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71) 창천리 창고천 산물

서귀포 안덕면 창천리는 진소 부근의 암굴이 창고처럼 생겼으며 그 안에 있는 창고샘이란 산물로 마을이 형성돼 '포시남마루'라고 불렸다. 창고처럼 생긴 암굴이 있다고 하여 창고천리라 하다가 일제강점기 시에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창천리가 되었다. 

창고천에는 제주어로 ‘엉’이라는 벼랑 같은 곳에 원시주거 형태인 바위그늘 집터인 궤(동굴)가 여러 곳에 산재해 있다. 하천이 마을을 끼고 있어 창천리를 ‘창고천’ 또는 ‘창고내’라 불렀던 것처럼 명산으로 알려진 군산의 기품과 창고천의 맑고 깨끗한 물이 마을을 지키는 형세다. 창고천이란 뜻은 하천에 창고처럼 생긴 암굴이 있어서이다. 창고내는 원시주거형태의 하나인 바위그늘집터인 궤(동굴의 제주어)가 여러 군데 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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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고천 진소.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창고샘도 바위그늘 집터인 궤(동굴)에 있는 산물이다. 창고샘은 궤물이라고도 하는데, 창천삼거리 서귀포방면 창천초등학교 버스정류장 뒤 창고천에 있다. 하천에는 조그만 폭포가 만든 길다고 하여 진소라 부르는 소가 있는데, 진소가 큰 바위 뒤 궤에 숨겨둔 산물이 창고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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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궤에 숨긴 창고샘.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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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궤속 창고샘.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 산물은 하나의 바위로 된 엉(언덕)에 두 개의 궤가 있는데, 왼쪽은 샘이고 오른 쪽은 당이다. 한 바위 속에 일궤당신을 모시고 있어 산물이 당이고 당이 산물인 셈이다. 이 산물은 물이 솟는 사각구멍과 두 개의 물통을 갖고 있으나 하천범람으로 떠 밀려온 자갈과 토사로 가득 메워져 있다. 그러나 당신(堂神)의 힘이라고 할까 메워진 통에 괘념치 않고 물은 여전히 흘러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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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고샘(좌)과 일궤당(우).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 산물은 군산과 인연을 맺은 전설의 물로 알려져 있다. 군산(굴메오름, 굴뫼)은 군막같이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1007년(목종10년) 기생화산이 폭발로 인해 새로이 만들어진 오름이다. 당시 기록에는 “바다에서 산이 용출하면서 7일 만에 군산이 솟아났다”라고 적혀 있다. 마을에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이 오름은 스승의 은혜의 보답하기 위해 동해용왕의 아들이 뇌우를 동반하여 만든 산이다. 

그래서 창고샘은 군산과 맥을 같이 하는 영험이 있는 산물로 설촌 이래 지금까지 마을에서는 신성시한다. 서귀포시에 의해 창고샘 일대에 창고천생태공원을 조성할 만큼 숨겨진 비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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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고샘(앞)과 진소(뒤).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군산에도 영구물이란 약수가 있다. 영구물은 남당물동산에서 남서방향 450m 정도 떨어진 군산기슭에 있는 산물이다. 아무리 가물어도 바닥을 드러내지 않고 영구히 흐르는 물이라는 데서 이름 붙여졌다. 

이 산물은 바위를 지붕으로 한 자그마한 토굴에서 솟아나 일자형 수로를 통해 아래 있는 작은 연못처럼 생긴 굴헝(웅덩이란 제주어)에 물이 모여 들도록 만들어 우마 등이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산물은 지금도 옆에 있는 과수원에서 생활용수로 이용하고 있으며 군산을 찾는 탐방객을 위한 휴게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산물에 대한 안내는 전혀 없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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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구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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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구물 용출지점.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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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구물 굴헝.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창천리에서 당과 관련된 산물로 남당물을 빼 놓을 수 없다. 남당물은 남당물동산 교차로에서 남서쪽으로 300m 가량 떨어진 창고천 사이 언덕배기에 있는 산물로 남당과 관련됐다.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산물은 3칸의 통으로 개조되어 옛 모양은 찾을 수가 없으나, 물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솟아난다. 

남당은 조선조 숙종 28년에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형상이 창고천 인근에 있던 신당을 철거시키자 이 당의 신앙민 일부가 남서쪽으로 이동하여 남쪽에 다시 세웠다는 당이다. 감산리와 경계지역으로 지금은 당은 없어지고 감귤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산물이 있는 곳은 작은 쉼터공원을 조성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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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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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당물이 만든 연못. 남당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창천리와 감산리 경계 지점의 남당물 아래에 있는 창고천변을 보면 양재소물이 있다. 이 산물은 하천 하상에 있는 소(沼)라는 물웅덩이에 있는 물이 아니라 양제소로 내려가는 비탈에 있는 산물이라 양재소물이라 한다. 이 산물은 용암경계층 하부에서 솟아나오는 물로 식수통과 2개의 빨래통을 갖고 있으며 산책로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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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재소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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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재소물 물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산물 하부에 있는 재물을 기른다는 의미의 하천의 소(沼)인 양재소는 자연저류지로 암반을 깎아 인공수로를 만들었다. 2km 떨어진 황개천 하류의 논에 물을 보낼 정도로 물량이 풍부하다. 양재소는 양아들을 의미하는 말로 제주어로 양지라 하는 것처럼, 일명 양지소라 부르기도 한다. 이는 창고천에서 가메소 다음 두 번째로 생긴 소이기 때문에 가메소에서 양자로 왔다는 데서 연유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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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재소.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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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재소 인공수로.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외에도 마을에는 통나무를 깎아 큰 통을 만들어 물을 받고 마을의 식수로 이용했던 통물이 마을 안에 있다. 

이 산물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작은 궤에서 용출되는데 물은 궤에서 직접 뜨지 않고 궤 밑에 식수통을 만들어 사용할 수 있도록 해 놓았는데 동굴이 무너지지 않게 돌과 시멘트로 축조하여 1956년에 준공했다고 쓰여 있다. 지금 산물이 형태로 볼 때 1956년에 개조되었다가 콘크리트 도로로 확장되면서 물통만 남고 축소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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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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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물 물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고병련(高柄鍊)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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