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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들과의 대화. 왼쪽에서 부터 신승훈씨와 한금순 박사, 변명서 화가, 노수미 작가, 우호원씨 등이다. 제공=서귀포신문. ⓒ제주의소리

학술서 <제주법정사항일운동>과 동화 <법정사 동이> 북콘서트, 21일 열려

학술서 <제주법정사항일운동>(한금순 저)과 동화 <법정사 동이> 출판을 기념하는 북콘서트가 21일 오후 5시, 서귀포시청 별관 2층 문화강좌실에서 열렸다. <서귀포신문>이 제주법정사항일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기획한 사업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북콘서트는 ▲축하연주 및 낭송 ▲작가와의 대화 ▲한금순 박사의 강연 등 총 3부로 구성됐다. 시민 100여명이 참석해 100주년을 맞는 법정사 항일운동에 대한 높은 관심을 들어냈다.

첫 번째 무대를 장식한 이는 콘트라베이스 연주가 이동희씨다. 이동희 연주가는 대만과 일본 등지에서 활발하게 활동했고 지난 2010년부터 서귀포에서 시민들에게 콘트라베이스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콘트라베이스로 우리 민요 ‘새야 새야’를 편곡해 일본 음악의 선율을 더했다. 짙은 서정성에 역동성을 가미한 연주로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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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종수씨의 낭송과 이동희씨의 콘트라베이스 연주. 제공=서귀포신문. ⓒ제주의소리

연극인 변종수씨가 이동희씨의 연주에 맞춰 동화 <법정사 동이> 8장과 9장을 낭송했다. 변종수씨는 스님과 주민들이 법정사에서 새벽길을 내려와 주재소를 습격하고 불태운 후 일본 기마경찰에 의해 거사가 진압되는 과정을 실감나게 재현했다.

이어 동화 <법정사 동이>의 노수미 작가와 변명선 화가, <제주법정사항일운동>의 저자 한금순 박사 등이 단상에 올랐다. 우호원씨와 신승훈씨 등이 작가들과 얘기를 주고받았다.

한금순 박사는 집필과정에 어려움이 없었었냐는 물음에 대해 “집필 과정에서 기분이 상기된 건 역사적인 기록들을 맞추는 과정인데 증언을 듣고 자료들을 비교하고 분석할 때 퍼즐이 맞아들며 역사적 구성이 완성되어갈 때 짜릿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노수미 작가는 주인공 이름을 왜 동이라고 정했냐는 물음에 “캐릭터는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스스로 오는 거다. 어느 날 동이가 내게로 와서 자신의 얘기를 내게 들려준 것이고 난 그걸 받아적었다”고 말했다

노수미 작가는 서농바치(사냥꾼)를 잠시 동화 속에 등장시킨 이유에 대해서는 “100년 전 제주 중산간의 모습을 동화 속에 담고 싶었다”며 “봄부터 이듬해 봄까지 1년의 흐름 속에 나타나는 제주의 모습을 보여주는 과정 가운데 하나였다”고 답했다.

동일 주제로 책을 집필한 세 명의 작가가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변명선 작가는 “책을 만들기 위해 세 사람이 처음 만났다. 원래 친한 사이도 아닌데 그래도 친한 척 해야 작업이 되는 관계였다”며 “책이 나온 다음에서야 밥도 처음으로 함께 먹었다”고 말해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캐릭터 동이가 머리에 수선을 두른 이유에 대해서 변명선 작가는 “엄마가 멀리 물질을 떠날 때 둘러준 수건을 벗지 못하는 아이, 그 캐릭터가 내게로 온거다”라고 말했다.

동이를 왜 물질 떠난 해녀의 아이로 설정했는지 묻는 물음에 노수미 작가는 “일본의 머구리 잠수선이 1880년대에 제주의 해산물을 착취했고 그래서 제주인의 항일의식이 외지에 비해 강했던 것 등을 담기 위해 물질 떠난 해녀의 아이로 캐릭터를 삼았다”고 답했다.

작가들과의 대회가 끝난 후 한금순 박사의 법정사항일운동에 대한 역사 강연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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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금순 박사의 제주법정사항일운동 역사 강연. 제공=서귀포신문. ⓒ제주의소리

한금순 박사는 “당시 항일운동에 인근 주민 700여명이 참가했는데, 그 가운데 66명의 명단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운동은 급조된 거사가 아니라 미리 총과 격문 등을 준비하고 조직체계를 갖춘 준비된 항쟁이었다”고 말했다.

한 박사는 “법정사 항일운동에 대해 일제는 그 규모를 축소하고 그 목적도 유사종교의 혹세무민 행위로 왜곡했다”고 말한 뒤 국가기록원에 보관된 ‘정구용판결문’을 근거로 “이 운동은 일본인을 추방하고 국권을 회복하기 위한 거사였음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한 박사는 “거사에 참여한 700명 가운데 스님들은 많지 않았고, 대부분 서귀포 주민들이었다”며 “당시 66명이 검거되고 46명에게 형이 구형됐고 주지 김연일에게는 10년 형이 선고됐는데, 3.1운동를 기획한 민족지도자들에게 내려진 최고 구형이 3년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가혹한 처벌이 가해졌다”고 말했다.

한 박사는 “이 사건으로 재판 전에 두 명이 옥사하고 복역중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유족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복역 후에 자식을 낳은 분들이 없었다는 것으로 보아 심한 고문이 자행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한 박사는 “66명 가운데 32명이 유공자로 지정됐다. 나머지 34명도 지정돼야 한다”며 “고난을 불사하고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용기를 냈던 조상들의 뜻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기억해야 역사다”라고 말을 맺었다.

송형록 <서귀포신문> 대표는 “100년 전 뜻 깊은 역사에 대해 책 한 권 없이 묻히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워 학술서와 동화 출간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원래 길이 없던 곳에 사람이 다니면 길이 생긴다”며 “우리가 조명하고 기억할 때 비로소 역사가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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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여명의 시민들이 참석해 제주법정사항일운동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였다. 제공=서귀포신문. ⓒ제주의소리

한편, 원희룡 지사와 이석문 교육감을 대신해 부인들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원 지사의 부인인 강윤형씨는 “잊혀진 역사를 새롭게 조명하는 뜻 깊은 일을 기획해줘서 고맙다”며 “그냥 인사하고 돌아가려고 했는데 콘서트 주제가 너무 좋아서 배우기 위해 끝 까지 남아서 들었다”고 말했다.

이 교육감의 부인인 송여옥씨는 “친구 한금순 박사가 그동안 고생을 많이 하면서도 좋은 책을 내줘서 자랑스럽다”며 “내가 근무하는 초등학교에서 주변 선생님들에게 책을 많이 소개하고 제주교육이 법정사 항일운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열심히 활동하겠다”고 약속했다.

# 이 기사는 서귀포신문과의 기사 업무 제휴에 따라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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