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적 인간] ⑧ 서치(Searching), 아니쉬 차간티,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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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서치>의 한 장면. 출처=네이버 영화.

처음 컴퓨터를 배운 건 고등학생 때였다. 학교에는 컴퓨터실도 없었다. 기술 시간에 컴퓨터라는 단원이 있었던 것 같다. 선생님이 칠판에 분필로 썼다. 컴퓨터의 역사. “이 부분 시험에 안 나오면 내가 오백 원 준다.” 재미없는 농담을 던지고 혼자 웃는 기술 선생님. 학생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그 부분에 별표 서너 개 표시한다. 꼼꼼한 친구는 형광펜으로 표시하고. 기술 선생님은 마름모를 몇 개 그리더니 그 도형 속에 입력, 저장, 정보, 출력 등의 낱말을 적었다. 그 용어들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부분이 시험에 나온다 해서 그 순서들을 암기하던 기억이 난다.

스무 살 무렵 ‘컴맹’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그것은 공포였다. 앞으로 컴퓨터 시대가 도래하는데, 이 컴퓨터를 사용할 줄 모르면 문맹이나 마찬가지라서 사회생활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 그 공포 때문에 컴퓨터 학원에 등록했다. 플로피디스켓을 이용해 명령어를 입력해야 하는 컴퓨터는 너무 어려운 과목이었다. 다행이 마우스가 나오고, 컴퓨터는 직관적으로 사용하기 쉽도록 변화했다.

그 무렵 영화 <접속>(감독 장윤현, 1997)이 히트를 쳤다. PC통신에서 시작된 사랑을 그린 이 영화는 모던한 사랑처럼 근사해 보였다. 그때 군인들은 컴퓨터 세상에 적응해야 한다며 제대 한 달 전부터 교육실에서 컴퓨터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았다. 덕분에 제대해서 바로 채팅을 통한 만남을 찾을 수 있었다. 한석규나 전도연이 된 것처럼. ‘세이클럽’에서 만나고 헤어졌다. 

그후 ‘미니홈피’가 한 시대를 풍미했다. 미니홈피는 사이버 스페이스가 건축물과 동일하게 공간을 형성해 주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분명하게 알려줬다. 실제 집은 없어도 미니홈피는 하나쯤 다 갖고 있던 시절이었다. 물론 그곳에서도 부익부빈익빈은 똑같이 일어났다. 미니홈피 속 페이지에 화사한 벽지에 품격과 귀여움을 겸비한 가구들이 가득한 사람이 있는가하면, 반면에 하얀 셔츠에 반바지만 입은 채 빈 방에 덩그러니 있는 아바타들도 많았다. 이 지점에서 ‘아이 러브 스쿨’을 떠올리는 사람이라면 1970년대 이전 생이리라.

영화 <서치>를 보고 나오는데, 영화를 같이 본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가끔씩 내 메일의 비밀번호도 잊어버리는데, 어떻게 딸의 SNS에서 비밀번호를 찾아낸단 말인가.”
영화 속 아버지는 컴퓨터로 잃어버린 딸을 찾는다. 우리의 하루는 사이버 스페이스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핸드폰에서 GPS 설정을 해제하려다 그만 둔 적이 있다. 처음에는 나의 위치를 공개하는 게 꺼림칙했는데, 차차 시간이 흐르니 GPS로 나의 위치를 저장해 두니 안심이 되는 게 아닌가. 이제 완전히 인터넷 속에 들어간 것이다.

컴퓨터로 별을 찾는 천문학자가 있다. 천체망원경 없이 데이터를 통해 별을 찾는 것. 컴퓨터로 또 무얼 찾을 수 있을까. 몇 년 전 바닷가에서 잃어버린 슬리퍼도 인터넷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다. 여전히 비트코인이 어떻게 돈이 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나로서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영화 <엑시스텐즈>(eXistenZ, 1999)가 보여주는 세상 정도로 꿈꿀 수밖에. 고등학교 시절 기술 선생님처럼 이렇게 옛날 컴퓨터 세상 얘기나 늘어놓다니. <서치>의 감독 아니쉬 차간티는 전직 구글 직원이었다. 

현택훈
고등학생 때 비디오를 빌려보며 결석을 자주 했다.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해 처음 쓴 소설 제목이 ‘중경삼림의 밤’이었다. 조조나 심야로 영화 보는 걸 좋아한다. 영화를 소재로 한 시를 몇 편 썼으나 영화 보는 것보다 흥미롭지 않아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한때 좀비 영화에 빠져 지내다 지금은 새 삶을 살고 있다. 지금까지 낸 시집으로 《지구 레코드》, 《남방큰돌고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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