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영리화저지 및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제주도민운동본부는 9일 오후 2시 제주도의회 도민의방에서 '영리병원을 넘어 공공의료 확대를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시민사회 '공공의료 확대를 위한 정책토론회'..."녹지병원, 공공의료 확충에 써야" 한목소리

영리병원 도입을 놓고 제주사회에서 숱한 논란을 빚은 가운데, 제주가 앞으로는 '의료관광'이 아닌 '공공의료' 선도에 주목해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제언이 나왔다. 특히 시민사회는 이미 건설된 녹지국제병원의 경우 공공의료 확충에 쓰여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의료영리화저지 및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제주도민운동본부가 주최하고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민주노총제주본부, 전농제주도연맹, 제주주민자치연대, 제주대안연구공동체, 제주녹색당, 시민정치포럼,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제주지역지부, 민중당 제주도당이 공동 주관한 '영리병원을 넘어 공공의료 확대를 위한 정책토론회'가 9일 오후 2시 제주도의회 도민의방에서 개최됐다.

홍영철 제주참여환경연대 대표를 좌장으로 오상원 제주도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위원과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대표가 각각 발표에 나섰다. 고현수 제주도의회 의원, 변혜진 건강과대안 상임연구위원, 양연준 의료연대본부 제주지역지부장, 고명희 제주도공론화위원회 위원 등이 참석했다.

▲ 오상원 제주도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위원. ⓒ제주의소리
◇ "영리병원 도입 무산, 도민 공공의료 의식 수준 높다는 방증"

오상원 위원은 '녹지국제병원 대응 활동평가 및 과제'를 주제로 그동안 영리병원 도입에 대응한 시민사회 차원의 활동을 정리했다.

오 위원은 "제주도민은 영리병원 투쟁에서 져 본 적이 없다. 가장 첨예한 대립이 있었던 2008년 2%도 안되는 차이로 국내 영리병원 도입이 저지됐다. 그로부터 10년정도 뒤인 2018년 10월에는 사실상 국내 1호 영리병원이 될 뻔 했던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불허 권고가 내려졌다. 찬성 비율은 10년 전에 비해 변화가 없었지만, 10년간 반대하는 도민들은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10년의 세월 동안 영리병원에 대한 도민들의 반대 의식이 높아졌다. 실제 이번 녹지병원 추진 과정에서 도민들이 우려했던 것은 '의료공공성 약화'였다"며 "도민들이 정말 공공의료에 대한 의식 수준이 매우 높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됐고, 단순히 영리병원 문제를 뛰어넘어 제주에서 공공의료를 강화하는 방안들이 마련돼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영리병원 도입 심의에 직접 참여했던 오 위원은 "1차 사업서에는 외국자본에 내국인이 섞여있는 것이었고, 2차 사업은 외국자본 100%였지만 드러나지 않았던 국내 법인들이 숨어있었다. 이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지만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시민사회에서 문제를 제기했다고 '너희가 해명해야할 것 아니냐'는 식이었다"며 "더 큰 문제는 두 차례나 사업계획서가 바뀌면서 단 한 차례도 사업계획서 공개가 없었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번 영리병원 투쟁에서 가장 많이 느꼈던 것은 공공의료 강화에 대한 도민들의 의지였다"며 "향후 과제로 경제자유구역법과 제주특별법 상에 영리병원 특례가 폐지돼야 하고, 제주도민들이 열렬히 바라고 있는 공공의료 강화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지어진 녹지국제병원의 경우 비영리병원이나 서귀포의료원 요양병원, 직업병전문병원 등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대안도 함께 제시했다.
 
▲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 ⓒ제주의소리
◇ "제주도정, 의료서비스 운운하며 일종의 거짓말...의료 패러다임 전환 필요"

우석균 대표는 제주가 '의료관광 선도'가 아닌 '공공의료 선도' 도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 대표는 "제주도정은 제주도민을 상대로 일종의 거짓말을 해왔다. 토평동 주민들의 가장 많은 질문은 '미용-성형외과가 들어와도 내가 교통사고를 당하면 그 병원에서라도 치료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 '영리병원이면 어떻나. 좋은 병원이 들어와서 서울 가는 걸 안가도 되면 좋지 않느냐'라는 것이었다"며 "이건 제주도정이 퍼뜨린 의도적인 거짓말이다. 현재 녹지병원은 단순 의료관광에 국한된 것일 뿐 양질의 의료서비스와는 전혀 다른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우 대표는 "제주는 섬이고, 인구가 적고, 도농복합지역이라는 특성상 민간의료기관이 수익을 내기 쉽지 않다. (제주도는)수익을 내기 위해 제주도민이 필요한 서비스가 아니라 수익성이 전부인 의료관광에 눈을 돌린 것"이라며 "이제 '의료관광 선도하는 제주'라는 구호를 포기하고 '공공의료를 선도하는 제주'가 돼야 한다"고 주창했다.

특히 그는 "건강이라는 것은 치료가 아니라 건강할 권리를 갖추는 것으로, 치료에 머무는 것이 아닌 예방, 치료, 재활 등 여러 분야로 접근해야 한다"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공공의료나 소외된 곳을 위한 공공의료가 아닌 표준적인 의료모델을 갖춰야 한다. 멀리 의료가 따로 있는게 아니라 의료가 중심이 돼 전달체계가 연계되는 공공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주의 공공의료 체계가 턱 없이 부족하다는 뼈 아픈 조언도 건넸다.

우 대표는 "다른 지역의 경우 사립병원들의 과잉진료가 판을 치는 반면, 제주는 공공의료가 중심이 되고 있다는 점은 축복"이라면서도 "그러나 여전히 공공의료가 모자란 것은 확실하다. 예산을 보면 제주대병원, 제주의료원, 서귀포의료원 등의 예산이 너무나 적다. 제주대병원이 1000억원 정도 되는데, 서울의 빅5 병원의 예산은 1조원이 넘고, 다른 지역 국립대병원은 3000억원에서 4000억원이다. 1000억원 예산의 국립대병원은 없다"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 헌법은 평등한 보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명시됐다. 제주에서 태어났든 서울에서 태어났든 똑같은 건강을 누릴 자격이 있다. 가령 제주에서 태어났더라도 중증 질환·외상 환자라면 똑같은 의료서비스를 누릴 자격이 있다. 제주의 공공병원을 더욱 강화해서 중증질환 외상이 해결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녹지국제병원 건물의 활용 방안에 대해 우 대표는 "매년 2000억원 정도의 수익을 제주에서 벌어들이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책임져 공공의료 영역을 확충해야 한다. 부족한 서귀포지역의 의료인프라를 갖추기 위해 도립요양병원 또는 분만시설 등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 주제발표에 나선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 ⓒ제주의소리
◇ "공론화가 책임회피 수단되어선 안돼...원희룡 지사,부대의견 새겨들어야"

고현수 의원은 "원희룡 지사는 숙의형 공론화 결과를 최대한 반영해 향방을 결정짓겠다고 공언한 바 있고, 제주도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도 도민참여단의 최종 설문조사결과에 따라 '녹지국제병원 개설불허'를 권고했다"며 "그러나 공론조사위의 영리병원 개설불허 결정권고와 도지사의 '공론조사위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의견 피력이 있었음에도 현재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어 도민의 혼란은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 의원은 "녹지국제병원 개설허가 백지화를 공식화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일 것이나 도민의 공론화된 의견을 따르겠다고 공식 입장표명 한 바 있으므로, 조속한 결정을 통해 더 많은 혼란을 가중시키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공론화 과정은 정치적 책임과 별개로 판단해야 하며, 도민의 뜻에 따라 결정했다는 것만으로 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공론화가 정치적 책임 회피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도지사는 공론조사위의 또 다른 권고안인 '녹지국제영리병원을 비영리병원 등으로 활용하여 헬스케어타운 전체의 기능이 상실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지역경제 활성화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반 행정조치 마련'에 적극 임하는 것이 다소나마 책임을 지는 것이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또 "영리병원과 관련해 손해배상 문제, 헬스케어타운 토지 문제 등 종합적으로 사전 검토가 필요함은 주지의 사실"이라며 "영리병원은 투자 개념이기 때문에 법무관련 부서와 투자유치 부서에서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 시점에 맞는 업무분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특히 고 의원은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한 영리병원 허용은 결국 내국인을 대상으로 한 영리병원으로의 포문을 열어주는 것이 될 수 있고, 이런 이유로 인해 많은 사람들과 단체들이 국민건강보험체계로 운영되고 있는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의 기본 원리 자체가 부정될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고 본다"며 "녹지국제병원 개설허가 문제가 일단락된 후에도, 제주특별법과 관련 조례 등이 개정되지 않는다면 문제는 끊임없이 발생할 가능성이 상존한다"고 우려했다.

▲ 고현수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원. ⓒ제주의소리
◇  "영리병원 공론화, 다소 소모적...도의회-언론 역할 중요"

변혜진 상임연구위원은 "어떤 공공의료가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며 "공론장에서 제기됐던 영리병원 찬반 논쟁을 위한 기초적인 논거들에 대해 공론이 더 필요하다. '우리에게 의료는 무엇인가', '병원의 지역사회 역할은 무엇일까', '의사들의 수입은 얼마여야 하는가', '의료관광은 제주도 의료제도의 우선순위에 해당하는가', '영리병원은 왜 의료서비스 질이 나쁜가' 등 보다 본질적인 토론이 제기돼야 한다"고 말했다.

변 위원은 "외국의 경우 이미 끝나버린 논쟁 중 하나인 영리병원의 필요성과 효과에 대해 제한적이고 소모적인 공론화는 무리한 행정 추진을 일정부분 도민들에게 떠넘기려한 측면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변 위원은 "영리병원 불허 권고에 대해 도지사가 결정할 수 있도록 제주도의회가 적극 요구해야 한다"며 "의회는 영리병원이 공중보건을 위한 의료기관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민의 기구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공론장에서의 중요한 역할자 중 하나는 언론과 미디어"라며 "향후 제주도민의 건강권을 향상시키는 논의의 장을 만들어 대중이 학습능력과 비판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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