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주 칼럼] 《레 미제라블》

개구쟁이는 나라에 내려진 은총이며 동시에 질병이다. 치유해야 할 질병이다. 어떻게? 빛으로. 

- 빅토르 위고, 《레 미제라블》

《레 미제라블》은 프랑스 혁명 직후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온갖 비참한 사람들이 용광로처럼 뜨겁게 타오르는 작품입니다. 비참한 사람들 중에서 ‘어린이’를 빼놓을 수 없죠. “개구쟁이는 파리를 표현하고, 파리는 세계를 표현 한다”는 말을 보면서 파리를 여행하고 싶어졌고, “개구쟁이들 세계에서는 기억할 만한 사고가 매우 중요시된다. '뼈가 보일 만큼' 깊은 상처를 입으면 그에 대한 존경이 정점에 달한다.”는 말을 보면서 어릴 적에 많이도 했던 무모했던 장난들이 떠올렸습니다. 문학작품은 시간의 시한폭탄처럼 어릴 적의 시간들을 가슴속에서 폭발시킵니다. 

하지만 두 아이를 키우는 아빠로서 문학작품을 아이 키우는 문제와 연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모든 부모는 ‘은총’을 느끼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은총의 느낌은 어느새 퇴색됩니다. 아이가 완전히 질병으로 느껴질 즈음 입에서는 아이에 대한 안 좋은 말만 가득하고, 아이의 장점을 물으면 선뜻 대답할 수 없는 상태까지 가죠.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은총이자 질병이며 이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변하는 건 부모의 마음뿐이죠. 그렇기에 아이는 오로지 ‘빛’으로만 치유할 수 있습니다. 《레 미제라블》을 읽은 지는 한참 되었지만 빛으로 아이의 질병을 치유한다는 이 말만큼은 아직까지 가슴속에 품은 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저는 ‘빛의 치유법’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연마했지만 잘 되지는 않았습니다. 최근에 이 방법을 한 번 성공시켰던 적이 있습니다. 지난 4월 서귀포의 한 지역아동센터 수업을 맡았습니다. 싸우고 울고 떠들고 산만하고 딴 짓하는 건 전 세계 어린이들의 공통 사항이니 새로울 것도 없습니다. 나름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버거워질 때도 있었습니다. 한 번은 소리를 질렀고, 한 번은 원장님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는 좀처럼 ‘빛’을 찾지 못했습니다. 지역아동센터 수업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몰랐죠. 아이들과 수업을 진행하면서 유심히 관찰하고 지역아동센터 정책이라든지 갖가지 정보를 수집하며 조금씩 이해를 넓혔습니다. 하지만 수업이 끝나는 9월이 되도록 좀처럼 답을 찾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이 계속됐습니다. 

그러다가 새로운 지역아동센터 수업을 다시 맡게 되었습니다. 5개월 동안의 시간과 아이들과 부딪혔던 감정들이 제 몸에 촘촘히 박혀 있다가 새판을 짜는 순간 맑은 밤하늘의 별처럼 쏟아져 내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지역아동센터의 아이들에 맞는 전혀 다른 방법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압도적으로 아이들의 흥미를 사로잡고 몰두할 수 있는 그림책 창작 수업은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실제 아이들을 만날 때까지 성공할지 장담할 수 없었죠. 새로운 지역아동센터에서 만난 아이들도 은총과 질병으로 가득 찬 어린이였습니다. 

아이들은 책을 찢는 모습에 한 번 놀랐고, 다른 아이들과 만든 그림책 이야기에서 튀어나온 비속어에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아이들이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두 가지 자극을 접하는 순간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빛의 느낌이구나’ 하고 저는 조금이나마 감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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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들은 무질서한 놀이 상황에 흥분하며 스트레스와 감정적 상처를 해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어른의 무지를 깨뜨리는 것이야말로 ‘빛’

모든 부모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동적으로 ‘도인(道人)’의 길로 들어섭니다. 아이와 지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몸에서는 ‘사리’가 나오고 내가 엄마인지 ‘보살’인지 헷갈릴 때가 많죠. 하지만 엄마가 보살이 되지 않고서는 아이는 좀처럼 나아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부모가 도를 터득한 만큼만 아이가 성장하는 ‘고약한 방정식’ 안에서 우리 가족은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매일같이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부모님들(대부분이 어머니들)을 만납니다. 이들을 만나면서 발견한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아이들을 진지하지만 어른들은 진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만약 어른들이 아이들의 반, 아니 10분의 1만큼이라도 진지하다면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전혀 달라질 것입니다. 결국 진지하게 아이를 바라보지도 않고, 아이에 대한 무지와 편견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어른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에 가족들의 표정에는 ‘빛’은커녕 어둠만 짙게 머물러 있습니다. 부모님들은 입만 떼면 자녀 욕을 하고, 자녀의 부정적인 점을 말합니다. 때로는 아이를 관찰하며 깨달은 발견의 언어를 쓰는 부모님이 있지만 가물에 콩 나듯 드문 일입니다. 

부모는 항상 옳기만 하고 아이는 틀리기만 한 것처럼 꽉 막힌 관계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린이들을 만나면 디오니소스(Dionysos)적인 놀이, 즉 무질서하고 파괴적인 놀이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부수고, 청소년들을 만나면 같이 어른 욕하고 토닥거리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씁니다. 

한 중학교 아이들과 함께 “어른들은 절대로 모르는 일”에 대해서 글을 쓰다가 한 아이를 울리고 말았습니다. 2학년 여학생은 자신의 답답한 상황과 어른들에게 당한 부당한 일을 이야기하다가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습니다. 저는 이 중학교 여학생의 눈물이야말로 우리 시대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어린이, 청소년, 부모님들과의 특강 기회를 더욱 자주 가지면서 저에게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림책과 소설책 등 문학작품을 손에서 떼지 않았습니다. 책 집필을 위해 《논어》 관련 도서를 보는 것 외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문학에 들이고 있습니다. 문학을 사랑하고 끌어안을수록 아이들과 부모님의 마음으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고, 마치 터널의 끝처럼 ‘빛’이 희멀겋게 저를 부르고 있으니까요. 요즘은 제가 불나방이 된 기분입니다. ‘문학 불나방’

#  필자 오승주는?

1978년 제주 성산포에서 나고 자랐다. 제주대에서 국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2003년부터 10여 년간 서울 강남에서 입시컨설팅, 논구술 특강 등의 일을 하다가 대한민국 입시구조와 사교육 시스템에 환멸감을 느꼈다. 

이후 언론운동과 시민정치운동, 출판문화운동, 도서관 운동 등에 참여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변화의 힘은 가정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족의 끈이 이어지게 하는 일에 인생을 걸었다. 소홀했던 가정이 무너지기 직전, 아이의 간절한 외침 소리를 들었기 때문. 

2013년 《책 놀이 책》을 써 아이와 부모를 놀이로 이어 주었고, 3년간의 공부방 운영 경험과 두 아들과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썼다. 아빠 육아, 인문고전으로 아이 깊이 읽기로 가족 소통을 꾀했다. 

현재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공자의 논어》,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사마천의 사기》를 집필 중이며 아주머니와 청소년을 작가로 만드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글쓰기·책쓰기 강사로서 지역 도서관과 활발히 사업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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