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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 오후 1시 제주제일고등학교 교정에서 열린 '한울탑 청룡상 제막식'. ⓒ제주의소리

제주제일고 31회 동창회 '한울탑 청룡상' 제막...학창시절 미완성 작품 32년만에 완성

좁쌀 여드름이 덕지덕지하던 18살 고교생들의 모습은 어느덧 흰 머리가 희끗희끗한 반 백살 중년이 돼 있었다. 수줍어하던 까까머리 소년의 눈가에 깊게 패인 잔 주름이 흘러간 세월의 흔적을 말해준다. 그래도 여전히 입가에 만연한 미소만은 예전 그 모습 그대로였다.

학창시절, 멋 모르고 시작했던 발걸음이 장장 30여년 만에 빛을 발했다. 십시일반 힘을 보태 '한울탑 청룡상'을 완성시킨 제주제일고등학교 제31회 동창회의 이야기다.

22일 오후 1시 찾은 제주제일고에선 '한울탑 청룡상 제막식' 행사가 한창이었다. 31회 동창들이 재학시절부터 만들어 온 한울탑의 최종형태가 완성되는 순간을 기념하기 위한 자리다.

한울탑 위에는 3m 크기의 웅장한 청동 청룡이 새롭게 얹혀졌다. 청룡은 제주제일고를 상징하는 영물. 학창 시절 세웠던 계획은 탑 위의 청룡상을 올리는 것이 완성작이었지만, 경제적인 문제로 미뤄왔던 터였다. 설익었던 꿈이 마침내 현실로 성사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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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존의 한울탑 위에 새롭게 얹혀진 청룡상.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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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 오후 1시 제주제일고등학교 교정에서 열린 '한울탑 청룡상 제막식'.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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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 오후 1시 제주제일고등학교 교정에서 열린 '한울탑 청룡상 제막식'. ⓒ제주의소리

"30년 전 머릿속으로만 그렸던 작품을 이제야 완성하게 됐습니다. 감회가 새로울 수 밖에 없지요."

당시 미술부장을 맡아 한울탑을 구상했던 김정일(50) 씨는 아직도 생생한 옛 기억을 풀어냈다. 지금은 어엿한 건축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그에게 있어 한울탑은 더욱 남다른 의미였다.

일찌기 제주제일고 교정에는 학생들의 얼굴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조형물 '한울탑'이 세워져 있었다. 두 개의 기둥엔 500여명의 모습이 자리해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며 오랜 기간 학교의 자랑거리가 돼 왔다.

이 한울탑은 제주제일고 제31회 학생들이 1986년 재학 중에 직접 기획하고 모금활동을 벌이며 만든 탑이다. 미술시간과 쉬는 시간을 활용해 찰흙을 빚어 자신의 얼굴 형상을 만들고, 석고상을 뜨고, 콘크리트를 개며 523명의 얼굴을 하나하나 쌓아올렸다.

"학생들이 어려운 사정 속에서도 주머니를 털어가며 작품을 만들었어요. 찰흙비며, 콘크리트비며 1인당 2만1000원씩 걷었는데, 당시만 하더라도 5000원이면 거하게 술상을 차릴 수 있는 수준이었거든요. 하하. 학생들에게 결코 만만한 비용이 아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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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년 전 제주제일고등학교 제31회 학생들에 의해 제작중인 한울탑. <사진=제주제일고 31회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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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년 전 제주제일고등학교 제31회 학생들에 의해 제작중인 한울탑. 사진 속 당시 교련복과 체육복이 이채롭다. <사진=제주제일고 31회 동창회>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찰흙이 굳지 않도록 쉬는 시간이며 점심 시간이며 가리지 않고 물을 줘야했다는 에피소드부터 방학 중에도 학교에 거의 살다시피했다는 이야기까지 관련 '무용담'도 줄줄 쏟아져 나왔다. 

꼬박 32년 간 학교를 지켜왔지만, 한울탑에는 감춰진 비밀이 있었다. 완성된 작품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처음 한울탑을 세울 당시부터 학교의 상징인 청룡상을 위에 세우려고 계획했었거든요. 얼굴탑 2개의 높낮이를 달리한 것도 청룡을 세우려고 했던건데, 기술도 문제였지만 돈이 너무 많이 드는게 가장 큰 문제였지."

얼굴탑 앞 대형 책자 조형물은 31회 동창들의 졸업 20주년이었던 2008년 1차적으로 복원공사를 한 작품이었다. 이 작품 역시 당시 문예부 학생들이 직접 글귀를 적어 내린 의미있는 작품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완성본은 아니었다.

청룡상 제작은 졸업 30주년인 2018년을 맞아 추진됐다. 수 천 만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임에도 사회 각 영역에서 굳건히 자리 잡은 친구들이 힘을 보태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30년 전 쌈짓돈 2만원씩 모았던 그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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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 오후 1시 제주제일고등학교 교정에서 열린 '한울탑 청룡상 제막식'.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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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 오후 1시 제주제일고등학교 교정에서 열린 '한울탑 청룡상 제막식'. ⓒ제주의소리

"우리의 마음 속으로만 간직했던 청룡이 드디어 교정에 올라가게 됐습니다. 당시 학생들의 노력과 땀방울도 다 기억되고 있었지만, 그런 기억들을 안고 30년을 살아 온 친구들이 다시 하나가 됐다는데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재학시절에 느꼈던 우정이나 단결의 감정들이 다시금 느껴지면서 동심으로 돌아간 느낌입니다."

한울탑이 완성되기까지 갖은 노력을 다해 온 이방훈 제주제일고 31회 동창회장은 남다른 소회를 전했다.

당시 미술교사로,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을 지낸 김순관 선생의 역할도 컸다. 제주제일고 동문이기도 한 김 선생은 당시 작품 설계를 진두지휘했음은 물론, 학생들이 사회로 나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끝내 한울탑의 완성을 이뤄냈다.

이날 제막식을 직접 찾아 축사를 전한 이석문 제주도교육감도 "좋은 교사가 지닌 영향력이 오늘의 영광을 있게 했다"며 김순관 선생의 공로를 치켜세웠다.

그들에게 한울탑은 학창시절의 추억이기도 하지만, 자부심이기도 했다.

아들과 함께 행사장을 찾은 강희동(50)씨는 "우리는 죽어 사라져도 이 탑은 학교에 영원히 남지 않겠나. 30년 만에 친구들과의 약속을 지키게 됐다"며 감격해 했다. 안진남(50)씨도 "너무 애착이 큰 작품"이라며 함께 온 막내딸에게 30년 전 자신의 얼굴을 소개하며 연신 웃음을 지었다.

짖궂은 농담을 주고 받으면서도 웃음이 끊이지 않은 친구들. 수십년 간 청운의 꿈을 함께해 온 이들의 10년 후는 또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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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 오후 1시 제주제일고등학교 교정에서 열린 '한울탑 청룡상 제막식'.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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