴을 치는 것이 효도하지 못한 한(恨)이 아닌가. 하늘 어둡고 몹시 바람 센 날 언덕에 올라 이제도록 한 소절 부르곤 하는 그 노래.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면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추석 명절을 며칠 앞두니 돌아가진 부모님이 속절없이 그립다. 울컥하더니, 그만 나이도 잊고 눈물 그렁그렁하다. 옥상에 올라 산을 등지고 서서 바다를 향해 불러본다. ‘어머니~.’ 놀이 붉게 타오를 뿐, 외마디 대답이 없다. 

산 넘고 물 건너 명절날에 오소서. 목 뽑아 기다리리다. 차례 상 정성껏 심어놓고 제 지내며 큰절 올리리다.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모색 속으로>, 시집 <그때의 비 그때의 바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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