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 새 없이 오가는 수다 속에 드러나는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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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들만 아는 공소시효'에 출연한 극단 그녀들의 Am 배우들.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나선희, 임영숙, 김은정, 장혜진. ⓒ제주의소리

[리뷰] 그녀들의 Am <그녀들의 공소시효>

어떤 연극, 영화, 문학이라도 ‘현실’은 좀처럼 뛰어넘기 어려운 벽이다. 놀랍고 대단한 이야기일지라도, 그것을 훌쩍 뛰어넘는 현실이 튀어나오곤 한다. 끔찍한 강력범죄, 감동적인 미담을 일일이 꼽지 않아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2016~2017년 촛불 정국을 떠올리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우리네 삶은 이런 현실들과 비교하면 다소 시시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평범함이 가장 어렵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흔하게 느껴지는 일상생활은 단순 공감 이상의 매력이 있다. 고요한 물가 표면에 떨어진 돌멩이가 드넓은 파장을 일으키듯, 일상이란 균형이 깨지면서 나타나는 다양한 갈등은 인간 내면의 속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익히 많은 예술에서 다뤄지는 단골 소재다.

제주 극단 '그녀들의 Am'의 정기 공연 <그녀들만 아는 공소시효> 역시 '일상의 균열'을 다루는 작품이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전형적인 아줌마 넷은 우연히 발견한 쌀통 안에서 어린아이 손가락과 발, 그리고 현금 다발을 발견한다. 추가 등장인물 없이 배우 넷이 이끌고 가는 작품은 당연히 배우들의 호흡과 개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다.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 억양을 구사하고 거칠어 보이지만 속은 은근히 소심한 순이네(배우 임영숙), 충청도 느낌을 떠올리게 하는 느릿느릿한 언행이지만 나설 때는 과감히 앞장서는 동진네(김은정), 나름 생각 있어도 행동까지 나서지 못하는 서울깍쟁이 같은 젊은 영실네(나선희), 똑부러지는 듯 보여도 은근 허당인 미자네(장혜진).

네 명의 캐릭터는 겹치지 않는 각기 고유한 개성을 뽐내는데, 실제 동네 아줌마들이 수다 떠는 듯 술술 이어가는 연기의 호흡이 더해지면서 평범한 캐릭터들의 무대는 관객의 시선을 끈다.

쌀통에서 발견한 신체를 두고 전전긍긍하는 모습, 현금을 나눠 가지자는 대립 등 극 순간마다 나타나는 캐릭터간 분할 구도는 흥미롭다. 네 명이 한 마음이 됐다가 책임을 전가하는 순간 3대 1, 2대 2로 나뉘고 다시 4대 0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평범한 ‘우리들’의 연약함을 꼬집는다.

쌀통 속에 신체를 유기한 사람이 누군지 공포에 질려 상상하는 장면에서는 윗집 이웃, 세탁소 부인, 이웃을 돕는 친절한 청년까지 졸지에 무논리로 ‘저격’ 한다. 경찰에 신고해 수사가 시작되면 집값이 떨어진다는 저렴하지만 솔직한 의견, 돈에 눈이 어두워 어린아이 발을 ‘족발'로 취급하며 눈감아 버리는 모습은 불편하지만 이 역시 부인하기 어려운 우리들의 단면이다.

작품의 원작은 한국희곡작가협회의 2010년 신춘문예 당선작, 김란이 작가의 <그녀들만 아는 공소시효>다. <이웃집 쌀통>이란 제목으로도 각색돼 전국에서 널리 공연되는 대중적인 연극이다. 제주에서는 그녀들의 Am 뿐만 아니라 관록의 극단 세이레가 지난해 무대에 올린 바 있다.

그녀들의 Am은 2015년에 이어 두 번째로 준비한 이번 무대에 대해 배우 나이가 보다 젊어지면서 활력을 키웠다고 설명한다. 캐릭터들의 개성과 호흡이 기억에 남는 걸 보니 수긍이 된다. 

다만, 극 말미는 마치 터져야 할 폭죽이 꺼져버린 듯, 다소 힘없이 마무리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다른 극단들의 같은 작품에서는 쌀통 속 돈과 신체를 나눠가진 후 쌀통 주인을 만나는 부분까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다. 여기서는 통째로 삭제됐다. 예상치 못한 고난에 갈대처럼 흔들리고, 물질 앞에 공익(公益)을 눈감은 인간 군상에 초점을 맞추려 했다고 연출자 의도를 짐작해본다. 그 의도가 설득력이 있는지는 관객이 판단할 몫이다. 

대사를 주고받는 흐름은 무난하지만, 같은 패턴-속도가 이어지는 듯 종종 늘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때로 템포(tempo)에 변화를 주거나 조명, 음악 등을 추가해 긴장을 더 이끌어내는 건 어떨지 사족을 더해본다. 드센 제주어 대사를 입히고, 클린하우스 등 제주 여건을 적절히 버무리는 새로운 모습도 상상해본다.

그녀들의 Am은 13일 오전 11시(예술공간 오이), 21일 오후 5시(서귀포 예술의전당 소극장)에서 남은 공연 일정을 이어간다. 

14세 이상 관람가, 관람료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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