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85) 하도리 펄갯 산물

하도리는 바닷가 토끼섬 일대의 ‘도의여개’ 주변에 마을이 형성되어 ‘도의여 마을’ 혹은 산간마을 ‘웃도여’ 상도리의 아래쪽인 해안가에 있어 ‘알도여’라 불렸다. 천혜의 자연 자원을 간직한 마을로 펄개물, 탕탕물, 서늘엉물 등 풍부한 산물은 해안습지와 철새서식지를 만드는 원천이 되었다.

철새서식지의 대표적인 산물은 펄갯동네의 산물인 펄갯물이다. 조수가 드나드는 바닷가의 펄에 있는 물이란 뜻이다. 이외에도 가장 최근에 발견되어 물을 이용한 역사는 짧지만, 주민이나 철새도래지를 찾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탕탕물과 물이 무척 차갑다는 서느렁물도 있다.

창흥동으로부터 종달리 지미봉까지 수십만㎡의 해안 조간대로 해마다 9월에서 12월 사이에 저어새, 백로, 가마우지, 청동오리 등이 찾아온다. 해안 조간대의 습지가 산물과 만나면서 어패류 등이 풍부하게 서식할 수 있는 환경 조건이 만들어져, 철새들에게 풍부한 먹이 공급원으로 좋은 쉼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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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펄개물(앞 남자통, 뒤 여자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진흙이 쌓여 만든 해안습지인 갯벌(개펄)이 형성되어 있어 창흥동을 펄개라 했다. 창흥동의 산물인 하도15번 길에 있는 펄갯물은 동쪽에 널따란 농경지와 지미봉이 자리 잡고 있으며, 남쪽에는 드넓은 갈대밭이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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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펄개물에서 본 지미봉과 철새도래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 산물은 철새도래지의 생태계에 먹이사슬이 균형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펄갯물은 여러 지점에서 분산하여 솟아나기 때문에 그 중에서도 물 힘이 좋은 곳에 남자물통과 여자물통을 만들었다. 여자통은 알물(아래 있는 물의 제주어)이라 하며 바다 쪽인 북측에 있다. 웃물(위에 있는 물의 제주어)이라 하는 남측의 남자통과 20m 정도 떨어져 있다. 

산물은 마을과 근접해 있어 수도가 보급되기 전에는 주민들의 식수와 생활용수로 사용된 귀한 물이다. 산물은 근래 개수되어 보존하고 있으나 물팡 등 옛 형태는 거의 남아있지 않아 애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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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수 전 펄개물(여자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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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수 전 펄개물(여자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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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수 된 펄개물(남자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 산물에서 하도13번 길을 따라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농업용수로 사용하는 인공우물인 창흥동 우물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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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흥동 우물. 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탕탕물은 30여년 전에 도로를 정비하기 위해 돌을 파내다가 물이 솟아나자 산물터를 만들어 이용했던 산물이다. 탕탕물이라 했던 것은 산물이 동산 밑에 있어, 물을 끌어 올리는 기계(양수기)를 설치했는데 탕탕거리는 기계 소리가 유난히 커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렇게 끌어올린 물로 물맞이를 했다고 한다. 

이 산물은 KBS 예능프로그램 <천하무적 야구단> 촬영지로 사용됐던 물로 유명하다. 지금은 물놀이 장소로 피서철 담수풀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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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탕탕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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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탕탕물 내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서느렁물은 양어장에서 사용한 구멍에서 솟아나는 차가운 단물로 구명물 북쪽에 위치해 있다. ‘서느렁’은 ‘서늘하다’의 제주어다. 이 산물은 한 때 이 지역의 상수도 공급용 원수로 사용하기도 했다. 

지금은 정수장의 저장탱크인 원형시멘트 통에서 용출하고 있다. 전에는 이 일대 마을 주민의 피서지로 사람들이 몰려왔었던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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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느렁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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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수장 원형탱크.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하도리가 생태적 가치가 높은 철새보호지역을 갖추고 람사르습지 도시로 지정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풍부한 산물 때문이다. 이 철새도래지를 중심으로 주변에는 많은 산물이 용출되어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해안습지를 만들었다. 

이로 인해 수생태계의 다양성으로 먹이가 풍부하게 되면서 철새들이 일 년에 일 만 마리이상 날아오는 중요한 철새서식지가 되었다. 그러므로 마을의 무한한 자산인 산물을 잘 보존한다면, 지속가능한 생태마을로 거듭날 것이다.

# 고병련(高柄鍊)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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