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적 인간] ⑩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Turtles Swim Faster Than Expected), 미키 사토시,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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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린 헤엄친다>의 한 장면. 제공=현택훈. ⓒ제주의소리

중학생 시절부터 친구였던 한 녀석이 내게 고백했다. 

“사실 나 국정원에 다녀.” 

친구는 이미 술에 취해 있었다. 그래, 네가 국정원이면 난 FBI이다. 서귀포에 있는 중국집 덕성원은 짜장면이 맛있는데 한식집 간판으로는 조금 어울릴 것 같다. 국정원.

장사가 되지 않는 게 눈에 다 보이는데 아직 폐업을 하지 않은 가게들이 있다. 사진관, 도장집, 시계수리 전문점, 구두수선 가게, 이발소, 목욕탕 등. 이런 곳들은 대개 몇 십 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눈에 띄지 않게 오랜 세월을 지내왔는데 요즘은 오히려 눈에 잘 띈다. 평범한 가게들이 귀하게 여겨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만약에 그런 가게의 사장이 스파이라면 업종 전환을 심각하게 고민해 볼 것이다.

평범하고 지루한 하루를 보내는 스즈메(우에노 주리)는 최대한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살아야 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처음엔 자신의 임무가 탄로 날까봐 불안했는데 사실 평소대로 살면 되는 일이다. 지령을 내리는 정보국으로부터 애초에 적임자로 선택된 스즈메가 아닌가.

불금인데 집에 있으면 불안하고, 일요일 낮이면 짜장면을 주문해 먹고, 셀카봉이나 손선풍기가 유행일 때 하나쯤 덩달아 구입하고, 먼 나라를 여행하는 꿈을 꾸고, 어려운 철학 얘기가 나오면 중간을 가기 위해 입을 다물고, 다이어트는 내일부터라며 자정 무렵 치킨을 주문해 먹고. “왜 이렇게 살고 있지?”라고 반문하게 되지만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야 하는 게 우리의 임무라면.

캐나다 시트콤 <김씨네 편의점>을 보면 한국의 평범한 일상이 외국에서는 독특한 문화가 되는 걸 느낄 수 있다. 딱밤은 아동폭력, 똥침은 성추행이 된다. 최근 몇 년 간 이곳 제주도에서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동네 책방들이 장사가 되지 않아 문은 닫는 판에 책방들이 생기고 있다. 이상한 일이다. 그러고 보면 중앙로에 시화(詩畵)를 그려주는 가게도 있었다. 시화를 맡긴 적도 있는데, 서귀포로 옮긴다는 말이 내가 들은 마지막 소식이었다. 

맡은 바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가게들은 이제 성스럽다. 제주여상 입구 전람회가 그렇고, 서귀포 구 터미널 근처 예음사가 그렇다. 제주시와 서귀포시 무슨 좌표처럼 그 자리에 박혀있는 레코드 가게.  

서귀포에는 서귀포 사람들도 잘 모르는 한 아파트가 있다. 겉으로는 낡은 아파트이지만 국가건물이라고 한다. 인터뷰 사진 찍을 장소를 물색하다 그 아파트에 있는 놀이터에 갔는데 관리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군사보안시설이라며 사진 촬영을 막았다. 아파트 벽 페인트는 거의 다 벗겨지고 색이 바랬다. 그 관리원은 내게 명함을 달라고 했고 나는 순순히 명함을 건네줬다. 밖으로 나온 우리는 입술을 비죽거리며 한참 걷다가 그 관리원에게 명함을 달라고 요구하지 못할 것을 뒤늦게 후회했다. 

현택훈
고등학생 때 비디오를 빌려보며 결석을 자주 했다.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해 처음 쓴 소설 제목이 ‘중경삼림의 밤’이었다. 조조나 심야로 영화 보는 걸 좋아한다. 영화를 소재로 한 시를 몇 편 썼으나 영화 보는 것보다 흥미롭지 않아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한때 좀비 영화에 빠져 지내다 지금은 새 삶을 살고 있다. 지금까지 낸 시집으로 《지구 레코드》, 《남방큰돌고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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