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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제1902호로 지정된 ‘제주향교 대성전’의 정비와 원형 복원에 밑그림이 될 1828년(순조28년) 이건 당시 최초 모습이 최근 발굴조사에서 확인됐다. ⓒ제주의소리

발굴조사에서 제주향교 1828년 이건 당시 대성전·월대·동무·서무 유구 확인 

보물 제1902호로 지정된 ‘제주향교 대성전’의 정비와 원형 복원에 밑그림이 될 19세기 초 이전 당시 최초 모습이 확인됐다. 

제주향교 대성전 앞으로 월대(月臺)가 있었고, 대성전을 중심으로 양측에 동무(東廡)와 서무(西廡)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문주석(門柱石)과 기단석렬 등이 조사됐다.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본부장 나용해)는 지난 4월부터 (재)제주문화유산연구원(원장 고재원)에 의뢰해 ‘보물 제1902호- 제주향교 대성전 발굴조사’를 추진한 결과, 1828년(순조 28) 이행교(李行敎) 제주목사에 의해 제주향교가 용담1동 현 위치로 이건(移建)했을 당시의 대성전 원래 모습이 처음 확인됐다고 22일 밝혔다. 

이번 발굴조사는 2017년 대성전 주변의 변형된 돌담 정비공사 진행 중 일부 구간에 대한 해체 결과, 과거 철거되어 사라져버린 서무(西廡)의 초석으로 추정되는 원형 유구가 확인되면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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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제1902호로 지정된 ‘제주향교 대성전’의 정비와 원형 복원에 밑그림이 될 1828년(순조28년) 이건 당시 최초 모습이 최근 발굴조사에서 확인됐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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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 경 ‘제주향교 대성전’ 전경  ⓒ제주의소리

발굴비 1억3000만원(국비 9100, 도비 3900만원)을 투입해 대성전 앞 월대(月臺)와 앞마당 등 총 651㎡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 

대성전(大成殿)은 문묘(文廟)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로, 공자(孔子) 이하 성현(聖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의식이 치러지는 곳이다. 향교의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이기도 하다. 

동무(東廡)와 서무(西廡)는 대성전 좌우에 있는 건축물이면서 동무는 서향, 서무는 동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해당 공간에는 대성전에 봉안된 10철(哲)을 제외한 공자의 제자, 중국의 역대 현인(賢人), 우리나라의 명현(名賢) 등의 위패들을 동·서로 봉안했던 곳이다.  

제주향교의 이번 조사 대상지는 발굴조사 이전에 이미 잔디가 전면에 깔려 있는 상태였고, 월대(月臺)의 기단석과 석축, 1952~53년 훼철된 것으로 추정되는 동무·서무(東廡·西廡)와 관련한 초석과 석렬, 중앙의 신도(神道)가 표면에 드러나 있는 상태였다.  

이번 발굴조사로 제주향교의 월대와 마당 바닥면이 전체적으로 전돌(塼, 벽돌)이 깔렸으며, 중앙에 신도(神道)와 함께 동무와 서무 앞에도 보도 시설이 설치되었음이 확인됐다. 

특히 동무와 서무의 터에서 각각 2매씩의 대칭되는 문주석(門柱石)과 건물의 서편경계에 해당하는 기단석렬이 출토되면서 기존 문헌 및 사진자료로 추정만 하던 동무·서무 건물의 세로 폭이 4.8m 가량임을 파악했다. 

다만, 동무·서무의 전체적인 범위가 이번 조사대상지를 벗어나 인근 제주중학교 운동장까지 연장되어 있음에 따라 정확한 전체 길이는 확인할 수 없었다. 

이번 발굴조사에서 막새기와편을 포함한 다수의 기와편이 출토되기도 했다. 이들 중 ‘수성(守城)’과 ‘임신(壬申)’이라 새겨진 명문기와도 확인됐다. 

수성(守城)은 성문거교군(城門擧橋軍)이 근무했던 ‘수성소(守成所)’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와 유사한 기와는 제주목관아를 비롯한 오현단 부근의 제주읍성, 운주당터에서 발견된바 있다.

세계유산본부에서는 “향후 해당 발굴조사 결과를 제주향교 및 대성전의 원형 정비와 복원 방향을 설정해 나가는 기초자료로 활용함으로써 제주향교의 옛 위용을 회복해 나가는데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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