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임의 오름기행〕무덤 속에 솟아 있는 ‘좌보미 오름’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흘러내리는 요즈음은 바야흐로 피서의 계절이다. 여름피서지로 적당한 곳이 어디 있을까? 어떤 이는 한 치의 여유도 없는 바다 속에서 허우적거리기도 하고, 어떤 이는 계곡 속에 발을 담그며 속세를 떠나기도 한다. 이때 여유를 부리며 무더위를 식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 좌보미 오름 정상에 서 있으면 멀리 성산일출봉과 우도까지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 김강임
여름 산에서 흘리는 땀방울

여름 산하면 사람들은 구슬 같은 땀방울을 떠 울릴 것이다. 그러나 정작 여름산 속에 들어가 보면 땀은 흘리지 않는다. 시원한 그늘과 바람이 땀을 닦아주고 바다가 보이기 때문이다.

▲ 오름 기슭 목장에는 송아지 울음 소리가 가득합니다. ⓒ 김강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좌보미 오름으로 가는 길에는 넓은 목장이 펼쳐졌다. 고즈넉한 목장 기슭에는 '움메- 움메-' 울어대는 어린송아지 울음소리가 가득했다. 콘크리트 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좌보미 오름 기슭은 마치 별장 같은 휴식을 안겨다 준다.

 백약이 오픔에도 본 좌보미 오름

   
 
 
좌보미 오름은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산 6번지에 있으며, 표고 342m, 비고 112m, 둘레 : 4,898m, 면적 : 631,356㎡, 저경 : 953m이다.

좌보미오름은 다섯 개의 큰봉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기형적 형태의 커다란 산체를 형성하고 있으며, 오름 동쪽 정상에서 보면 사면 아래쪽으로 3개의 아주 작고 아담한 원형분화구의 흔적을 갖고 있는 둔덕들이 줄지어 있다.

일부 사면을 제외하고는 완만한 기복을 이루면서 풀밭으로 덮여 있고 북사면과 주봉 서쪽사면에는 해송이 조림되어 청미래덩굴 등과 어우러져 있다.    


장맛비 끝에 보인 여름햇빛은 변덕을 부렸다. '후드득- 후드득- '소나기를 뿌린 것이다. 바다에서 만나는 소나기는 피할 길이 없지만, 산에서 만나는 소나기는 나무가 우산이 되어 준다. 삼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하고 있으려니 푸른 초원 위에는 좌보미 오름이 누워있다. 크고 작은 봉우리 5개가 한데 어우러진 좌보미 오름. 좌보미의 형체는 어찌 보면 무덤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어머니의 젖가슴 같았다.

좌보미의 몸통 속으로 들어가다.

▲ 오름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는 해송이 우거져 있습니다. ⓒ 김강임
5개의 봉우리 중에서도 가장 큰 좌보미로 올라가는 길은 해송이 우거졌다. 소나무 사이 길은 겨우 한사람 정도가 올라갈 수 정도의 등산로, 주변에 피어있는 여름 야생화는 눈을 즐겁게 만든다.

▲ 오름 정상에는 야생화가 지천을 이루고 있습니다. ⓒ 김강임
조금은 가파른 오름길에서 구슬땀이 흘러내렸다. 여름 산에 오르며 흘러내리는 땀의 의미는 바로 쾌락이다. 산에 오르는 자는 땀을 흐르지 않고는 그 맛을 알 수 없기 때문이리라.

▲ 꽃방석 위에는 개구리가 단잠을 자고 있습니다. ⓒ 김강임
여름나무 가지 끝에 옹기종기 매달려 있는 솔방울들이 더욱 운치를 자아낸다. 꽃잎위에 앉아있는 개구리는 낮잠을 자는지 꼼짝을 하지 않는다. 꽃방석 위에 앉아 있는 개구리는 얼마나 행복할까? 꽃의 향기에 취했으니 말이다.

좌보미 중턱에서 숨고르기를 하다 뒤를 돌아다 봤다. 장마 끝에 아직 헤어지지 못한 구름들이 오름 기슭을 감싸고 있는 풍경들이 장관이다. 오름은 가까이 할수록 몸통을 볼 수 없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그 표정은 각양각색이다. 더욱이 초원 속에 묻혀있는 좌보미 주변 오름들은 초록 속에 묻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좌보미 오름 정상에서 바라 본 또 다른 좌보미 오름 모습들입니다. ⓒ 김강임
정상에 서 있으면 비행기를 탄 기분

표고 342m의 속살을 벗기기 위해 올라선 좌보미의 정상은 마치 타임머신 속에 있는 기분. 사방이 확 트인 좌보미 정상은 생각보다 높았다. 그렇기 때문에 오름 정상에 서 있으면 마치 비행기를 탄 기분이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 안에서 마치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허공 속에 떠 있는 느낌이랄까, 구름 속에 떠 있는 느낌 같은 것 말이다.

▲ 분화구 안에는 또 다른 무덤이 누워 있습니다. ⓒ 김강임
좌보미 정상에서 보는 알 오름과 경방초소의 봉우리를 끼고 있는 원형분화구는 뚜렷하지는 않지만 흔적이 있었다. 그 분화구를 이루는 예쁜 좌보미 오름과 연계한 언덕. 그리고 오름과 오름 사이에 누워있는 무덤들이 여기저기 산재해있다. 어떤 이는 ‘제주 오름은 무덤이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좌보미 오름에 들어 가 보면 오름 안에 누워있는‘무덤의 무리들이 바로 사람들의 안식처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 가장 큰 좌보미 오름이 마치 병풍을 두른 듯 합니다. ⓒ 김강임
가장 큰 좌보미는 마치 병풍를 두른 듯 4개의 오름을 호위하고 있는 느낌이다. 해송사이 보이는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아스라이 떠 있는 풍경. 좌보미 정상에 서 있으려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오름에서 말하는 여름

▲ 정상에서 본 풍경들은 마치 비행기를 탄 기분입니다. ⓒ 김강임
이맘 때 사람들은 바다에서 여름을 말한다. 하지만 제주 오름 정상에서 말하는 여름은 산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말한다. 산바람 속에 온갖 달콤함이 숨어 있고, 사방의 풍경에 취해 있다 보면 어느새 땀방울이 식어 버리는 묘미. 그래서 산에 올라 본 사람들은 정상을 꿈꾸는 지도 모르겠다. 바다 속에 여름을 던져 버리는 것처럼, 오름 속에 여름을 던져 버려보라. 어느새 무더위는 구름 속에 숨어 버릴 것을.

▲ 자연재해와 마소의 방목으로 토사 유출이 심각합니다. ⓒ 김강임
마소와 송이(scoria) 유출로 오름속살 훼손

알 오름에서 또 다른 좌보미 오름으로 통하는 길은 또 누군가가 걷고 있었다. 원형분화구를 가운데 두고 크고 작은 좌보미의 봉우리를 걷다보면 오름 속에 숨어있는 온갖 것들이 길 위로 마중 나와 있다. 설익은 여름열매와 씨를 키워가는 여름 꽃들. 그러나 장맛비로 알몸을 드러낸 송이(scoria, 화산재 알갱이)의 유출은 앞으로 제주 오름이 훼손 되지나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제주 오름이 사유재산으로 되어 있는 곳이 많기 때문에 오름 주변에 풀을 뜯고 있는 마소들이 오름을 훼손시키기도 하고, 자연재해로 유출되는 토사가 오름을 훼손시키기도 한다. 나이 들면 사람들의 몸이 삭아지는 것처럼, 오름의 속살은 얼마나 장애물을 버텨낼 수 있을지 은근히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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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보미 오름 찾아가는 길 : 제주시-동부관광도로-성읍 2리- 북동쪽 3.5Km 지점-목장(시멘트길)-좌보미오름으로 1시간 정도가 소요되며, 좌보미 오름 5개를 다 돌아보는 데는 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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