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승훈 (사)제주문화포럼 이사 
                                                      
제주시민회관의 활용 방안이 논란이다. 제주시는 지난 7월 20일 '시민회관 활용방안 타당성 조사 및 기본설계 용역 주민설명회'를 열어 존치와 신축의 두 가지 방안을 공개하고 용역의 결과를 발표했다. 

제주시민회관은 1964년 개관 이후 오랜 시간 제주의 대표적인 문화, 체육 시설의 역할을 해 왔다. 그 시대를 살아온 거의 모든 제주 시민들에게 추억이 스며진 공간이다. 
그동안 시민회관은 도시가 확장되고 많은 문화, 체육 공간이 생기면서 잊혀 있다가 최근에 잇달아 열린 아트페어 등으로 관심을 끄나 했더니, 느닷없는 설명회로 도시재생 방법에 대한 시민들의 공론장이 되어 버렸다.  

두 방안 중 존치는 외관을 보존하고 리모델링을 통해 문화, 체육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신축은 시민회관을 헐고 그 자리에 지역 주민의 주차난을 감안해 주차면적을 확충하고 문화공간을 확보한 11층 행복주택을 짓는 것이다. 

용역회사는 지역 주민의 의견을 듣는 형식으로  종합 검토 결과를 발표했는데 존치는 '보통', 신축은 '매우 좋음'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사실상 신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낸 것이다. 

설명회에 참석한 필자로선 납득하기 어려운 몇 가지를 느꼈다. 시민회관의 상징성과 규모 그리고 제주성 복원과 주변의 문화벨트에 미칠 영향을 감안한다면 의견을 묻는 대상을 제주시민으로 폭을 넓혀야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각적이고 합리적인 충분한 공론 없이 여론 조사라는 방식만으로는 찬반 모두 결과를 승복하긴 어렵겠다고 느꼈다. 

또 시민회관의 활용 여부를 문화적인 관점보다는 재개발과 건설이라는 측면에서 결정했다는 느낌이 강했다. 무엇보다도 도지사와 지역 도의원의 섣부른 개입 혹은 공약 등도 한 몫 했다고 생각한다. 그날 설명회의 분위기는 결과에 관계없이 존치와 신축 양측의 갈등만 키운 꼴이 되어버렸다. 

현대건축의 큰 흐름 중 하나는 장소성을 연속시켜 나가는 방법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장소성이란 그 장소가 갖고 있는 기억을 계속 이어간다는 뜻이다. 개념상 그 장소의 주변도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리모델링은 물론 보존이냐 재생이냐를 뛰어 넘는 시각이다. 
 
최근 재개발 등 많은 공공사업의 방향을 ‘주민의 의견을 물어...’ 이런 방식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 과정이 정당하니 민주적이고 합리적이라고 강변할 수는 있어도 그 결정이 도출되기 전에 고민하고 설득하고 넘어서야할 것들이 분명히 있다. 그것이 정책 입안자와 전문가의 역할이다. 포퓰리즘에 빠지지 말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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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승훈 제주문화포럼 이사
제주시민회관만 해도 그렇다. 주변의 문화적 역사적 그리고 경관의 고려 없이, 제주시민의 추억이 오롯이 담긴 제주문화의 상징적인 건물을 싹 밀어버리고 11층 행복주택이 들어선다면 심정적으로 쉽게 받아들일 수가 있겠는가? 
 
아쉬운 것은 이 모든 것을 고려하여 신중하고 합리적으로 일을 추진해야 할 주무부서인 제주시 문화예술과의 시각이다. 문화예술의 보호와 지원이라는 본연의 임무에 걸맞지 않게 인문적이기 보다 토건적인 사고로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늦지 않다. 아무쪼록 정책 입안자와 이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들이 원점에서 고민하고 또 고민하여 결정하길 바란다. / 한승훈 제주문화포럼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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