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임의 오름기행〕무덤 속에 솟아 있는 ‘좌보미 오름’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흘러내리는 요즈음은 바야흐로 피서의 계절이다. 여름피서지로 적당한 곳이 어디 있을까? 어떤 이는 한 치의 여유도 없는 바다 속에서 허우적거리기도 하고, 어떤 이는 계곡 속에 발을 담그며 속세를 떠나기도 한다. 이때 여유를 부리며 무더위를 식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여름 산하면 사람들은 구슬 같은 땀방울을 떠 울릴 것이다. 그러나 정작 여름산 속에 들어가 보면 땀은 흘리지 않는다. 시원한 그늘과 바람이 땀을 닦아주고 바다가 보이기 때문이다.
백약이 오픔에도 본 좌보미 오름 | ||||||||||||
좌보미오름은 다섯 개의 큰봉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기형적 형태의 커다란 산체를 형성하고 있으며, 오름 동쪽 정상에서 보면 사면 아래쪽으로 3개의 아주 작고 아담한 원형분화구의 흔적을 갖고 있는 둔덕들이 줄지어 있다. 일부 사면을 제외하고는 완만한 기복을 이루면서 풀밭으로 덮여 있고 북사면과 주봉 서쪽사면에는 해송이 조림되어 청미래덩굴 등과 어우러져 있다. |
장맛비 끝에 보인 여름햇빛은 변덕을 부렸다. '후드득- 후드득- '소나기를 뿌린 것이다. 바다에서 만나는 소나기는 피할 길이 없지만, 산에서 만나는 소나기는 나무가 우산이 되어 준다. 삼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하고 있으려니 푸른 초원 위에는 좌보미 오름이 누워있다. 크고 작은 봉우리 5개가 한데 어우러진 좌보미 오름. 좌보미의 형체는 어찌 보면 무덤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어머니의 젖가슴 같았다.
좌보미의 몸통 속으로 들어가다.
좌보미 중턱에서 숨고르기를 하다 뒤를 돌아다 봤다. 장마 끝에 아직 헤어지지 못한 구름들이 오름 기슭을 감싸고 있는 풍경들이 장관이다. 오름은 가까이 할수록 몸통을 볼 수 없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그 표정은 각양각색이다. 더욱이 초원 속에 묻혀있는 좌보미 주변 오름들은 초록 속에 묻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표고 342m의 속살을 벗기기 위해 올라선 좌보미의 정상은 마치 타임머신 속에 있는 기분. 사방이 확 트인 좌보미 정상은 생각보다 높았다. 그렇기 때문에 오름 정상에 서 있으면 마치 비행기를 탄 기분이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 안에서 마치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허공 속에 떠 있는 느낌이랄까, 구름 속에 떠 있는 느낌 같은 것 말이다.
오름에서 말하는 여름
알 오름에서 또 다른 좌보미 오름으로 통하는 길은 또 누군가가 걷고 있었다. 원형분화구를 가운데 두고 크고 작은 좌보미의 봉우리를 걷다보면 오름 속에 숨어있는 온갖 것들이 길 위로 마중 나와 있다. 설익은 여름열매와 씨를 키워가는 여름 꽃들. 그러나 장맛비로 알몸을 드러낸 송이(scoria, 화산재 알갱이)의 유출은 앞으로 제주 오름이 훼손 되지나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제주 오름이 사유재산으로 되어 있는 곳이 많기 때문에 오름 주변에 풀을 뜯고 있는 마소들이 오름을 훼손시키기도 하고, 자연재해로 유출되는 토사가 오름을 훼손시키기도 한다. 나이 들면 사람들의 몸이 삭아지는 것처럼, 오름의 속살은 얼마나 장애물을 버텨낼 수 있을지 은근히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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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보미 오름 찾아가는 길 : 제주시-동부관광도로-성읍 2리- 북동쪽 3.5Km 지점-목장(시멘트길)-좌보미오름으로 1시간 정도가 소요되며, 좌보미 오름 5개를 다 돌아보는 데는 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