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굴 의지로 생명의 우물을 만든 산물
불굴 의지로 생명의 우물을 만든 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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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81) 구좌읍 한동리 

‘한라산 동쪽에 있는 마을’인 한동리의 옛 이름은 ‘궤’ 또는 ‘궤모을’이다. 민간에서는 '괴' 또는 '괴리(怪里)' 혹은 ‘괴덩(槐洞)’이라 불렸던 마을이다. ‘괴’는 바위굴을 뜻하는 제주어 ‘궤’의 표현으로도 볼 수 있지만, 마을에서는 오래되었다는 '고(古)'의 뜻이 있다고 한다. 한동리는 ‘조개머세’와 ‘당올레’ 일대에서 사람들이 살면서 설촌된 바다와 접해 있는 마을로, 완만한 경사도의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해안 큰 굴곡이 심한 잘 발달된 조간대를 가지고 있다. 

한동리 상동사람들은 설촌 당시부터 계룡동과 평대리 서동 경계에 있는 ‘잣못통물’과 한동초등학교 경내에 있었던 ‘새통물’을 물허벅으로 길어다 먹었다. 동동에는 3~4호에 하나 정도 얕은 우물을 파서 이용했고, 서동에는 ‘개동산’ 부근에 있는 우물을 식수로 썼다. 상동만 먼 거리를 물허벅으로 식수를 날라 오느라 여자들이 고통이 너무 심했다. 그래서 우물을 파기로 했으며, 상동 우물은 일제강점기 때(1933년) 3년에 걸쳐 우물을 팠다. 당시 우물을 파는 과정에 얽힌 여러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저 높은 동산에 무슨 물이 나온다고 저 난리냐?”하는 타 동네사람들이 야유로 중단할 뻔도 했던 이 우물은 폭약(다이너마아트)을 터트려 만든 것으로 발파 과정에서 사람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리고 우물이 완성된 후 물통이 너무 깊어서 시집살이가 고될 거라 생각한 다른 동네 사람들이 상동에 딸을 시집보내기를 꺼렸다는 농 섞인 말을 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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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 통물(인공 물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통물이라 했던 이 우물은 지금 상동 복지회관 뒤편 게이트볼장에 있는데, 우물이 있는 입구에 ‘한동리 웃동네의 인공물통’이란 표석이 있으며, 표석에는 ‘원형대로 잘 보전되어 교육용, 향토기념물로 중요시 하고 있다’라고 쓰여 있지만 우물 상부를 시멘트로 봉한 후 지하에 묻어버려 ‘중요시 한다’는 비문이 내용과는 안 맞는 것 같다. 이 우물은 깊이 23m로 두레박줄로 16발(양팔을 벌렸을 때 길이를 한발이라고 함. 악 1.5m임) 깊이로 당시 애월읍 곽지리의 물통과 함께 제주 섬에서는 가장 깊은 우물이었다.

한동리 바닷가 개렝이코지에 두개의 산물이 정감어린 모습으로 계룡동을 지키고 있다. 이 산물은 원형의 형태로 해안도로에 있으며, 왼쪽(서측)은 그레기물, 오른쪽(동측)은 거슨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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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레기물(좌·서쪽), 거슨물(우·동쪽).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제주어로 기러기를 그레기라 하고 있는데, 두 산물이 일직선상에 열을 지어 있어서 그 모습이 기러기가 열을 지어 날아가는 것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거슨물은 산물 나오는 방향이 바다가 아니라 한라산 쪽으로 거꾸로 솟는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거슨물은 여자 전용의 빨래터라면 그레기물은 남자 전용 목욕탕이다. 이 산물들은 썰물 때만 사용할 수 있는 물로 밀물 때는 완전히 바다에 잠겨 고립된 섬으로 그 모습만으로도 바다의 장관을 연출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자물인 거슨물은 돌담이 무너져 방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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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레기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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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슨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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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물어진 거슨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잣못통물은 마을제나 각종 고사 때에 정화수로 사용했으며, 계룡동 동쪽 끝 바닷가에 위치해 있다. 지금은 계룡동 해녀탈의장 건물 안 지하에 보존되어 있다. 

이 산물은 모래 동산 밑에 있는 물로 ‘잣’은 널따란 돌담으로 기다랗게 쌓은 돌담, ‘목‘은 통로의 좁은 잘록한 부분이란 의미로 주위를 잣담으로 쌓은 길목에 있는 물통이다. 이 산물은 지금도 물질 갔다 온 해녀들의 멱 감는 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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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잣못통물(건물 안).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물이 없는 고통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상동 사람들이 심정을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얼마나 식수에 대한 갈망이 컸으면 목숨까지 바꾸면서 우물을 판 불굴의 의지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어쩌면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 목숨을 바쳐 만든 ‘리르와디’ 우물이 있듯이 한동리에도 식수난을 해결하기 위해 목숨과 바꾼 귀한 생명의 우물인 통물이 있다.

사막의 숭고한 리르와디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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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르와디 우물. 출처=http://worldwaterday.org.
미셀세르, 나일루파루키의 ‘물’에서 우물을 뜻하는 '리르(Rhir)‘와 ’와디(wadi)'란 수맥을 찾던 인부란 뜻을 갖고 있는 리르와디 우물을 소개하고 있다. 
이 우물은 늙은 인부의 죽음으로 완성된  우물이다. 자신의 가족과 부족을 위한 물을 얻기 위해 모래뿐인 사막에서 80미터 이상 수맥이 있는 석회암판까지 파 내려간 후 부락에서 가장 연장자인 늙은 인부만 남고 모두 지상으로 올라오면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석회암판에 마지막 곡괭이질로 우물을 얻는다. 
석회암판이 깨지고 엄청난 압력으로 수맥이 터지면서 하늘로 솟구치는 물과 함께 늙은 인부의 생도 마감하지만 그 정신은 사막의 생명수로 재탄생 되어 영원히 흐르는 사막의 숭고한 우물이 된다. 

# 고병련(高柄鍊)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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